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커피,강아지,새벽의 해프닝 본문
한 달 가까이 몸이 고단한 일이 많았다.
내 특기가 원래
먹고 자고 뒹굴며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이렇게 한가하고, 다소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이
주력인데,
이상하게도 유난스레 한가하게 침대 위에서 뭉개는 일이 거의 없이
몸을 혹사할 일이 많았다.
어제가 그 노가다의 절정이었다.
전날은 서브 컴퓨터가 너무 느려져서
메인보드를 교체하면서 부품들을 청소하느라 날밤을 새고,
낮에는 강아지 쉐이를 운동시키고, 씻기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허리가 휘도록 뭔가를 잔뜩 사서 백팩에 넣고 다니는 등,
허리에 무리가 가는 일을 많이 해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일상이 무지하게 고단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가 그 절정이었던 이유가,
커피머신을 주문했는데,
커피머신을 써보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설명서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서
기능을 익혀야 했고,
머신의 커피맛을 테스트하기 위해
엄청 많은 커피를 마셔야 했다.
난 원래 이 십 년 가까이 ,
맥심과 설탕을 무식하게 넣은 커피에
프리마 대신에 우유를 넣어서 달고, 진하게 먹었기에
원두는 어쩌다 에스프레소를 두 잔 정도 한꺼번에 뽑아서
마시는 정도?
평소 달고 끈적거릴 장도로 진한 커피만 몇십 년을 마셔왔기에
사실, 원두도 그렇게 찐하고 독하게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커피머신은 그저 엄마가 찐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나도 어쩌다 한두 잔은 마실 만해서
들여놓은 것이다.
요즘은 가정용으로 저렴한 커피머신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내가 산 것은 '필립스 라테클래식 2200'
기계 다루는 것이 옷핀 꼽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이상한 나이기에,
쉽사리 조립하고 곧 사용법을 익혔으나,
맛을 두루 보기 위해 몇 잔을 마시고,
그중, 카페라테를 특히 많이 마셨는데,
그게 그만 비위를 뒤집은 듯,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 데,
커피를 골고루 퍼먹다가 체하고 말았다.
결국 저녁을 굶었지만,
커피를 마시고 체한 것은 그야말로...
하기 힘든 육체적 부대낌이었다.
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래,
걸핏하면 체하고, 거의 매일 토하거나, 위장약을 먹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첨이라 난감했다.
속은 뒤집어지고,
손과 발은 차가워지고,
기운이 빠지면서 맥을 추릴 수가 없는 새로운 고통에 몸부림치는 밤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무력해져서, 샤워도, 양치도 하기 싫었다.
저혈당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겨우 샤워를 마치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서
묵주를 가슴에 올려놓고 '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에
오래간만에 묵주기도를 하면서
잠을 잔다기보단, 차라리 서서히 의식이 침잠해 가는,
묘하게 부드럽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취해서
의식을 잃어가던 중,
다시 말해서 서서히 잠이 들어가던 중,
갑자기 강아지쉐이가 짖어대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야 했다.
좀처럼 짖지 않는 강아지쉐이가 나를 요란하게 깨운 이유는,
지가 쉬를 했으니
까까를 대령하라는 호령이었다.
얼결에 말 잘 듣는 시녀처럼
벌떡 일어나서 과자를 주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해서
강아지에게 욕설과 뽀뽀를 동시에 날린 후에
다시금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잠들었다.
온몸의 가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강아지의 소변보심에
그 황홀한 느낌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새벽에 저혈당의 습격을 예감하고 일어나서
콜라를 퍼마셨다.
덕분에 체한 것도 가라앉고, 혈당도 높이는 일석이조를 누리며
다시금 깊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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