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드라마속의 나의 명곡-줄리엣의 남자 본문
2000년...
지금부터 12년 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작년보다
더 선명하다.
그때의 내 모습도, 내 마음도, 내 일상도...
그리고
줄리엣의 남자라는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내 귀에 꽂히던
이 음악까지...
'2000년 *월*일..비행기 안에서
엄마를 닮은 여자를 만났음..
그 여자는..다른 남자를 사랑함...'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송채린..송채린..'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던 장기풍의
5회에 가서나 겨우 드러낸 그의 속마음을 처음 알았을 때
이 음악이 더욱 가슴에 스며들었다.
'돌아보지마..돌아보지마..돌아보면 돌이 되서
다신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
이상할 정도로 서늘한 장기풍의 사랑에
가슴이 사무치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줄리엣의 남자의 오종록 피디는 묘한 사람이다.
한때 유명 드라마를 양산해내던 그는,
해피투게더에서도 그랬지만
떠들썩하고 산만하고 흐느적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듯한 주인공 남자들의 경박한 웃음 속에
깊은 눈물이 어른거리는
기막힌 연출을 한다.
또한,
생이 주는 갖가지 아픔과 상실감, 좌절감 속에서도 꿋꿋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긍정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감동적이었다.
피아노..해피투게더..그리고 줄리엣의 남자..
줄리엣의 남자를 좋아했었다고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에게 말하자
나를 무척 비웃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저질스런 드라마를 왜 좋아하냐는 것이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저질스런 드라마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슴에 젖어드는 뭔가를 발견하는 드라마일수도 있다.
경박하고 저질스럽게 보이는 장기풍의 겉모습 이면에서
슬픔을 발견한 나같은 사람도 있고
그걸 보지 못한 사람도 있으리라.
내가 이 드라마를 왜 좋아했었는지
아니, 내가 왜 드라마를 보면서 그토록 아파했었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요소요소에
아름답고 의미깊은 장면들이 넘치고,
그 장면들은 하나같이
쓸쓸하다.
화면 안에
아름다운 장면을 실으면서
동시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지니고 있는
일말의 쓸쓸함을 담아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건 뛰어난 연출력을 가지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그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슬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의 유한성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러나 인연이 다하면 헤어진다.
인연이 다할 때 사랑도 같이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할 수 있는 시간,
사랑하는 동안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
내 눈 앞에 그 사람이 보이는 시간..
그 시간이 다하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사람은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혹은 내가 그 사람 시야에서 사라져줘야한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의 소중함을..
그리고 그 시간이 다하면
냉혹하게 쫓겨나야하는 아픔을..
그 사람이 나를,
내가 그 사람을 아무리 원해도
시계 바늘이 멈추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무참한 시계 바늘이
나를 슬프게 하였던 기억이 살아났다.
줄리엣의 남자는..
겉으로야 경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에 흐르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리고 이 음악이
내겐 줄리엣의 남자의 밑바닥에 흐르는 은은한 비애감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은 내가 줄리엣의 남자에 주목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의 강렬한 기타연주곡이다.
제목도 연주가도 모른다.
얼핏 U.F.O의 매우 프로그레시브한 기타 연주가
곡의 절반을 차지하는
'Try Me'
의 연주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어쩜 내가 그 노래를 무척 좋아하기에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이 기타 연주곡도 좋아하는지 모른다.
둘 다 조용한 듯 하면서
터질듯한 열정을 내면에 품고 있다.
그건 그러나 아픔이다.
비애감을 담담하게 담아내면서
절제하고 있다.
그러다가 비명처럼 한번 내지르고
다시금 호흡을 가누듯 가라앉는다.
드라마 삽입곡 중엔
가끔 이렇게
내 심금을 울리면서도
도무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곡들이 있다.
십년이 넘게 흘러도
이 음악이 주는 감동은 여전하다.
그런 것들을 다시 만나면서
난 다시금 이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모놀로그 > 작품과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 시절의 로망'로미오와 줄리엣'(2) (0) | 2012.03.03 |
---|---|
어린 시절의 로망'로미오와 줄리엣'(1) (0) | 2012.03.03 |
문제작 다모 (0) | 2012.02.18 |
다모의 황보윤, 궁의 이신, 그리고 마왕의 오승하... (0) | 2012.02.14 |
다모폐인, 드라마 팬덤의 선구자 (0) | 2012.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