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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23부- 율군, 그대는 허무개그 하지 말아주길

모놀로그 2011. 8. 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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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부부가 여러가지로 편치 않은 가운데,

그러나 이제 동궁전은 그들의 화합의 무대로 돌변하여

황태자비께서 몸소 태자 전하를 위해

다시금 '황태자 전하를 즐겁게하라!'

는 프로젝트를 스스로에게 명하고,

그것을 온몸을 내던져 행하시니,

 

아마 오래 전,

태자께서 우울해하짐을 보고

'태자 전하를 웃게 하라'

는 특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푼수쇼를 벌였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갈 일이다.

 

태자께선  우아한 손동작만으로 그 푼수 생쇼를 연출까지 하신다.

역시 19세 청소년들이라 그런가

변덕의 수준이 가히 신공의 경지이다.

 

동궁전을 제외한 궁은 어둠과 불안에 휩싸여 있을 것이지만,

뜻밖에 진원지이자 사건의 중심 인물들은

이렇듯 즐겁게 뛰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바로 이게 또한 궁의 매력 아니겠는가?

 

동궁전은 신군과 채경의

안식처요, 요새가 된 느낌이다.

 

이제 아무도 그곳을 침범할 수가 없는

단단한 방어벽이 보이지 않게 쳐졌으니,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그러하다.

 

신군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피땀흘리는 채경의 동작과,

그 동작으로 인한 신군의 리액션이

따사로움을 마구마구 발산할 때,

 

그러나,

늘 그렇듯이

누군가의 행복은 , 누군가의 불행이다.

 

율군은 대체 왜 하필 그 순간에 저기에 저러고 서 있단 말인가?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뭔 꺼리가 없나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참으로 악취미가 아닐 수 없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자기에게 결정적인 말을 던지고

돌아서서

그 불멸의 사랑의 대상을 위해 이 한몸 불사르는

동궁전의 거실 언저리에 우두커니 서 있단 말인가?

 

정녕 태황태후의 말대로

19세 나이는,

 

험악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건

죽음보다 힘든 일일까?

 

나의 19세를 돌아보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어쩜 나도 그들이 19세라는 걸 너무 자주 잊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는 장면이다.

 

밝고, 따스한 동궁전 거실의 태자부부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넘쳐서 흘러나오는

그러나 발코니의 한 구석은

이젠 율군의 얼음연못같다.

 

춥고 허기져보이고 초라한 모습으로

율군은 저 자리에 서 있다.

 

율군의 저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화가 치민다.

 

율군! 제발 너 자신을 사랑해!

니가 널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널 사랑하겠어?

넌 니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방법이 틀렸단 말이야...

 

그럼에도

저 순간만은 나도 모르게 율군의 마음이 아파온다.

 

패배감처럼 인간을 갉아먹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끝내 신군을 이기지 못한,

끝내 채경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패배감이

밝은 동궁전과 전혀 다른,

음습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율군에게서 배어나온다.

 

그의 침울한 표정은

유리창 너머로,

실은 처지로보면 율군보다 더 참담해야할 신군의 밝은 모습과

대조된다.

 

이제 율군을 돌아서서

할마마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있다.

 

대략 할마마마의 품은,

반역을 꾀한 무리가 한번쯤을 거쳐가야할 관문인갑다.

 

율군은 언젠가 그랬듯

거울 앞에 서서

멋지구리 시 한편 날려주시고

마침내 엄마를 찾아간다.

 

'우리 그만 하자!'

'엄마가 한 거 나 다 알아!'

 

그러자 혜정전 왈;;

 

'내가 불 속에 내 목숨 던질 사람으로 보여 내가?'

 

(응...그런 사람으로 보여!!)

 

아! 이제야 율군이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려나보다하고 기대를 품는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자기 한 몸 던져야하며,

 

옳지 않다고 믿는 것에도

자기 한 몸 던져야하니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율군의 경우,

방화범이 다름 아닌 자신의 엄마라는 걸

밝혀야하는 입장이니 난감하긴 하겠다.

 

그래도,

신념을 가지고 비겁한 짓은 할 수 없다!

고 결심해주면 내가 율군에게 참 고맙겠다.

 

더더우기

신군에게

'황태후마마의 작품이냐?

완전범죄 만드시느라 고생하셨겠다'

라는 야유까지 듣는다면,

 

나같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맨발로 황제에게 달려가서

까발기련다.

 

그래서 나의 존엄을 회복하련다.

라이벌인 신군이 뻔히 내막을 알고 있는데,

그 앞에서 채경이로 인한 삽질까지

다 바닥이 난 상황에

뭐가 무섭겠는가!

아니 법도 따윈 우습다며

자기 감정을 까발긴 율군이

뭐가 무섭냔 말이다.

 

엄마??

 

하지만 어쨌든 엄마는 누명을 쓴 건 아니지 않는가!

그녀가 불을 지른 건 사실 아닌가!

 

그냥 신경질 나서 불을 지른 거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

황태자를 모함하기 위해 불을 질렀지 않은가!

 

율군!

제발 날 실망 시키지 말아줬음 한다.

 

거울을 보며

멋지구리 시 한편 읊었다면

이후엔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그런데..

 

어째 율군도 허무개그를 하려는 수상쩍은

움직임을 느낀다.

 

엄마에게 달려가서

우리 그만하자고 외치더니

그걸로 끝이다.

 

신군 앞에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라고 외친다.

 

뭘 잘 알지도 못한담?

신군은 제대로 알고 있구만??

 

'너도 채경이를 사랑한 자격을 논할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뭘 논할 인간이 아니람?

 

당사자인 채경이가 신군이 좋다는데..

 

뭐 신채경을 사랑하는데

그토록 대단한 자격증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굳이 자격증을 논하자면

그 대단한 신채경이 자격증을 준 사람에게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건 신군이다.

 

그럼 자격이 있는거지..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우습다.

 

하튼,

율군도 가끔 나를 너무 허무하게 만든다.

 

엄마에게 달려갔으면

뭔가 담판을 지어야지.

 

왜 혜정전의 실룩거리는 입만 실컷 보여주다가

화면 전환이 되고

그걸로 끝이지?

 

난 율군을 믿는다.

그의 지성을 믿는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려보련다.

그가 어떻게 진실을 밝히는지... 

 

율군 입장에선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신군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