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우리 강아지와의 추억담-08/06月 본문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꼭 인간 관계에만 인연이란 것이 연결의 띠가 되는 것은 아닌듯 하다는 것이
우리집 강아지를 볼 때마다 느껴진다.
그러니까 정확히 1998년 10월 26일,
당시 작업실에 기거하고 있던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넘이었다.
하룻밤만 어떤 강아지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내용이었다.
난 선뜻 허락하기가 꺼려졌다.
난 강아지에 대해서 아는 바도 없고,
강아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며,
관심도 없었으니까.
갑작스레 강아지를 하룻밤만 맡아달라는 부탁에
선뜻 응하는건 무리였다.
그러나
하룻밤 잠자리를 구걸하는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또한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조용히 지내는 저녁 시간은
내게 소중했다.
그 평화롭고 소중한 나만의 시간을
어떤 존재, 그것도 짐승이 침범하는 것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마지못해 허락했다.
딱, 하룻밤만 재워주면
더이상 부탁하지 않겠다는 동생의 절절한 말을
매몰차게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았다고, 딱 하룻밤만 데리고 있어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날아온건지,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동생도 자기 작업실에 있었는데 거리가 꽤 멀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들겨서 열어보니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서 있는 동생이었다.
난 잠시 입을 벌리고 그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난 애완견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지인 중에 늙은 치와와를 기르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찌나 까다롭고 신경질적인지,
게다가 몸을 사리는지
같이 차를 타고 짧은 여행이라고 갈라치면
반드시 데리고 가는데
내가 인사로라도 만지거나 안으려고 들면
질색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내심으론 그 강아지를 안거나 만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으며
사랑스럽다던가, 이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으므로
그 까탈스런 늙은 치와와의 거부는
반가울 지경이었다.
단지
인사삼아 잠시 안아주었을 때
뭉클한 그 감각이 몹시 싫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주변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도 없고
도대체가 강아지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난데 없이 내 작업실겸 집을 찾아온
그 불청객을 처음 본 순간,
난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우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본 애완견은 다들 주먹만 했는데
얘는 엄청나게 컸다.
적어도 내가 어렴풋이 지닌 애완견에 대한 편견에 비추면
그랬다.
게다가
털이 엉망으로 지저분했다.
난 그렇게 지저분한 애완견은 첨보는 지라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본 애완견들은 대개
머리에 리본을 달거나,
털이 길 경우 곱게 빗겨져 있거나
아니면 아예 털이 없거나 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베토벤 머리처럼 털이 사방팔방을 향해 뻗쳐 있었다.
마치 중력의 법칙에 따라
어디론가 끌려가려는 것을
이 강아지가 막고 있어서 분한 나머지
어거지로 매달려 있듯이.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그 강아지의 눈이다.
아니 눈빛이다.
그 강아지는 후에 알았지만 |
난 결벽증이 심하다.
내가 동생에게 제일 먼저 한 질문은
강아지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 특유의 그것,
"얘, 아무데나 오줌 막 싸고 그러는 거 아니지? 똥사면 어떻게 하니?"
그러자 동생은 의기양양하게
"얘 그런 애 아냐~!!절대 안그러니까 걱정말고.."
어쩌구저쩌구...
그리고선
내게 빵봉지를 주며
저녁은 그걸로 먹이고,
한번쯤 산책을 데리고 나갈 것이며
기타 등등
듣기만해도 머리털이 뻗칠만큼 귀찮고,
그래서 괜히 허락했다고 후회할만한
여러가지 주문을 하더니,
도망쳤다.
혹시라도 내가 뒤늦게
도저히 안되겠다고 되돌려보낼까봐 그런 모양이다.
하긴,
날 잘 아는 동생넘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난 그때 막
"야, 나 도저히 안되겠어. 못데리고 있을 것 같아.
그냥 데려가주라~"
이럴 참이었으니까.
넓직한 작업실 한 가운데는
우리 둘만 남았다.
오줌싸면 어쩌니?
안 그래~!걱정마~!
