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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팬션에서의 해프닝(1)

모놀로그 2011. 10. 8. 11:40

경주는 지금까지 세 번 정도 간 것 같다.

 

그 중 두 번은 오라버니가 데려갔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오라버니의 차를 타고  경주 변두리께를 돌기만 했다.

그때의 기억은 어쩐지 인공적인 느낌의 기와집들과,

불국사만 남아 있다.

마치 흑백 필름의 사진들처럼...

 

나머지 한번은

2~3년 전,

벗꽃 축제가 한참인

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첨성대나 벗꽃보단

민둥산같은 능들만 생각난다.

 

난 도대체가 능은 질색이다.

따라서

민둥산같은 거대한 능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경주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난 원래 남쪽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음식이다.

 

경주를 돌아다니다가

그나마 알아주는 집이라고 겨우 찾아들어간 음식점에서

한 입에 비위가 상하는 바람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녔다.

 

 

세 번째로 간 것은,

2009년,

당시 내가 온라인에서 속해 있던 모임 중

경주에 사는 이가 팬션을 빌려놨다며 초대했기 때문이다.

 

팬션..

난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 전하의 생파가 거창하게 열렸던

제주도의 팬션을 눈시울에 떠올리며

힘차게 그리고 기꺼이 출발했다.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어찌 그런 야무진 생각을 했던지..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초대할 정도의 팬션이라면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제법 머물만한 곳일 거라고 생각한 내가

비정상인건가??

 

 

장마가 끝난 직후의 여름이었다.

서울에서 가는 사람들은

몇 명 안되었기에

팀장을 모시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끌고 온 제네시스에 몽땅 타고

출발했다.

 

팀장은 벤츠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포츠카여서 이인승이라나 뭐라나

췟!!

 

경주에 도착한 후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과,

무지하게 추워서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일행 중 어떤 여자가 자기가 입고 있던

방수 잠바를 벗어주었다.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다.

왜 난 그다지도 추웠던 걸까?

 

 

팬션이라고 불리우는,

내가 보기엔

서울에선 싸구려 모텔 정도밖엔 안되 보이는

엉성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난 그 즉시 서울로 도망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곳은 그런 엉성한 건물들이

팬션이라는 이름 하에

즐비했다.

 

그 맞은 편은 온통 논밭이다.

 

그 엉성한 건물을 빌려놓고

열명 넘는 남녀들을 초대한 인간의 얼굴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그가 거창하게 초대한 그 숱한 낯선 남녀들과

팬션이라는 이름의

초라하고 엉성한 공간에서 얼키고 설켜서

자야한단 말인가??

 

 

오 마이 갓!

 

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서

잠을 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아니 애초에 가족들과도 한 방에서 자본 적이 없는 내가

생판 남들과 같이 자야한다니..

내가 왜 왔을까?

하기야 일인용 침실이 내게 주어질 거라고 생각한

내가 미친거지??

흑.

 

건물 바깥에 가건물처럼 엉성하게 지어진 식당이라는 곳으로

저녁을 먹겠노라고 우르르 몰려가는 일행의 꽁무니를

우물쭈물 따라갔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혀 그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자들은 바베큐에서 삼겹살을 구워

식당으로 나르고 있었다.

난 무엇보다 불이 반가와서

잠시 그곳에서 불을 쬐었다.

 

난 바베큐를 좋아하는지라

고기는 몇 점 집어 먹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식당에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아서

식탁에서 맥주 한캔을 집어 들고

뜰로 나와 버렸다.

 

새삼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은 온통 수풀 투성이이다.

게다가 그 길은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팬션과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 사이에

관리소인듯한 건물이 보였다.

 

 

난 관리자에게

혹시 뱀이 나오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럴 때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긴 뱀이 나오고도 남게 생겼다.

내가 무서워하는 게 있다면

그건 뱀이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온 것 같다.

 

 

팬션에 손님이라곤 우리 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물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 말고는

캄캄 절벽이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지만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 차츰 냉기가 가셔갔다.

