모놀로그
유령으로 나타난 친구 본문
그 아이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친구가 되었는지
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중딩 친구였나 싶기도 하고,
그냥 동네 친구였나 싶기도 하다.
친구의 친구였나 싶기도 하다.
난 어릴 땐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면서
괜히 거만하게 굴었기에, 내쪽에서 먼저 친구를 만든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대개는 누군가 다가와서 나를 자기 친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 애를 친구로 선택한 건 아닌 게 확실하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중딩 시절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고딩 시절을 각각 다른 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게 된 이후로 학교가 갈린걸 보면
역시 중딩 동창이었을까?
내가 선택한 친구가 아니었기에.
난 그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긴, 난 살면서 진정 좋아한 친구가 없었다.
내가 친구가 되었으면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절실하게 저애가 나의 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사람은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친구가 되도
마음을 열지 않았고,
그냥 피상적으로만 대했다
게다가 난 무심하고 냉정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도 그렇게 대했다.
그 아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껄끄럽게 대했다.
그래서 더욱 그 아이가 탐탁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그 아이와 친구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 이유는, 그 아이가 계속 연락을 끊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학한 이후에도 그 아이는 날 계속 찾아왔다.
우린 주로 집에서 만났다.
그 아이는, 당시엔 몰랐지만 이른바 사생아였다.
엄마는 수상쩍은 직업을 가졌고,
아이를 혼자 살게 하였다.
그렇다고 빈곤하게 사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난 아무 생각 없었다. 호기심도 품지 않았다.
단지 그러려니 했다.
그 아이는 손가락이 두 갠가 없었다.
얼굴은 이쁘다고 하긴 그렇지만
뭔지 모르게 빈 구석이 있었고
그것이 매력이었다.
허술하고, 흐느적거리면서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대체 우리가 어떻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지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마침내 연락이 끊겼다.
우리집이 이사를 했고, 그때 전화번호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더이상 오지 않았다.
그 전에도 전화번호가 바뀌면 그 아이는 바뀐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했고, 그래서 관계가 이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 그 아이는 오랜 시간 나를 쫒던 것을 그만둔 것이다.
나도 아쉬울 것 없기에 그 아이를 잊었다.
내가 그 아이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얼마 후였다.
거의 일 년 가까이 난 매일같이 그 아이의 꿈을 꾸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난 그 아이가 보고 싶지 않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잠이 들기만 하면 그 아이 꿈을 꾸는걸까?
그냥 꿈이 아니라,
꿈속에서 난 그 아이를 찾아다녔다.
그리곤 만난다.
그러면 난 그 아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한다.
꿈속에선 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그리움을 느낀다.
그것은 사무치는 슬픔이 가득한 이상한 그리움이었다.
꺠어나면 어리둥절했다.
그러길 일년...
나중엔 아예, 꿈에서 그애를 만나면
이건 꿈이야..라고 스스로 말해주었다.
그럼 역시 난 꿈에서 꺠어나는데,
깨어난 상태에서 난 그 아이를 만났다.
그래서 신기해서 결국 만났구나!
외치며 다시 그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그또한 꿈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이었다.
새벽에 잠깐 드는 깊은 잠에 난 빠져들었다.
그런데,
난 내가 어느 학교의 운동장에 서 있음을 알았다.
그건 내가 다니던 학교의 그라운드였다.
황폐할 정도로 넓어서 교사들은 아득히 먼 곳에 드문드문
보였던 운동장이다.
마치 학교보단 그라운드가 더 중요하다는 듯 했다.
난 지금도 학교를 생각하면
건물보단 그 운동장만 떠오를 정도이다.
그 운동장에 안개가 자욱했다.
어찌나 짙은 안개인지
일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멀찌기 늘어선 건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난 우두커니 서서 그 운동장을 휘어감은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면 그 안개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희끄무레한 그림자에서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새벽이라 아직 빛이 없었다.
동트기 전의 서글픈 빛이 안개 속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 속에서 내게 다가오던 물체가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난
어머! 그 아이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난 전혀 그 아이를 반가와하지 않았다.
전 같으면 울면서 달려가 안고 난리를 쳤을텐데,
어쩐 일인지
난 그땐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아이는 날 바라보았다.
난 퀭하고 무의미한 시선이 어둡게 날 응시하는 걸
야릇한 느낌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문득 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안개 속에서 마침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다리가 없는게 아닌가!
난
놀랄 틈도 없었다.
상체만 둥둥 떠서 안개 속에서 나온 그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
소리를 내며 난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난 공포보단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 아이는 죽었구나!
라고 제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그 아이를 꿈에서 찾았구나..
실제론 별로 그립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은 아이를
집요하게 꿈에서 찾아 헤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그 아이를 잊고 있었지만,
그 아이가 날 찾은 모양이다.
병이 들었던 걸까?
일년 가까이 그 아이의 꿈을 꾼 걸 보면
사고로 죽은 건 아닐 것 같다.
새벽의 악몽,
유령이 되어 안개 속을 떠다니던 거무스레한 상체와,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퀭한 구멍같던 무의미한 눈빛,
그리고 내 목을 조르기 위해 달려들 때의
그 무표정함
난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난 다신 그 아이의 꿈을 꾸지 않았다.
난 혹시 오랜 시간 투병하던 아이가
그날 숨을 거둔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난 이미 그 아이를 찾을 길이 전혀 없었다.
그러고보면
확실히 그 아이는 학교 친구가 아니었나보다.
아무도 그 아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난 그 아이 소식을 누군가를 통해 들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대체, 그 아이는 누굴까..
우린 어디서 어떻게 만났으며
왜 그렇게 돌연히 내 목을 조르는 것으로
사라져버렸을까..
난 그 꿈을 생각하고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점점 더 전율을 느낀다.
참 신비스러운 경험이었다.
'모놀로그 >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머리 속의 괴물 (0) | 2011.03.04 |
---|---|
21011년 처음으로 봄비가.. (0) | 2011.02.27 |
내 생애 최고의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0) | 2011.02.14 |
무지개다리에 있는 나의 강아지야.. (0) | 2011.02.07 |
봄과 겨울의 기싸움 (0) | 2011.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