라는 말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그 녀석은 동생이 사라지자마자
미친 듯이
작업실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돌아다녔다.
그 동그라미는 다름 아닌
오줌이었다.
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당황하고 화가 났다.
속았다~!!
이게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이다.
오줌을 안싸?
젠장~!!
오줌만 싸고 앉았잖아!
난 욕실로 달려가서
고무장갑을 끼고
휴지와 강력 세쳑제와 걸레를 들고
그 녀석을 따라다니며
오줌을 닦기 시작했다.
휴지로 닦아내고 세척제로 박박 민 다음 걸레로 훔쳐내는 동안
그 녀석은 다른 곳에다가 다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난 그날 약 30분 동안
그 녀석이 만드는 동그라미를 따라다니며
고군분투해야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후회했다.
내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완전히 박살낸
그 강아지에 대한 분노와,
갑자기 내 영역을 침범한 작은 생물에 대한 이질감으로
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내 작업실은
작업 공간과
내가 기거하는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작업실에 오줌을 한 바가지로 싸놓은 녀석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지금이야 강아지에 대해선 나름 지식이 생겨서,
당시에 그 녀석이 그렇게 미친듯이 오줌을 싼 이유가
뭔지 알고 있다.
녀석은 수컷이었기에
낯선 곳에 오자마자
흔히들 말하는 영역 표시를 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녀석은 당시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
강아지는 첫주인에게 버림받으면
그 상처가 1년 이상 간다고 한다.
게다가 두번째 주인은 구하지도 못해서
어찌어찌해서 동생 작업실까지 온 모양인데,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는 동생은
마음이 약해서
아무도 없는 데다가 불빛도 없을 깜깜한 작업실에
그 녀석을 두고 올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동생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작업실이라
일이 끝나면 모두 가버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하룻밤이라도 재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것들이야 모두 후에 알게 된 거고,
하여튼
낯선 강아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나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도
난 우두커니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동그란 눈의 그 녀석과
마주 앉아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난 그 녀석 못지 않게 정서적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을 생각도 없었고,
평소에 그러하듯
샤워를 하고
침대 위에 몸을 던진 채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는
내 생활 리듬을 탈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생소한 생물 하나가
내 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생활리듬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하룻밤만 참으면 돼~!
라고 날 달래면서도
난 웬지 안정이 되질 않았다.
지금이야 애완견에 대해 꽤 지식이 생겼으므로
나뿐 아니라
그 녀석도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제는 안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하룻밤 잠자리를 찾아
낯선 곳에 오게 된
그 강아지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애완견들은 굉장히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고 한다.
내가 불안하고 뭔지 모르게 불편했듯이
그 녀석도 아마 그랬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나
당시엔 그 녀석 생각까지 해줄 형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난 그러기엔
애완견이나 강아지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다.
난 그저 빨리 하룻밤이 지나서
이 난감한 생물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시츄는 먹을 것을 무지하게 밝힌다.
어느덧 우리집에서 십년 가까이 산 이 녀석은
평소 나른하고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하다가도
엄마가 뭔가를 먹는 기색만 보이면
잽싸게 튀어나와서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도 먹겠다고 징징거린다.
그래서
난 당시의 그 녀석을 생각하면
가끔 가슴이 아프다.
저녁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굶을수도 없어서
억지로 한 숟갈로 배를 채우는 나를 그 녀석은
멀찌기서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을 보니
무척 부러운 눈치였다.
그러나 그 녀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먹는
저녁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반응도 그렇게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그 녀석한테 신경을 쓰고
민감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저녁을 대충 때우고
심란한 가운데서도
그 녀석도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생이 주고 간 빵을 꺼내 들었을 때,
그 녀석은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난 다시 한번 입을 딱 벌리고
그 녀석의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경련이라도 일으키듯
그 녀석은 떨고 있었다.
지금은 이해한다.
