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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황장애(3)

모놀로그 2019. 5. 24. 12:10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부분은


이른바 전형적인 공황발작


즉, '곧 죽을 것만 같다'

라는 엄청난 불안의 발작이 어느날 새벽에 찾아왔음에도

그래서 날밤을 새고

새벽에


마침 여행을 떠나는 엄마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기까지 했음에도


난 흔히들 그러듯 그 발작을 그대로 흘려보냈다는 점이다.


즉, 나의 공황장애에는 불안이나 우울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 발작을 겪고도 그냥 흘려보냈다는 것도 희한하고

그럼에도 내 공황장애가 계속 되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다시 말해서


나의 공황장애는

오로지 신체화뿐이었다.


나의 멘탈은 굉장히 강한 편이다.

난 둔감하고 무심한 성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러했다.


그래서 가능했나보다.


하지만

날 괴롭히는 갖가지 증상은 무슨 짓을 해도 낫지 않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졌다는 정확힌 진단을 내리고서도

제대로 약을 짓지 못해서 몇 달을 괴롭힌 한의사도,


엉뚱하게도 뇌졸중의 위험이 있다며

대침을 온몸에 두 달이나 꽂아댄 한의사며


세상에 믿을만한 실력을 가진 한의사는 없다는 확신을 심어준

그들로 인해


한방 치료와는 이후로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사실,

당시에는 한방의 정신의학은 거의 밑바닥 수준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한방이 더 대대적으로 홍보를 노골적으로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한의사들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고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어느날,


난 역시 주치의에게 갔고

그때 다시금

주치의 입에서 신경정신과가 나왔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병원을 지정해주었고

'자율신경실조증' 운운하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그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말이

날 번쩍 일깨웠다.


지금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증상은

그 어떤 질병의 증상과 일치하지 않았는데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근데 난 자율신경이 뭔지도 몰랐다...ㅋㅋ)


그럴듯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그 병원으로 달려가게 하였고


그 병원에 넘쳐나는 환자들은 날 놀라게 하였고


신경정신과에 그토록 많은 환자가 있다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아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그쪽 계열의 환자가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난 그날 뇌파검사를 받았고


자율신경이 완전히 망가졌음을

알았다.


특히나 심장과 위장 쪽이 엉망이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위장장애와 부정맥,

그리고 왼팔의 기능이 마비(삼촌이 왼팔 운운을 듣고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했었다)

되다시피 했던 모양이다.


지금 환우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은 신경정신과에 대한 불신과, 의사에 대한 불신과, 무엇보다

정신과 약에 대한 불신에 가득차 있다.


그 불신은 당연히 부작용을 동반하고

약이 잘 듣지 않게 하며

오히려 더 심한 증상을 일으키게끔 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다.



난 무식하면 용감했다.


난 정신과약이 내과나 다른 과에서 주는 약과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


'그럼 어떻게 해요?"

라고 걱정스레 물었을 떄


의사는 웃었다.


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그 의사는 나같이 멍청한 환자를 처음 봤기 때문인지


'그저 약만 열심히 먹으면 되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얼마나 먹어요?"

라고 묻자


"일찍 왔으면 열흘이면 완치가 가능했을텐데, 너무 늦게 와서 육개월 정도는 꾸준히 먹어야 완치되요"


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약을 먹으면 완치가 된다는 말을

내가 믿었다는 사실이다.


즉, 약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무한한 신뢰감이 그 순간에 생겼다는 것이다.


공황장애에 대한 무지와,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 제로에

그 고통스러운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난 그 순간에

약을 먹으면 완치되는

별 거 아닌 병이라고


굳게 믿었고,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받아먹은


이른바


항불안제와 항 우울제(당시엔 그게 뭔지도 몰랐다)

를 부랴부랴 먹었고,


내겐 그저 기적으로만 여겨지는 현상이 일어났으니


몇 달에 걸친 그 집요한 증상들,


어지러움과 불쾌감과 매스꺼움과

뭔지 몸이 뒤들리는 듯한 불균형함과

기운이 너무 없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과,

특히나 왼팔의 마비 비슷한, 그러나 마비도 아닌 그 재수없는 느낌이

단숨에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약 한 봉지에

그 모든게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내겐 그 약이 그야말로

생명의 양식이 되버린 것이다.


그래서


몇 달만에

난 비로소 웃었고

기운차게 병원을 나섰으며


병원엔 여전히 꾸역꾸역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서

대기실은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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