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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물고 난 후의 우리 강아지의 반응

모놀로그 2011. 9. 30. 02:37

우리가 키우다가 떠나보내기까지 한 강아지는

한 마리뿐이다.

 

우리의 애완짐승에 대한 체험은

따라서 주로 그 녀석이 보여준 반응에 한정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넘을 끝으로 더이상 애완견을 키우지 않았다면

(우린 실제로 그러리라 믿었으나..)

그넘이 우리에게 보여주어

우리가 체험한 녀석의 대체적인 대인간 반응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강아지가 다른 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던

우리완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10년 여를 우리와 함께 살면서

먹고, 자고, 싸고, 병원에 다니고,그리고 가끔 깨물었다.

 

녀석이 평생 한 거라곤 그게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아지에게 물리면

엄청나게 아프다.

 

물려서 아프다기보다

일종의 심한 타박상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무리 작은 애완견일지라도

짐승인지라

인간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녀석들의 이빨은

그대로 무기이다.

그넘들에겐 그것밖엔 자신을 보호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막강한 위력을 지닌 것이다.

그런 이빨이 뭔가에 닿는 순간

짐승 특유의 반사적 행동으로 힘을 가해 물어제끼면

 

글쎄..

비유하자면

손을 문틈에 끼운채로

무심코 문을 닫았을 때

손이 받을 무시무시한 힘과 그로 인한

통증에 견줄 만 하다.

 

녀석들이 의도적으로 물 때는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다.

왜냐면 녀석들도

상대가 주인인만큼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 물긴 하되,

나름 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의도적일 떄

는 장난이 아니다.

 

개쉐이에게 물려본 사람들은

한 순간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프다는 걸 알 것이다.

 

피가 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건 그저 물리는 부위가 어딘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뿐,

 

피가 나던, 안나던

디지게 아픈 건

별로 차이가 없다.

 

떠난 녀석은 성견이었기에,

게다가 성질 이상한 넘이라

어찌나 잘 무는지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물리고 피를 봤었다.

 

 

녀석을 떠나보내고,

새로 키운 테리는,

 

유아견일때 맞아들인지라

이제 겨우 한 살이 조금 넘었지만

떠난 넘과는 좀 다르다.

 

떠난 넘은 무서워서

입 근처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차하면 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리는

자유자재로 입안에 손을 넣어도

절대 그럴 염려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첨으로

테리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내 잘못이었다.

난 평소 내가 하는대로

테리가 개껌을 씹고 있을 때

입안으로 내 손가락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동안엔

그래도 물리진  않았다.

 

아직 이빨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물린 건

그새 이빨이 좀더 튼튼해진 탓도 있겠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테리가 껌을 이빨로 씹는 순간에

내가 그 안에 손가락을 넣은 탓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뭐던

난 손가락을 물렸고,

 

테리의 이빨은 아직은 성견의 그것처럼

완전하진 않기에

떠난 넘에게 물렸을 때 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떻든 간만에 개쉐이한테 물리자

그 3분의 일 정도는 아득했다.

 

하지만,

오늘 테리가 보여준 반응은

우리가 일찌기 체험했던

상황을 벗어난 것이어서

그게 더 내 흥미를 끌었다.

 

우선 테리는

내가 물리는 순간에

비명을 지르자

펄쩍 뛰었다.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떠난 넘은

지가 물어놓고는,

제아무리 펄펄 뛰고 아프다고 난리를 피워도

눈썹 하나 까닥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만하게 외면한 채로

나 몰라라 하였다.

 

테리가 보여준 갖가지 새로운 반작용은

신선한 놀라움과 즐거움이었다.

 

테리는

자기가 뭔가 잘못을 저질렀고,

 

즉, 고의던 실수던(?)

주인을 물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물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것 같았다.

 

내가 통증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동안,

녀석은 흥분해서

나에게 다가와 매달리며

짖어댄다.

 

잘못은 결국 내게 있었기에,

테리를 나무라진 않았음에도

테리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피가 배어나왔다.

그것도 흥건할 정도로..

 

욕실에 가서

피를 짜내고 상처를 씻는데

 

따라온 테리는

세면대 앞에 서 있는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하다는 듯

일어선 자세로 지켜보고 있다.

그것도 자못 걱정스럽다는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이다.

 

인간인 우리에게 테리의 그런 반응은

진기하다.

 

그건 마치 실수로 친구에게 상처를 입힌 후에,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따라다니며

위로하고 사과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테리는 이후로

내가 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곁에 붙어서

같이 상처를 들여다보기까지 한다.

 

그리고 내 상처를 핥아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피가 나지 않았다면

아마 난 장난삼아서

핥으라고 했을 것이지만,

 

일단 상처가 났다면

그건 위험하다.

 

그래서 못하게하자

테리는 더욱 흥분해서 내게 매달린다.

 

유아견 때부터 키운 것이 이런 건가 싶다.

 

녀석은 어릴 때

우리 집으로 왔고,

이후로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으며

설사 나가도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나가는 걸 싫어한다.

 

테리는 오로지

사람들,

그것도 우리 가족들만 안다.

아마도 테리에겐 우리가 절대적인 존재일 것이다.

 

게다가 떠난 녀석과는 달리

테리는 매우 소심하고 예민하며

겁도 많고 감수성도 뛰어나다.

더 심한 건 영리하기론 치자면 거의 유딩 정도이다.

 

 

오늘 테리의 행동을 보며 웃긴 했지만

한편으론 좀 징그럽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난 테리에게 말한다.

 

'이눔아! 넌 커서 뭐가 되려고 이 지경이냐?

한 살에 하는 짓이 그 정도면

15살이면 우리랑은 말로 대화하고 아예 서서 걸어다니겠구나!

개쉐이면 개쉐이답게 굴란 말이다!!'

 

강아지가 실수로 상처를 냈다고

쫓아다니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걱정까지 해주다니..

 

 

살다살다 별꼴을 다 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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