먹을 것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그 녀석이
낯선 집이라,
낯선 사람이라 나름 자제하고 있다가
자기 먹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지금도 먹을 것이라면
앞뒤 안가리는 녀석이
체면 차리느라 얼마나 당시에 나름 자제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면서 동시에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다.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좋아하는 녀석에게
빵을 주자
그 녀석은 순식간에 그것을 먹어치웠다.
난 그 녀석이 빵을 먹어치우는 속도에 또한번
기절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일단 각각 저녁을 해결했다.
침대엔 눕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녀석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문득
동생이 던져준 한 마디가 생각났다.
한번쯤 산책을 데리고 나가야해~!!
그래서
난 투덜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당시에
그 녀석은 이미 목줄을 하고 왔었기에
그 부분은 그렇게 해결한 것 같다.
공원으로 간 후에 그 녀석이 보여준 행태는
애완견에 대한 지식이나
심리에 무지한 나를 다시 한번 기절할 만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강아지들도 나름 성격이 있다.
그 녀석의 성격은 굉장히 특이하다.
그것은
우리집에서 십 년을 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지금도 그러한데
당시엔 오죽했을까.
그 녀석은 마치 미친 것처럼
여기저기에 오줌을 갈기며
돌아다녔다.
약 십분 동안
적어도 수십번은 싼 것 같다.
그것도 녀석의 불안한 심리 상태의 반영이라는 걸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엔
보도듣도 못한 그런 행태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내가 보기엔
혹시 미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녀석은 우왕좌왕, 거의 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무엇보다 날 화나게 한 것은
그 녀석은 공원의 모래밭에다 오줌을 싸제끼고
그런 후엔
그 모래를 마구마구 발로 차대는 것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저렇게 더러운 녀석을 다시 내 집에 데려가서
내 방에 들여놓는다?
그렇다고 씻긴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난 강아지를 씻길 줄도 몰랐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단지
저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저 난감함이
기하급수학적으로 늘어날 뿐이었다.
어쨌든 괴상망칙한 저녁 산책을 정신 없는 가운데 마치고
난 다시
녀석과 함께
내 집으로 돌아왔다.
드러워질대로 드러워진 그 녀석을 방에 들여놓기 싫어서
방과 작업실 사이의 공간에 그녀석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차마 바닥에 재우긴 뭣해서
그래도 방석을 놓아주는 게
당시 그나마
내가 해준 최고의 배려였다.
밤이 깊어 갔다.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개운치 않은 심정으로
난 결국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서 잘 준비를 했다.
침대 발치에 녀석의 방석을 깔아주는 것으로
잠자리도 마련해주었으니
이제 잠들기만 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그날밤
나는,
아니 우리는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당시의 나처럼
혼자 지내던 사람은 다 그런건지,
내가 유별난 건지,
내 공간에 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왜 그리도 신경이 쓰이던지
십분 간격으로
그 녀석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일어나서 보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신경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당췌 그게 안되는 것이었다.
녀석은 내가 놓아준 방석에 눕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방과 작업실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
엎드려 있었다.
난 가끔 녀석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럼 녀석은 벌떡 일어나서
날 그 맑고 투명하며 어쩐지 슬퍼보이는
커다란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방석에 누워서 자~!!
그럼 어기적거리며
방석 위로 올라온다.
그러나
얼마 후에
다시 내다보면
또 밖으로 나가서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알 길 없는
어수선한 하룻밤을 보내면서
또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어쌨거나
내 공간에 진동하는 짐승 냄새였다.
난 그게 역겨워서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이래저래 날새기만 기다렸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장 데려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동생이 나타나서
녀석을 데려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니
차 안 뒷좌석에 엄마가 앉아 있고,
막 운전석에 올라타는 동생 옆 자리엔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엄마 쪽을 향해
좌석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는 떠났고,
난 이제 겨우 해방된 것이다.
악몽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싫어서 빨리 데려가라고 법썩을 떨었건만
막상 그 녀석이 가버리자
그 커다란 슬픈 눈망울이 왜 그리
눈앞에 자꾸만 어른대는지...
