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궁 17부- 채경과 효린, 그리고 할마마마 본문
황후의 초대로 효린은 마침내 궁 안으로 들어온다.
어쩌면 자기 집이 되었을지도 모를 궁안을,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효린을 보며,
난 인간의 순간의 선택,
아니 순간의 자만심이 얼마나 결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솔직히 좀 무섭기까지하다.
효린이, 신군의 청혼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듣고,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만 더 그의 마음과 처지를 헤아려줬다면
전혀 다른 자리에 놓여졌을지도 모른다.
정, 그녀가 황태자비 자리를 원치 않는다면,
황태자인 신군은 포기했어야했다.
효린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신군에게 그의 이기심으로 인해
효린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펄펄 뛰지만,
효린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그녀의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것을 같은 여자로써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단지,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항상 뭔가 댓가를 치뤄야한다는 걸
효린이 몰랐다는 게 안타깝다.
효린이 채경과 궁에서 만나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채경이 효린보다 더 아름답고, 더 우아하고, 더 고귀하게 보인다.
그녀는 정말 궁에 살고 있는 황태자비같다.
그것도 황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황태자비이다.
껍데기만 그럴듯하고 화려한 황태자비가 아니라,
몸도 마음도 황태자비가 되어 있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왜냐면 그 순간은 너무나 의미없이 흘러가버린다.
그토록 우아하고 고상한 황태자비로 성장한 채경은,
그러나 어쩌면 효린의 패배감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일뿐일까?
이후로 채경이가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그때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효린이는, 한떄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아이 앞에
패배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어야하니,
여자로서 참 괴로왔을 것이다.
채경도 황태자비 자리는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걸 감수한 덕분에 신군도 얻었다.
그럼에도 채경은 여전히 순수하고 맑다.
그래서 그 순간의 채경은 아름답다.
효린도 그걸 느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신이가 나에게 온다면 받아줄거야...
뭐 이런 소리인데,
조금 황당하다.
효린의 마지막 자존심인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궁 특유의 널뛰기 대사, 즉 앞뒤가 안맞는
대사인지 그건 모르겠다.
신군에겐 호텔에서 너에 대한 집착을 버리겠다는 둥
해놓고,
채경에겐 여전히 신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니
정말 헷갈리다 못해
욕이 나올 지경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효린은 궁과 신군에게서
떠난다는 것이다.
이어서, 효린은 기자회견을 여는데
난 솔직히 민망해진다.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난 화가 난다.
효린이 청혼을 받은 것까지 알면서
왜 기자들은
'버림받은 황태자의 여인'이라고 선정적인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쓴단 말인가?
'버림받은 황태자'
라고 제목을 달아야하는 거 아닌가?
난 기자들은 모르는 줄 알았지 뭔가~!!ㅋㅋ
그 기자회견에서, 효린은 자신은 황태자비 자리를 원치 않았고
자신의 꿈이 더 소중했기에 신이의 청혼을 거절했음을 밝히며
자신은 결코 황태자의 버려진 여자가 아님을 밝힌다.
젠장!
그럼 대체 왜 신군이 채경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에서 약을 먹는 생쑈를 한 건데?
또다시 궁은 날 논리적으로 혼란스럽게 한다.
그게 사실 내가 궁에서 받는 최고의 딜렘마이다.
드라마에서 뭔 놈의 논리냐고 하겠지만,
그러나
진정 완성도 높은 드라마는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야 하는 것이다.
궁은 아름다운 드라마이지만,
그리고 색다른 드라마이지만,
작가의 한계 또한 너무나 두드러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궁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는 할마마마이시다.
채경이처럼 가진 건 사랑밖에 없는,
그러나 나이가 주는 건지, 타고난 건지 알 길 없는
깊은 통찰력과,
필요할 때 튀어나오는
카리스마도 있다.
신군을 슬쩍 흠집내는 혜정전에게
단호하게 일갈하는 한 마디는
다름 아닌 할마마마의 선언이기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평소, 그저 사람좋고 상황 판단 잘 못하는
뒷방 노인네인양 보이기 십상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면서, 따뜻하고,
황실의 법도만을 주장하는
황후같은 여자와는 또 다른
나름의 철학도 있다.
혜정전이나 율군에 대한 사랑 또한 깊다보니,
그저 그들을 감싸기만 하려해서
황후를 안타깝게 하지만,
혜정전이 슬쩍 흘리는 한 마디로
재빨리 상황을 간파하는 영민함을 보여서
날 놀라게 한다.
무엇보다 태황태후는
신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선 아비보다 백배 낫다.
신군이 비록 황제 자리에 어울리진 않을지나,
그가 책임감과 의무감이 투철하며,
누구보다 황족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하며,
또한 그걸 지키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하고 감내하는 인물이라는 걸
태황태후마마께선 아시는 것이다.
그 할마마마가 신군이 누구보다 황태자로서나 황제로서나
한치의 부족함이 없는 그릇이니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뼈있는 말로 못을 박으니
그 순간엔 황후는 카타르시스를 맛보았을 것이고,
혜정전은 난감했을 것이다.
혜정전은 생각보다 더 열받아야했다.
그저 샐쭉하고 마는 게 아쉽다.
우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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