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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17부- 율과 혜정전 본문

주지훈/궁

궁 17부- 율과 혜정전

모놀로그 2011. 2. 18. 05:34

 

 

내가 늘 율군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채경을 사랑하는 방식 내지,

그녀의 마음을 가져오기 위해 너무 너절하게 구는 게 마땅치 않아서이지

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황태자 자리도, 따라서 채경이도 자기 것이라는,

 

어쩌면

채경이가 아니었다면

별로 탐내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가 상실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집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항상 그의 비극이

채경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선대의 비리와 악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 악연과 비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들의 자손이 되버린 것이다.

 

만일 율군이 황태자였다면,

그는 별로 채경을 사랑하거나, 원하지 않았을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걸 상실해본 인간이기에,

즉 어떤 의미에선

신군과 거의 동등한 공허함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에

채경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신군과 율군이 모두 채경이란 인물을 사랑하고 원하는 이유는

똑같다.

 

그건 다시 말해서

신군과 율군 모두 심한 결핍증을 느끼고 있으며,

 

그건 우습게도

 

신군은 원치 않는 자리에 있음으로써,

율군은 자신의 자리를 잃음으로써

오히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동등해진 것이다.

 

 애초에

율군이 온전하게 궁에서 계속 황태손으로 자랐다면

절대로

채경이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군과는 또 달라서,

설사 채경이와 억지 결혼을 했다쳐도

신군처럼 결국엔 채경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거나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대로 성장했다면,

그는 그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

전형적인 황족이었을테니까.

 

 

하여튼,

선대의 비극으로

가슴에 구멍이 뚫인 두 청년은,

그 구멍을 메꿔줄 가장 적절한 인물인

채경을 동시에 원하게 되는 것이니

아이러니하다.

 

바닥까지 떨어지고 난 후에야

제정신을 차려서 더이상 혜정전의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하겠다고 결심한 효린을 붙잡고

 

혜정전이 효린에게 한 말을 들으며

하마터면 배꼽잡을 뻔 했다.

 

'황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줄 아니?'

 

 

'거울을 보시와요, 마마'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니가 제일 무서우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궁의 모든 비극의 가장 중심에 있는

혜정전이 저런 말을 하니

얼마나 우스운가~!

 

그녀는 효린과 참 비슷하다.

자기가 상실한 것만 생각하지

왜 상실했는가에 대한 통찰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