그 녀석은 비록 돌봐주는 주인이 없어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지만
내가 본 중 그렇게 잘생기고 이쁜 강아지는 처음이었다.
밤새도록 안정을 하지 못하고
뒤척이긴 녀석도 마찬가지,
내가 이름만 부르면
발딱 일어나서
날 바라보던
그 모습이 왜 자꾸 눈에 밟히는지...
떠나기만 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하룻밤 잠자리를 찾아
오늘은 누구에게 구걸할까 생각하니
왜 그리도 가슴은 저리던지...
문득,
우리집에서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오전 내내 그 녀석이 눈앞에 어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때였다.
당장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걔 오늘은 또 어디서 잔다니?
매일같이 어떻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애걸하니?
우리가 키우면 어떨까?
그러자 강아지라면 사족을 못쓰는 녀석이
의외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엄마가 거부할 거라고 했다.
엄마를 설득하는 건 나한테 맡겨~!!
엄마는 내 부탁은 거절하는 법이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녀석을 집에서 키우는 건
녀석을 위해서나
당시의 우리집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이라는 확신이 내게 있었다.
녀석은 더이상 떠돌이 신세를 면하고,
우리집에도 새로운 존재가 하나 들어옴으로써
뭔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난 즉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설득을 했고,
늘 그렇듯이
엄마는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승락을 했다.
그렇게하여
하룻밤 잠자리를 구걸하며
떠돌던 녀석은
드디어
우리집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 같던 하룻밤은
기나긴 녀석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녀석을 우리집에서 키우도록 손을 쓰고서야
난 눈앞에서 어른대던 그 녀석을 털어버리고
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난 주말에만 집에 갔는데,
(작업실과 집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토요일 저녁에 잠깐
들러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전부였다. 일에 시달릴 때라
사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지경이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강아지 한 마리가 나한테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아참, 이제 우리집에 강아지가 생겼지.
의외인 것은
엄마의 태도였다.
날 반기는 녀석을 마치 갓난아이라도 안듯이
꼭 껴안고 볼을 비비며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것이었다.
난 엄마가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베키도 무지하게 이뻐하셨고,
그래서 난 하루 정도 울며 지내곤 잊어버렸지만,
엄마는 일주일을 울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슬픔도 깊어진다는 걸
나도 이제는 안다.)
녀석은 제대로 주인을 찾은 것이다.
동생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도 별로 거부반응이 없었으며,
엄마는 그야말로 이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으니..
나 역시도
오기 싫은 걸 억지로 오던 주말 집나들이가
전보단 즐거워졌다.
때로는 주중에도 시간을 내서
녀석을 보기 위해
집에 일부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녀석이 우리집에 올 때가 벌써 2살 가량이었다.
난 사실 강아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수명이 15년 정도가 최고로 길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을 정도니까.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울었던지..ㅋㅋ)
게다가 녀석은 첫주인에게 버림받은 후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성격이 너무 특이했다.
애완견을 길러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난 어렴풋이 애완견은 이래야 한다, 혹은 이럴 것이다
라는 편견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 편견에 의하면
녀석의 성격은 정말 이상했다.
우선,
녀석은
도통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알았다.
좀 안아주려고 하면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금새 뿌리치고 도망쳤다.
자기 몸에 손대는 걸 싫어했다.
매우 유순하고 사랑스러웠지만
고집세고 무뚝뚝하고 의심이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녀석에게
'불량 강아지, 반항아 강아지"
라는 별명을 붙여줄 만큼
다루기 힘든 녀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강아지에게도 각각의 특색이 있고
성격이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성격이 좀 유별난 편인데,
그런 면에서
가끔 농담삼아서
너도 역시 x씨 집안 강아지 답구나
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녀석을 새끼 때부터 키웠다면 어땠을까 싶다.
2살은
15년이라는 수명으로 볼 때
그리 만만치 않은 나이라고 볼 수 있다.
