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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16부-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2) 본문
일찌기 태자비 실종(?)사건 이후
그 얼마 안되는 시간이나마
채경이란 존재가 자기 영역권에서 사라진 것만으로
톡톡히 쓰라림을 맛본 신군은
더이상 그녀와 거리를 두고, 그녀를 자기 인생에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기를 쓰던 무의미한 노력을 그만둔다.
아주 잠깐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인데,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만일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체감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채경이 없는 신군 인생의 샘플처럼
신군에게 제시되고,
그 샘플로 주어진 짧은 시간에서 신군은 백기를 들어버린다.
그 이후로 신군은 더이상 그녀를 자기 인생에서 밀어내는 걸
그만둔다.
신군과 채경이 사이가 좋아진 이후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들마다 분위기가 매우 좋고
더이상의 갈등은 없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이후로 빈번하게 나오지만,
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강릉 밀월 여행보다 오히려 이 장면이
난 참 좋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선 무대가 궁이 아닌,
학교이기 때문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도 학교요,
두 사람 모두 아직은 고딩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도
웬지 맘에 들지만,
무엇보다
신군이 이때처럼 구김살없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특히나 학교에서 부부나 연인이 아닌,
정말 또래 친구처럼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맘에 든다.
강릉의 밀월여행처럼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흘러
가슴 설레게 하는 것도 물론 매혹적이지만,
다름아닌 학교에서 두 사람이 이렇게 다정하고 친밀한
모습을 보인 건 유일무이하다.
그들 사이가 이제 완전한 밀착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풋풋한 그들의 사랑이
궁이나 다른 장소가 아닌
바로 학교라는 배경에서도 스스럼 없이 표현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제목이
저렇게 스산하냐고?
그건...
바로 이 순간에 누군가는 상실과 아픔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이 장면에서 보여지듯 단순한 고딩은 결코 아니라는,
그래서 그들의 저렇게 다정하고 구김살 없는
행복한 순간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들의 앞날에 드리워질 수많은 어두운 그림자를 암시하고,
아닌게 아니라 곧이어
덮쳐옴으로써
이 장면들은 내겐 더더욱 애틋하다.
효린과 헤어진 신군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혹시 저 속에 강릉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신군을 발견하고
(서로 건물이 다르니 혹시 채경이 신군을 찾아온?)
슬며시 다가가서...
아, 제발 이런 장난은 강현이나 그 일당들에게나
하라고...ㅠㅠ
신군 스탈 구기잖아
너그러워지신 전하께선 '명랑병~!!!'이라는 일갈로
이 무엄한 장난을 응징하지만..그게 끝.
곧바로 채경의 어깨를 자연스레 안는 저 모습..놀랍지 아니한가?
아...어쩐지 너무 쉽게 용서해주신다 했더니
이런 제2의 응징이 기다리고 있었군.
복수랍시고 해놓고는 좋아 죽는....보기 드문 신군의 천진한 웃음
이렇듯 천진하고 행복한 투닥투닥, 유치한 장난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러나..너무 짧은 행복..너무 큰 댓가..너무 기나긴 고통...
이 순간의 신군의 머리 속은 정말 복잡했을 것이다.
학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황태자인 그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는
고의적인 효린의 행태,
보란듯이
학교에서 약을 먹고 쓰러지는 자기 모습을
만인에게 보여줌으로써
마치
버림받은 태자의 여친인양 행세하는 것으로 신군을 죽일넘으로 만든다.
신군의 청혼을 너무나 가볍게 거절해버린,
그를 너무나 쉽게 놓쳐버린 자괴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여
자기 자신도, 신군도, 채경도
한꺼번에 끌어안고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리면서
자폭해버리는 효린의 행태는
신군에겐
효린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기보단 오히려
그나마 남아 있던 애틋한 마음과
좋았던 기억마저 모조리 날려보내고,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미칠 것 같은 집착을 떨치지 못하는 게
또한 사랑의 또다른 파괴적인 얼굴이며,
그래서
그 종말은 이렇듯 추악하고도 쓸쓸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일국의 태자이기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신군은
자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세력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효린의 행동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효린의 행위로 말미암아
황실의 체통이 구겨지고,
그로 인한 어른들의 분노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질 황색 언론의 갖가지 추측 기사들,
그리고 율군과 그의 어머니가
이 사건을 이용해서 퍼부을 일으킬 공격들,
이 모든 것들이
단숨에 그의 머리 속에 그려졌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평범한 고딩이 아닌, 황태자인 신군의 비극이다.
어린 나이의 억지 혼인과 그로 인한 여친과의 결별,
정통성에 대한 의문과 그 틈새를 파고드는 반대파의 공격,
등등.
그가 지고 갈 짐은 너무나 무겁다.
그러나
다른 평범한 고딩과 다른 점은,
그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할만큼
그의 어깨는 단단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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