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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2부- 황태자의 혼인에 대한 채경의 입장 본문
궁 1,2부는 3부의 전초전이다.
즉, 황태자 부부가 탄생하기까지의 진통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신군과 채경은
각각 그 혼인에 대해서, 혼란과 혐오감, 동시에 체념이라는
공통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 제각각 전혀 다른 꿍꿍이와 갈등을 지니고 있는데,
채경의 입장에선 하루 아침에 낯설고 무서운 황실이라는 곳으로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야한다는 두려움이 당연히 있을 것이고,
집안을 위해서라면, 혹은 부모님들의 눈치로봐선
자신이 황실로 시집가기를 바라는 게 확실하고,그게 유익하다면,
가야할 모양이지만,
그리고 가기로 결심도 했고,
이미 황실 어른들과 대면까지 했지만,
신채경이라는 한 개인으로봐선
그건 택도 없는 모험이다.
조선 시대에도 세자빈이나, 왕비로 간택되는 건
집안의 영광이었지만,
권력 추구형의 야심만만한 인간이 아닌 담에야,
조금이라도 선비 정신이 있는 집안이라면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라는 것도 충분히 감안하고 있었다.
뭐 다른 집안이야 내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실제로 그 기록을 접한 사도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어보면,
부친이자 당주인 홍봉한은,
당대의 명문 대가였음에도, 가세가 지지리도 빈한하여
무영옷에, 끼니 걱정을 해야할 판이었음에도
막상 세자빈으로 간택이 되자
제일 먼저 탄식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고로, 왕족으로 태어나는 것이나,
왕실로 시집가는 건
내가 봐도 팔자가 보통 세지 않고는 낙첨되기 힘든 일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하루 아침에 주어지는 엄청난 지위, 그리고 그로 인한 부귀 영화는
물론 꿀처럼 달지만,
그에 대해서 치뤄야하는 댓가는
다름 아닌 목숨인 것이다.
왕실은 그저 행불행의 차원이 아니라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왕실의 외척이 되면, 당장 날파리떼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권력의 싹이 보이는 곳엔 반드시 달라붙은 날파리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재앙의 근원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경계한 홍봉한 마저도
결국은 어느 틈엔가 부귀영화와, 그가 지닌 권력에 빌붙고자하는
날파리들에게 에워싸여서
재앙의 싹을 키우고 있을 정도이니,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21세기의 황실은 물론, 권력은 없다.
그러나, 어떻든 황족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평범한 집안의, 아니 지극히 서민적인 집안의 딸이
갑자기 그 세계에 뛰어든다는 건
그야말로 기름통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19세의 청춘, 신채경,
연애는 커녕, 사랑의 감정조차 한번 느껴보지 못한
청정무구한 자신의 청춘을
알지도 못하는 남자, 그것도 보기만 해도 이건 당췌
자기를 사람 취급도 안해주는 무서운 신군에게 시집을 가야하니,
게다가 시집은 황실이라니
갈등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다.
채경에게도 신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틀림없이 있었다.
그의 수선스러운 친구들에 가려져서 그다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신군에 대해서 완전히 무심하진 않았음이 확실하다.
적어도 노골적으로 자신은 관심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오로지 우스울 따름이라고 틈만 나면 선언하는 강현보단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증거로,
신군 일행이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먼저 외친 것도
채경이고,
그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그녀는 옷매무새나 머리를 매만진다.
그때 채경의 신경은 온통 신군 쪽으로 쏠려 있음도 확연하다.
채경은 무심하고 밝고 순수한 아이이다.
그런 채경에게도 왕자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그녀는 전혀 다른 세계와 조우한다.
그리고 산산히 꺠진다.
하필 그날, 그녀는 신군과 부딛히고,
그의 신발에 구정물을 쏟고,
그 바람에
무수리 취급을 당하고,
또한 그가 다른 여자, 즉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는 것까지 듣는다.
그것을 엿들었다는 이유로
그녀는 다시금 신군에게 호되게 당하는데,
그건 그때까지 그녀가 막연히 품고 있던 왕자님에 대한 동경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녀는 왕자님이라는 상징적 의미의 아이돌이 아닌,
그 실체와 맞닥뜨리자 환멸을 느낀다.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비정한 사람이었다.
그녀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이상한 생물이었다.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이 아니라,
도무지가 같은 인간이 아닌 듯이 낯설고 차갑고
게다가 자신을 여자는 커녕 인간으로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환상이 깨진 순간,
그녀에겐 바로 그 너무나 싫은 인간에게 시집가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그녀 개인의 일이었다면 당장 거절했을 것이나,
집안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다.
그게 그때까지 단순하게 살아왔을 신채경 최초의 딜렘마가 되었던 것이다.
어떻든,
채경은 그날,
처음으로 황실이라는, 혹은 황족이라는
자기와는 전혀 다른 종족과 접촉하는데
그것은 그녀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이상한 세계였는데,
이제 그것이 그녀 자신이 소속할 세계가 될 수도 있으며
그래서 그녀는 결단을 내리기가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다.
아니, 이미 결단을 내려놓고도 갈등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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