2년 동안
그 녀석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알 길은 없으나
녀석은 우리집에서처럼
집안에서
애지중지 사랑받으며
곱게 자란 것 같진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
그래서 의심이 많고,
정을 주려고 하지 않고
뻣뻣하면서도 불안해하는 태도가
거의 몇 년을 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없고,
비교적 단촐한 우리집에서는
새로운 식구를 대환영하는 분위기였기에
그 녀석은 더이상
장래 걱정을 할 필요 없었다.
그 녀석은 그걸 몰랐겠지만.
무한한 사랑만이 그 녀석에서 퍼부어질 십년 가까운 세월이
그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완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대뜸 강아지를 받아들인 우리 식구는
그 녀석의 모습이 얼마나 괴상망측한 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엄마는 가끔 외출할 때면
나에게 녀석을 맡기곤 했는데,
그럴 경우,
난 자랑스럽게
녀석을 안고
거리를 활보했으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베토벤 머리처럼
산더미 같이 쌓이고 헝크러지고 뭉치고
한 마디로 엉멍진창인 그 모습이
남에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웬만큼 애완견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아마
날 이상한 눈으로 봤을 것이다.
대체 어쩌자고 강아지를 저 지경을 해가지고
데리고 다니는 걸까?
정작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백주 대낮에도 그 녀석을 데리고 당당히 활보하였으니
후에
내 작업실에 오던 한 여자가
"실은 댁의 강아지털을 보고 미친년 머리 같다고 생각했어요."
라는 말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시츄가 원래 어떤 모습인지 알기만 했어도..ㅠㅠ
하여튼
어느날
엄마는
녀석의 털을 깨끗이 밀어서 내 작업실에 데리고 왔다.
마침 털깎는 집이 내 작업실에서 가까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털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난 그때
하마터면 대성통곡할 뻔 했다.
난 또한 털을 몽땅 깎아버린 강아지도 처음 보는지라
엊그제까지 알던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낯선 모습에 기절초풍한 것이다.
난 마구 화를 냈고
엄마도 낙담한 얼굴이었으며
우리 모두 예전의 그 녀석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후회해 마지 않았다.
정말 한편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누구 말대로 미친년 머리 같은 털을 하고 있는
정상적이지 못한 녀석의 꼬라지가
녀석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털을 처음 깎은 날
엄마와 함께 슬퍼하던 기억은
두고두고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녀석의 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녀석의 참모습이 점차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야
우리는
전의 녀석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돌봐주는 사람이 없이 살았던가를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처음 왔을 때의 그 녀석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으며,
미친년 머리같다는 한 여자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다.
털이 조금씩 자라던 2살 무렵의 그 녀석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환상적이다.
커다란 눈이 더욱 두드러진데다가
녀석 특유의 다른 시츄와는 좀 다른 청순한 듯한 표정까지 고대로
드러나서
거리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에게 에워싸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털을 매일 빗겨서 제대로 자리잡게 해주면서
비로소
시츄다운 모습을 갖춰가던 녀석은
우리처럼
애완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함께 성장했던 것이다.
또한
애완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 키우기 시작한 우리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박사급이지만
그땐 그야말로 유치원생 수준이었달까?
그 녀석을 키우면서
난 내가 생각한 애완견과 너무 다른
그 녀석을 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완견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혹은 그녀석에 한해서만 그런 것인지
십년이나 키운 지금도 잘 모르겠다.
녀석은
온순하고 잘 짖지도 않고 극성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거의 움직임도 없다.
흔히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당췌 이 녀석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
애교를 부린다던가,
안아주거나 애정을 표현해주면
강아지들이 흔히 그러듯 혀로 핥는 것으로 보답을 한다던가,
하다못해
장난감으로 쓰라고
공을 사주면 그걸 가지고 논다던가,
그런 애완견다운 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녀석은 장난감이나 공 같은 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우리에겐 늘 어떤 선을 긋고 대하는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애잔함은 사라지고,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 강해졌다.
가끔 엄마는 그런 것을 서운해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이뻐해주는 만큼 보답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애완견다운 행동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애교스럽고 사랑스러운 애완견 특유의 갖가지 행동들 말이다.