 

난 식당 쪽으론 가기 싫어서

맥주를 마시며 컴컴한 뜰을 서성대고 있는데,

팬션에서 기르는 개가 구슬프게 울어대는 소리에

이끌리듯 팬션 입구로 내려갔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쇠줄에 묶인 채로

비를 맞고 있었다.

남은 맥주를 마저 홀짝거리면서

그 개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처음 팬션에 들어설 때

누군가 그 개가 몇백만원짜리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시 이름을 떨쳤던 상근이와 많이 닮았는데,

그래서 난 그 즉시 상근이라고 이름지었고,

말을 걸어보았다.

 

'상근아, 넌 왜 집에 안들어가고

거기서 비를 맞고 있니??

너 몸값이 몇 백만원이라며?

그럼 니 몸을 좀 아껴줘야지

인간들이 안하면 너라도 해야쥐'

 

생전 씻기지 않아

본래는 흰색이었을 털이

거의 누렁이 수준으로 전락한 것으로 모자라

비에 젖기까지 해서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추레했다.

짖다가 울다가 하던 상근이는

내가 말을 걸어주자

개 특유의 맑고 슬픈 듯한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본다.

 

슬프냐?

나도 슬프다..

 

춥냐?

나도 춥다..

 

여기가 싫으냐?

나도 싫다..

 

두서없이 이런 저런 소릴 늘어놓자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그 커다란 주둥이를

마구 들이댄다.

 

그렇게 큰 개는 조금 겁난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상근이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쓰다듬어 주었다.

 

상근아..울지마...그냥 집에 들어가..응?

여기서 비를 맞고 있으면 안되..

 

축축한 털이 흙과 비로 범벅이 된 상근이를 쓰다듬는 동안

내 손바닥도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열심히 쓰다듬어주었다.

상근이도 열심히 그 커다란 주둥이로 내게 응답한다.

그러는 동안에,

추위와 술기운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며

몸이 오슬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근이를 혼자 두고

나만 따스한 곳으로 갈 순 없지 않은가!

 

상근이가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가야 나도 안심하고 팬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구석에

녀석의 덩치에 맞는 거대한 저택(?)이 있음에도

어찌하여 저눔의 개쉐이는

비를 맞고 앉아서 청승을 떤단 말인가!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상근이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게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 마신 맥주캔을 집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상근이의 쇠줄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녀석의 줄이 너무 짧아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의 줄로는 절대로 그 저택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런 우라질 인간들!!

 

저렇게 큰 개를

저렇게 짧은 줄로 매달아놓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난 관리소로 달려갔지만,

관리인은 이미 퇴근한 후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마침 식당에서 남자 한명이 걸어나온다.

아까부터 날 어떻게든

일행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자꾸만 전화질을 해대던 인간이다.

 

그 사람에게 상근이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고

제발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타고온 밴으로 가더니

트렁크를 뒤져서 끈을 찾아냈다.

 

우린 힘을 합쳐서

상근이의 목에서 쇠줄을 일단 뺐다.

그 커다란 얼굴은 내 얼굴보다 더 크고

그 주둥이는 내 손보다 크다.

그런 개의 목을 단단히 죄고 있는

쇠줄을 푼다는 건

무서웠지만,

상근이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갈수만 있다면

난 무슨 일이던 감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큰 개들이 그렇듯

상근이는 온순하게 내가 지를 괴롭히는 걸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도움 아래

짧은 쇠줄을 긴 끈과 바꿔치기 할 수 있었다.

 

가능한 길게 매달아놓고

난 그제서야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손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워하며

상근이에게 당장 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상근이는 전혀 내 말엔 관심이 없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고

으슬으슬하기도 해서

더는 상근이의 편안한 밤을 지켜볼 수가 없는 관계로

마지막으로,

 

당장 니 집구석으로 기어 들어가서

자빠져 자라!

고 외친 후에,

그 남자에게도 도와준 것에 감사의 말을 던지고

난 팬션으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