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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15부- 신군의 패배

모놀로그 2011. 2. 14. 12:40

니가 없이 살 수 있을까..??

 

그건 채경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단

신군이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은

 

죽진 않겠지..

채경이가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지만,

그렇다고 죽기야 하겠어?

 

채경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면 되지.

그냥 아무 재미 없이

그럭저럭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없는 생활로 돌아가면 되겠지.

 

이런 상당히 냉소적인 답일 것이다.

그 역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의 맹점이다.

그들은 항상 저런 결론을 내리기 마련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경은

 

신군의 혼잣말을 또다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열받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해도

신군은 더이상 말을 하지 말고

그냥 행동이나 하는 편이 낫겠다.

 

그의 사고의 냉소적인 흐름을 채경에게

일일히 이해시키느니,

그냥 몸으로 말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원래 지식인들은

저렇게 쓸데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것이다.

 

채경이에겐 저런 관념적인 자문자답보단,

그냥 안아주는 편이 훨씬 이해시키기가 쉽다.

 

햄릿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살던지 죽던지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나은 것이다.

 

상대가 채경이니까.

 신군도 그걸 깨달은 모양이다.

 

공연히 추상적인 소리를 늘어놓아

더욱 상황이 악화되는 기미가 보이자

그는 재빨리 입을 다물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물론..죽진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살기 싫어..

그건 사는 게 아니야..

가지마..

난 널 좋아해..

니가 없는 삶은 이젠 상상할 수가 없어

 

 

기왕이면 말로 해줬으면 채경이가 더 이해하기 쉬웠겠지만

안아주는 것만 해도 어딘가!

 

채경이는 신군의 포옹 하나로 모든 갈등과 실망과 분노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특히

그 사랑이 막 시작되려는 무렵엔..

더불어, 신군과 채경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겐...

 

거사에서의 명대사처럼,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은 다 사랑한다는 소리로 들려요.

어쩌구 하는 경지에 다다르기엔

둘 다 어리다.

그리고

아직은 불안정한 사이이다.

 

오로지 사랑만 주고받으면 끝나는 관계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갈등은

엄청 길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어떤 불만도, 오해도, 미움도, 원망도

그저 스킨쉽 하나면 눈녹듯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게 사랑의 기적일까?

 

신기한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고,

불행히도 율군이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다.

 

채경이 신군 때문에 울지만,

포옹 하나로 당장 하늘로 날아오를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율군에겐 가혹한 일이지만,

 

신군에겐 그런 힘이 있다.

 

물론, 신군이 지닌게 아니라

채경이 신군에게 그런 힘을 부여했다.

 

즉, 채경이는 신군이 울게 할 수도 , 웃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 시간은

오롯이 두 사람만의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2500만년 이후에도 너를 만나면 다시 사랑하리..'

 

그러고보면

그 대사는 신군이 먼저 하는 셈이다.

 

사랑은 채경이 먼저 시작했을지 모르나,

 

그 깊이는

신군이 더한 듯 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태후의 말대로

고독한 자의 사랑은

그토록 한 순간에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독약이 될 수도 있고, 죽음으로 이끌수도 있지만

그거야 뭐 나중일이고...

 

내겐 어쩐지 너무나 가슴 아픈 그 대사를

신군의 입으로 들으며,

 

물론 신군답게

 

심심하니까..따위의 초치는 말로

끝나지만,

 

그날로 기나긴 갈등은 일단 막을 내린다.

 

물론, 신군의 패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