사실,
난 극성맞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강아지는 싫어하기 때문에
녀석의 그런 특이한 성격은 맘에 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뭔가 잘못해서
야단을 치거나 신문지 같은 걸로 때려주면
(잘못하면 신문지로 턱을 떄려주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서..)
갑자기 녀석은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
그또한 다른 애완견과 차별화된 점이 아닌가 싶은데,
오히려 자기 쪽에서
우리에게 마구 덤벼들며
그 신문지를 잡아 찢어버리는 것이다.
신문지로 때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녀석은 미친넘처럼 변해서
야단치는 사람에게 대들고 반항한다.
그러는 녀석은
언제나 날 당황스럽게 한다.
대개의 강아지들은
주인이 야단치거나 때리는 시늉이라도 하면
때리기도 전에 죽는 소리를 하며
도망치거나
얌전해지던데...
얘는 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조금이라도 맞거나 혼나는 걸 참지 못하는 걸까?
녀석을 키우면서
우리도 서툴러서
많은 실수를 하고, 녀석에게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녀석의 태도는 나에겐 늘 불가사의였다.
집으로 데려와서
몇 년동안은
녀석은 우리를 잘 깨물었다.
피가 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버릇을 들이기 위해
야단치거나 때려주면
오히려
자기 쪽에서 더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정말 반쯤 죽도록 때려주지 않고는
도저히 그 녀석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대개는 우리 쪽에서 백기를 들고만다.
그때마다
난 녀석이 참 신기하고,
절대로 굽히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고개 숙이는 법 없는 녀석이,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더 반항하고 지쪽에서 더 화내고 달려드는
녀석이 너무나 신기한 것이다.
역시 새끼 때부터 키우지 않았기 때문일까?
혹은 성격 자체가 그런걸까?
녀석은 자기에게 손대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몇 년 전까지
그러니까
녀석이 우리 집에 와서 적응해가는 동안
그 녀석은 단 한번도
우리의 매질이나 꾸짖음에
항복한 적이 없다.
참 놀라운 일 아닌가?
아니면 원래 그런건가?
다시 애완견을 길러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 녀석이 나이들어서
떠난다면
다신 강아지를 기르지 못할 것 같으니
그 답은 찾기 힘들 것이다.
애완견을 키우기 전엔
개에 대해서 무심했다.
개는 그저 개일뿐이었다.
물론
난 보신탕 같은 건 먹어본 적도 없고,
먹을 생각도 없다.
하지만 개는 그저 개일뿐이었고,
거리에서 혹은
주택가의 집집마다 정원에서 키우는 개들도
내겐 그저 개일뿐이었다.
우리집 녀석을 키우기 전까진
그랬다.
그러나 이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개 한 마리도
예사로 봐지지 않는다.
난 이상하게 그게 참 싫다.
전엔 안보이던 것들이
새삼 눈에 보이면서
야릇한 아픔을 느끼는 것~!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인데,
그 세상은 뭐랄까...
기쁨보단 아픔을 주기 때문에
난 싫은 것이다.
가끔
멋진 시베리안허스키같은 개가
비좁은 우리 안에 갇혀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광활한 시베리아를 달리는 것이
훨씬 어울리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녀석이
이 나라까지 왜 왔을까...
왜 저렇게 비좁고 답답하고 불결한 곳에 갇혀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을까
하면서 분개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난 그런 게 너무 싫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참 싫다.
혹은
이쁜 애완견이 주인을 잃고
험한 세상을 아무런 방어태세도 없이
헤매는 것을 보는 것도 날 미치게 한다.
일부러 버린 게 아닌,
지 멋대로 온실 속에서
이 무서운 세상으로 뛰쳐나온 것이 틀림없는
애완견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물론 버림받은 개도 날 미치게 하지만..
머리에 리본을 달고
옷까지 입은 애완견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외면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힘든 것은
개장사에게 끌려가는
애완견들을 보는 것이다.
이제
점차로 잡견이 사라져가는 대신에
애완견이 먹거리로 변해가는 걸까?
