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경주 팬션에서의 해프닝(1) 본문
경주는 지금까지 세 번 정도 간 것 같다.
그 중 두 번은 오라버니가 데려갔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오라버니의 차를 타고 경주 변두리께를 돌기만 했다.
그때의 기억은 어쩐지 인공적인 느낌의 기와집들과,
불국사만 남아 있다.
마치 흑백 필름의 사진들처럼...
나머지 한번은
2~3년 전,
벗꽃 축제가 한참인
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첨성대나 벗꽃보단
민둥산같은 능들만 생각난다.
난 도대체가 능은 질색이다.
따라서
민둥산같은 거대한 능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경주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난 원래 남쪽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음식이다.
경주를 돌아다니다가
그나마 알아주는 집이라고 겨우 찾아들어간 음식점에서
한 입에 비위가 상하는 바람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녔다.
세 번째로 간 것은,
2009년,
당시 내가 온라인에서 속해 있던 모임 중
경주에 사는 이가 팬션을 빌려놨다며 초대했기 때문이다.
팬션..
난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 전하의 생파가 거창하게 열렸던
제주도의 팬션을 눈시울에 떠올리며
힘차게 그리고 기꺼이 출발했다.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어찌 그런 야무진 생각을 했던지..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초대할 정도의 팬션이라면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제법 머물만한 곳일 거라고 생각한 내가
비정상인건가??
장마가 끝난 직후의 여름이었다.
서울에서 가는 사람들은
몇 명 안되었기에
팀장을 모시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끌고 온 제네시스에 몽땅 타고
출발했다.
팀장은 벤츠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포츠카여서 이인승이라나 뭐라나
췟!!
경주에 도착한 후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과,
무지하게 추워서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일행 중 어떤 여자가 자기가 입고 있던
방수 잠바를 벗어주었다.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다.
왜 난 그다지도 추웠던 걸까?
팬션이라고 불리우는,
내가 보기엔
서울에선 싸구려 모텔 정도밖엔 안되 보이는
엉성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난 그 즉시 서울로 도망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곳은 그런 엉성한 건물들이
팬션이라는 이름 하에
즐비했다.
그 맞은 편은 온통 논밭이다.
그 엉성한 건물을 빌려놓고
열명 넘는 남녀들을 초대한 인간의 얼굴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그가 거창하게 초대한 그 숱한 낯선 남녀들과
팬션이라는 이름의
초라하고 엉성한 공간에서 얼키고 설켜서
자야한단 말인가??
오 마이 갓!
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서
잠을 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아니 애초에 가족들과도 한 방에서 자본 적이 없는 내가
생판 남들과 같이 자야한다니..
내가 왜 왔을까?
하기야 일인용 침실이 내게 주어질 거라고 생각한
내가 미친거지??
흑.
건물 바깥에 가건물처럼 엉성하게 지어진 식당이라는 곳으로
저녁을 먹겠노라고 우르르 몰려가는 일행의 꽁무니를
우물쭈물 따라갔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혀 그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자들은 바베큐에서 삼겹살을 구워
식당으로 나르고 있었다.
난 무엇보다 불이 반가와서
잠시 그곳에서 불을 쬐었다.
난 바베큐를 좋아하는지라
고기는 몇 점 집어 먹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식당에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아서
식탁에서 맥주 한캔을 집어 들고
뜰로 나와 버렸다.
새삼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은 온통 수풀 투성이이다.
게다가 그 길은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팬션과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 사이에
관리소인듯한 건물이 보였다.
난 관리자에게
혹시 뱀이 나오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럴 때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긴 뱀이 나오고도 남게 생겼다.
내가 무서워하는 게 있다면
그건 뱀이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온 것 같다.
ㅠ
팬션에 손님이라곤 우리 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물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 말고는
캄캄 절벽이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지만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 차츰 냉기가 가셔갔다.
난 식당 쪽으론 가기 싫어서
맥주를 마시며 컴컴한 뜰을 서성대고 있는데,
팬션에서 기르는 개가 구슬프게 울어대는 소리에
이끌리듯 팬션 입구로 내려갔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쇠줄에 묶인 채로
비를 맞고 있었다.
남은 맥주를 마저 홀짝거리면서
그 개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처음 팬션에 들어설 때
누군가 그 개가 몇백만원짜리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시 이름을 떨쳤던 상근이와 많이 닮았는데,
그래서 난 그 즉시 상근이라고 이름지었고,
말을 걸어보았다.
'상근아, 넌 왜 집에 안들어가고
거기서 비를 맞고 있니??
너 몸값이 몇 백만원이라며?
그럼 니 몸을 좀 아껴줘야지
인간들이 안하면 너라도 해야쥐'
생전 씻기지 않아
본래는 흰색이었을 털이
거의 누렁이 수준으로 전락한 것으로 모자라
비에 젖기까지 해서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추레했다.
짖다가 울다가 하던 상근이는
내가 말을 걸어주자
개 특유의 맑고 슬픈 듯한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본다.
슬프냐?
나도 슬프다..
춥냐?
나도 춥다..
여기가 싫으냐?
나도 싫다..
두서없이 이런 저런 소릴 늘어놓자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그 커다란 주둥이를
마구 들이댄다.
그렇게 큰 개는 조금 겁난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상근이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쓰다듬어 주었다.
상근아..울지마...그냥 집에 들어가..응?
여기서 비를 맞고 있으면 안되..
축축한 털이 흙과 비로 범벅이 된 상근이를 쓰다듬는 동안
내 손바닥도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열심히 쓰다듬어주었다.
상근이도 열심히 그 커다란 주둥이로 내게 응답한다.
그러는 동안에,
추위와 술기운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며
몸이 오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근이를 혼자 두고
나만 따스한 곳으로 갈 순 없지 않은가!
상근이가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가야 나도 안심하고 팬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구석에
녀석의 덩치에 맞는 거대한 저택(?)이 있음에도
어찌하여 저눔의 개쉐이는
비를 맞고 앉아서 청승을 떤단 말인가!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상근이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게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 마신 맥주캔을 집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상근이의 쇠줄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녀석의 줄이 너무 짧아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의 줄로는 절대로 그 저택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런 우라질 인간들!!
저렇게 큰 개를
저렇게 짧은 줄로 매달아놓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난 관리소로 달려갔지만,
관리인은 이미 퇴근한 후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마침 식당에서 남자 한명이 걸어나온다.
아까부터 날 어떻게든
일행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자꾸만 전화질을 해대던 인간이다.
그 사람에게 상근이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고
제발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타고온 밴으로 가더니
트렁크를 뒤져서 끈을 찾아냈다.
우린 힘을 합쳐서
상근이의 목에서 쇠줄을 일단 뺐다.
그 커다란 얼굴은 내 얼굴보다 더 크고
그 주둥이는 내 손보다 크다.
그런 개의 목을 단단히 죄고 있는
쇠줄을 푼다는 건
무서웠지만,
상근이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갈수만 있다면
난 무슨 일이던 감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큰 개들이 그렇듯
상근이는 온순하게 내가 지를 괴롭히는 걸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도움 아래
짧은 쇠줄을 긴 끈과 바꿔치기 할 수 있었다.
가능한 길게 매달아놓고
난 그제서야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손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워하며
상근이에게 당장 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상근이는 전혀 내 말엔 관심이 없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고
으슬으슬하기도 해서
더는 상근이의 편안한 밤을 지켜볼 수가 없는 관계로
마지막으로,
당장 니 집구석으로 기어 들어가서
자빠져 자라!
고 외친 후에,
그 남자에게도 도와준 것에 감사의 말을 던지고
난 팬션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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