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스타인웨이 피아노 본문
대학 2학년 2학기 늦가을 쯤인가?
아니면
3학년인가?
잘 기억은 안나는데
한때
난 새벽에 학교에 달려가곤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당에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타인웨이..
그야말로 피아노의 명기이다.
음반의 감촉부터 소리부터
일반 피아노와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다.
그런 피아노로 연습을 한다면?
그야말로 피아노과 학생들의 로망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가능하더란 말이다.
난 그걸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새벽에 가면
적어도 30분에서 한 시간은
연습할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소강당의 스타인웨이는
대강당의 연주회용 피아노와는 비교도 할 수 없긴 했다.
대강당의 스타인웨이는 소리부터가
정말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대강당에서 연습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거긴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대개는 문이 잠겨 있기도 했지만,
소강당은 문이 잠겨 있거나 하진 않았기에
잠시라도 연습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오기 전에 가야한다.
난 어느날인가 무심코 소강당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았다.
뜻밖에 문이 열렸고,
강당은 텅 비어 있었다.
내 시선은
무대 위에 놓은
아담한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쏠렸다.
난 이끌리듯
다가가서 잠시 쳐보았다.
보통 집에 있는 피아노나
국산용 그랜드 피아노와
스타인웨이는 좀 다르다.
우선 건반이 매우 촘촘한 느낌이다.
그래서
시험볼 때
가뜩이나
연기하는 배우에게 들이댄
강한 조명처럼
무대 위에
지나치도록 밝은 조명으로 인해
긴장하고 떨리는데,
상대적으로 어두컴컴한 객석에
죽 늘어앉은 교수들이
폼잡고 앉아서 노려보고 있다.
그 와중에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 촘촘한 건반이
낯설어서
건반을 헛짚기가 일쑤이다.
자연
미쓰가 많이 난다.
원래
자기가 늘 연습하던 피아노 아닌
다른 피아노를 대하면
손에 익지 않은 건반의 감촉 탓에
미쓰가 많이 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그런데,
하물며
시험이나 연주를 하기 위해
만인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서
낯선 고급 피아노는
늘 손에 익지 않아
난감한 것이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곤
소강당 피아노로 몇 번은 연습해 보는 게
유리하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소강당에서 연습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거기서 피아노를 건드리기만 해도
온 음악관이 들썩일 정도로
울림이 심하다.
가뜩이나
넓은 일층의 로비는
소강당의 요란한 피아노 소리를 메아리치게 만들고,
일층에 늘어선 교수들 방에까지
그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당장
경비가 달려와서
호통을 친다.
그러니
시간은
아무도 없는
새벽이 제일 좋다.
그래서
시험을 앞둔 그 무렵,
난 아침 일찍 가서
소강당에서 몇십분이라도 연습하는데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라이벌이 생겼다.
내 딴엔 일찍 간다고 가도
이미 누군가
강당 피아노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잠을 설치고 달려간 학교에서
새벽부터 혼자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 인간은 한번
차지하면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아이보다
일찍 가기로 결심햇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7시쯤 집에서 출발했는데,
그것이 6시가 되고,
나중엔 5시에 출발하였다.
인적이 없는
어둑한 새벽의 교정에서
그 아이와 마주친 적이 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둘 다
소강당 피아노를 노리고
일찍 나온 것이다.
누가 먼저
음악관에 도착해서
피아노를 선점하느냐~!
우린 시합을 벌인다.
그렇다고 뛸 수도 없다.
어디까지나
초연한 척 해야한다.
그러나
서로의 발걸음을 재며
먼저 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인간과 그런 시합을 하기 싫어서
점점 일찍 출발하려고 기를 쓰다보니
나중엔 5시에 일어나서
학교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ㅋㅋ
그 소강당 쟁탈전은
어느날
싱겁게 끝나고 말았던 것 같다.
사실,
그런 강당에서
그런 고급 피아노로
그렇게 울림이 심한 곳에서
연습하면
이내 지치고 질린다.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그만두었다.
하지만
아침 잠이 많고
게을러서
가능한
아침 강의는 신청도 안하고
늦으막히 시작하는 강의만
듣던 내가
그땐 뭐가 씌웠는지
그렇게
미친 것처럼
새벽마다
학교로 달려가곤 했던 것이다.
그또한
유일한
대학시절의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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