개장사의 오토바이 뒤에 얹힌
철장 안에 얌전히
그러나 겁에 질려 앉아 있는
애완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내겐 공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집 녀석이라도
잘 키우는 것,
녀석이 행여나 집을 뛰쳐나가서
길을 잃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극도로 조심하는 것 정도이다.
만일 녀석을 잃어버린다면
나나 엄마는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그 정도로 온갖 애정을 다해서 십년을
녀석과 함께 하며
키워온 것이다.
그런데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것이
아이 키우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는
진부한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녀석은
자잘한 병치레를 십년 가까운 동안
여러번 치루었다.
꽤 심각한 병에 시달린 적도 있다.
한번은 하반신 신경마비가 온 적도 있다.
지금도 녀석을 껴안고
새벽에 내 방에 들어와 울면서
녀석이 못걷는다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게 벌써
일이년 전인가?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우리 강아지에겐 좋은 주치의(?)가 있다.
동물병원은
의료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강아지가 병이날 경우
돈이 많이 든다.
안좋은 수의사를 만나면
바가지도 엄청 씌운다.
이 의사를 만나기 전에 그랬다.
별 것도 아닌
예를 들어
언대가 조금 늘어난 정도로
단번에 십만원 넘는 돈을 강탈당한 적도 있다.
공연히 엑스레이를 찍느니
검사를 하느니
하면서 돈을 울궈낸다.
하지만
엑스레이를 찍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새로 바꾼 병원은
운이 좋았던지
그렇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명의여서
웬만한 중병도
약으로 다 고쳐준다.
하반신 신경마비만 해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심한 경우엔
백만원 가까이 들고도
결국엔
고치지 못했다는 글들이
많았다.
그러나
녀석은 한달 가량 약물치료로
그 병을 고쳤다.
또 지 눈을 지가 찔렀는지
실명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그것조차도
약물로 그럭저럭 회복이 되었으니
우린 참 운이 좋은 편이다.
좋은 의사를 만난 것,
웬만한 병은
검사니 뭐니 하면서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도
정확한 진단과 약물 치료만으로 고쳐주는
의사를 만난다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불면 날아갈세라 꺼질세라
애지중지 키운 녀석의 나이
어느 틈엔가
열살이 넘어간다.
그 녀석도
베키처럼
언젠가는 우리 곁은 떠나겠지.
그리고
그 슬픔과 상실감은
베키가 떠날 무렵과는 비교도 안되겠지.
가끔
녀석이 베키의 환생이길 바랄 때도 있다.
내가 너무 어려서
허망하게 죽게한 그 가련한 새끼 강아지가
내게 다시 온 거라고....
오빠가 말했다.
애완견이
주인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자라다가
그 주인 곁에서 생을 마친다면
그것은
그 강아지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가끔
녀석이 내 곁을 떠날 것을 생각하며
가슴 아플 때마다
오빠의 그 말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녀석은 잠에 곯아 떨어져 있다가 |
녀석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괴팍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애완견들은
자기를 집에 데려온 사람을 주인이라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를 데려온 사람은
동생이지만,
자기를 키워주고 돌봐주고,
온갖 애정을 다 쏟아 키우는 사람은 엄마이다.
물론 나도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녀석을 사랑해준다.
하지만
난 엄마처럼 맹목적이진 않다.
(성격적으로 난 엄마처럼 사랑이 넘쳐흐르는 사람이 아니고,
게다가 냉정하다.녀석에겐 나름 애정을 쏟지만 나의 태생적 냉정함을
민감한 녀석은 느끼는 것 같다.)
하여튼
녀석은 헷갈릴 것이다.
자신을 데려온 사람,
돌봐주는 사람이 다르고,
대체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시간은 주로 엄마와 보내고,
바쁜 동생과는 거의 마주칠 시간이 없지만,
가끔 동생이 집에 있을 때,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녀석이 얼마나 동생을 좋아하고 신뢰하는지,
엄마와는 또 다르게
동생에 대한 녀석의 마음이 드러난다.
