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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마왕에서의 주지훈 연기

모놀로그 2011. 5. 14. 22:22

사람들은 마왕에서의 주지훈 연기를 많이 칭찬한다.

그리고 그들이 꼽는
주지훈 최고의 연기는
14부의 승하오열씬,

혹은 11부 마지막의 사악미소씬,
최종회의 태성오수씬 등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어떤 특정 장면보단

막바지에 이르면서 점차로
승하에게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연기가
좋았다.

특히 18부에서 해인에게 정태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에
그토록 격정적인 순간을 보내고도,

기어이 마지막까지 가야하는 승하의 고뇌와 피곤함,

지친듯한 목소리가 힘겹게 뱉어내는,
이제 스스로에게도 공허하게 들리는 말들이 주는
무상함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면서
나까지 그가 느끼는 피곤함에 말려들어가서
무력해지는 듯했다.


그를 지탱하던 모든 복수의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그에게 아무런 에너지도 주지 못하고,
은연중에 기대왔던 해인과도 더이상은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되버린 이후의 승하는
표정부터 목소리까지 초중반의 그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신념을 잃어버린 자의,
그러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자의
비애와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고통이
초반과는 또다른 의미로 그를 허깨비처럼 보이게 한다.

초반의 그가 추는 춤이 세상을 야유하고
비웃는 경쾌한 왈츠라면

후반의 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넘어질 듯 말 듯
허우적대는
그 어떤 이름도 가지지 못한 춤을 추고 있다.
스스로도 그 춤이 역겨워서
그만두고 싶지만
그의 발엔 벗겨지지 않는
저주받은 분홍신이 신겨 있다.


형체를 갖추고는 있지만
정말 손만 대도,
바람만 살짝 불어도
무너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기하던
주지훈.

오승하와 혼연일체를 이룬 경지에 다다른 채
후반부를 이끌던 그가 그대로
내겐 최고의 연기이다.

난 특정 장면을 살리는 명연기,

그 장면이 비록 마왕이라는 흐름 속에서
승하 캐릭터에겐 중요한 핵심적 장면이기에
그때의 클로즈업과, 그 클로즈업 속에
승하를 내보임으로서
그 장면이 지닌 의미를 최대한으로 끌어내서
드라마에 키포인트를  확실하게 주는 연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극의 흐름을 이끄는 연기가,
또 그 흐름 속에서 그가 어떻게 변해가는 지
보여주는 연기가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장면에 온 에너지를 쏟아서 작정하고 하는 연기는
차라리 쉽지 않을까?

그러나
극의 흐름과 배우가 일체를 이루는 연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


카메라가 들이대는 연기가 아니라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연기,
카메라를 의식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카메라가 배우에게 눌리는 연기,
그러다가 카메라와 배우가 일체를 이루는 연기.


후반의 그는
오승하라는 껍질이 퇴색해가는 것이
눈에 역력하게 보이고

그를 지탱해온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음에도
떨리는 다리로 겨우 세상에 발을 디디고 서서
히기 싫어진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보였다.

그렇듯
극 전체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그는

깊은 밤
조금씩 땅을 검게 물들게 하는 ,

가끔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 속에서나 잠깐 흩날리는
빗줄기가 보이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가랑비처럼

우산도 없이 그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도 함께 젖어들어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