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승하 복수의 비효울성에 대하여 본문
마왕의 도입부에 당구장이 나오는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사실
난 당구에 대해선 아는 바도 없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당구에 대해서 인상적인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당구란 이론적으론 아주 간단하다.
당구공에 주어지는 힘을 알고,
질량을 알고, 각도를 알면 당구공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당구공은 예측할 수 있는데
또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구공이 움직이자마자 발생하는 그 찰나의 효과들,
먼지라던가,
작은 홈이라던가...'
한 마디로 아주 작고 미세한 요인들로 인해서
당구공은 이론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
오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이
당구장이다.
승하의 복수 방법을 보고 있자면
내가 잘 알지는 못하는 세계지만,
웬지 당구가 생각난다.
공 하나에 큐로 살짝 힘을 가하면
그 공이 굴러가서 다른 공들을 연쇄적으로 건드려주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승하의 복수 방법은
에측할 수 있지만 또한 예측할 수 없다.
만에 하나
그가 예측한 것들이 의외의 복병인
미세한 먼지나 작은 홈으로 인해
방향이 전혀 달라진다면
그의 복수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권변이 의외로 순순히 조동식에게
그래, 내가 잘못했어 라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조동식은 그걸로 만족하고 돌아서서 나갈 것이고,
그렇다면
그에게 보내진 칼과 타로카드는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과연
승하의 복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냥 무산되는걸까?
아니,
그건 오히려 그에겐 구원이 된다.
즉 그는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공기의 미묘한 흔들림과 먼지, 작은 홈들이
공의 방향을 바꾸듯
그들의 행위로 인해 승하의 인생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왜냐면
권변이 조동식에게 하는 사과는
한편으론
승하에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하의 복수방법은 비효율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그가 죄인이 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냐를 가름하는 선택의 영역이 된다.
단지
그는 그 선택을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맡긴다.
물론 그는 함정을 제시하지만, 그 함정에 걸려드는 건
또다른 인간의 자유 의지가 되는 셈이다.
그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떠오르게 하는
복수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을 테니까.
인간들이 승하의 복수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승하는 죄를 짓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인간들의 죄가 깊어질수록
예수는 십자가에서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려야한다.
인간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승하도 죄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럼에도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승하의 말대로
모든 건 스스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승하의 복수 방법은 비효율적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것보단
차라리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시험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대개
승하의 복수법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럼 승하에게 이용당해서 살인자가 된 사람들의 인생은?'
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난 정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승하의 이론이 가진 한계,
즉 당구공에 가해지는 힘과 질량, 그리고 각도에
의한 공의 방향과 더불어,
그 순간에 발생하는 미세한 먼지와 작은 홈, 공기의 흔들림 따위에
의해서
공의 방향이 이론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시 말해서
승하의 복수 이론은 당구처럼 불가능한 것이며,
그들이 살인을 한 것은
그들이 승하의 복수 이론에 따라 인형처럼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의 방해 요인의 다른 이름,
즉, 자유 의지에 대해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주지훈 > 마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왕 15부- 강동현과의 대결 (0) | 2011.02.24 |
---|---|
마왕- 오승하 (15부-6) (0) | 2011.02.24 |
마왕 15부- 주지훈의 야누스 신공 (0) | 2011.02.23 |
마왕- 오승하 (15부-5) (0) | 2011.02.23 |
마왕 15부- 승하가 잡은 것 (0) | 2011.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