엄마는 자기 필요에 의해서,
혹은 정이 들어서
혹은 가장 자기에게 잘해주니까
곁에 있는 거라면,
동생에겐 마음에서 우러나는 신뢰감이 보인다.
역시
이 집에 데려온 사람이 동생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고 짐작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난 억울하다.
그래서 녀석에게 외친다.
'널 여기 데려온 건 바로 나야 이 쉐이야~!!
내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넌 지금 어떻게 되 있을지
안봐도 비디오닷~!!!'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엄마는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녀서
때마침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와
백수로 지내던 나와 둘이서만
하루 종일 보내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는 녀석이 늙어가면서
여행을 그만두었다.
발단은
얼마 전의 일 때문인 것 같다.
녀석이 엄마가 부재중이자,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고,
좌불안석
심한 스트레스 증세를 보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내 보였기 때문이다.
전화로 그 얘길 듣자마자
엄마는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왔다.
난 엄마를 잘 알기 때문에
그 이면에 어떤 심리가 있는지를 잘 안다.
녀석과 헤어질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만큼
하루라도 녀석과 함께 있는 시간을 아끼려는,
그래서
녀석이 떠난 후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나한텐 없는 특별한 엄마의 성격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이는 심리이다.
하지만,
녀석은
몇 년전 까지만해도
엄마가 없으면
어슬렁거리며
내 방으로 와서
내 발밑에 누워 있거나,
내 침대 위에 올려달라고 조르거나,
내가 아는 체 해주면
평소엔 자기를 만지는 걸 귀찮아하던 녀석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내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기도 했었다.
잠도 내 방에서 잤다.
녀석은 자기 잠자리가 따로 없다.
녀석은 엄마와 함께 잔다.
전용 배게가 있을 정도이다,
가끔 배게를 베고,
이불까지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은 정말 배꼽빠지게 우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녀석은
동생과 나, 그리고 엄마 사이에서
방황하던 것을 멈추었다.
녀석은 자기를 사랑해주고
자기를 지켜주고
자기에게 무한하게 관대하고
가장 만만한 상대가
엄마라는 사실을 이젠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선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부재중이면
여전히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게 의존하거나
날 찾진 않는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만
내방에 오거나,
내방을 노크한다.
그것도
단지
대소변을 본 후엔
반드시 과자를 주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그러는 것 뿐이다.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냉정해졌다.
난 그것도
녀석이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특유의 괴팍함과 편협함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쩐지 서글프다.
녀석은 다른 애완견과는 달리
안아주는 걸
애초부터 싫어했었지만
최근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서
자기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한다.
녀석을 안거나
만질 수 있는 건
엄마뿐이다.
강아지는 누가 자길 가장 사랑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고 했던가?
물론
우리 가족 모두 녀석을 이뻐하지만
절대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녀석은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이든 강아지들 특유의 깐깐함과 까칠함으로
자기가 주인이라고 결정지은
엄마 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것이 보인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나이가 들고 늙으면
그렇게 변하나보다.
녀석의 변해가는 성격은
비록
나이가 들어도 변하 없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늙어가고 있음과,
녀석이 언제 어느 때 불쑥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서글픔을 준다.
그리고 새삼 결심하는 것이다.
다신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리..
주변에 강아지를 평생 키우신 분이 있다.
수없이 많은 강아지를 키우고 보내셨다고 한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처럼 신경질적으로 곤두서서
괴팍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충 키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말씀이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것이 그때마다 힘들다고
이젠 더는 못키우겠다고 하신다.
그분이 그럴 정도라니....
우린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베키야 몇 개월 키우다가 잃었으니
십년 넘게 키운 맘과는 또 다르다.)
그 타격이 지금부터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녀석은 절대적인 애정을 독차지하며
이 집에서 살았던 것이다.
강아지의 하루는 인간의 몇년에 해당될까?
궁금했는데,
최근에 들었다.
강아지의 하루는 인간의 5년이라나?
7년이라는 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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