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궁 22부- 신군의 오만한 냉소와 율군의 오만한 독선 본문
궁22부는,
어떤 의미에선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 중 후반 이후의 궁의 클라이막스이며
대개의 클라이막스가 그러하듯
그 억지의 종결을 어떤 식으로든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선지 여러가지 사건들이 숨가쁘게 펼쳐져서
조금 산만할 정도이다.
혜정전에 이어,
신군이 율군과 마주 앉았다.
난 이 장면도 꽤 좋아하는데,
대체로 내가 신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는 실은 유약하고 소심하며 배려많고 여린 인물이면서도,
언제나 의연하고 당당하고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착한 척 하지 않고,
위악적이라는 것이다.
그건 그가 고지식하고 단정한 인물이라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을
오만한 황태자의 가면으로 가리고
말수를 적게하고
분위기로 상대를 제압하며
어떤 경우에도 변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기에
늘 오해를 받는다.
내 일찌기 궁에 나온 인물 중에서
신군을 오해하지 않는 사람은
황후와 태황태후 정도밖엔 보지 못했다.
잔인하고 독선적인 황족의 전형이라고
그를 비난하는 채경이가
일찌기 그를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채경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긴 신군을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부르짖으니
제외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잘 이해하던 채경이가
갑자기 왜 신군을 자신의 적으로 돌리고
비인간적 집단인 황실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기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것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나니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전보다 더 심하다.
사랑은 커녕,
구박만 할 때도 졸졸 따라다니며
신군은 외로워..
신군은 늘 혼자야..
이러면서 아파하던 채경이가 말이다.
채경이 얘긴 하지 말자.
골치 아프다.
말이 안되는 캐릭터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건
시간 낭비이다.
하지만
한 마디 해두자면,
채경이가 그토록 이를 가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집단은
다름 아닌
혜정전이며, 그녀가 등에 지고 있는
종친이라는 세력이고
그들이 미는 것이
그토록 불쌍하다고 채경이가 애지중지하는 율군이라는
웃지못할 사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신군은 자기가 보기에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채경이나 율군에게 별로 말이 없다.
그냥 말만 없으면
난 짜증난다.
난 부당하게 학대받으며 쥘쥘 짜는 캐릭터를 증오한다.
그런데,
신군이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별로 변명을 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는 정말 오만하다.
그는 마치
너희들을 향해서 뭔가 변명한다는 건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내가 입을 열지 않을 뿐이다
라는 듯,
한 수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섹시한 오만함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게 신군의 매력이다.
내심 절실한 마음으로
혜정전을 찾아왔지만,
그는 근육 하나 까닥 않하고
냉소적이며 건방지기 짝이 없는
협박을 오히려 공손하게 퍼붓고
우아하게 사라진다.
이어서 마주친 율군에게
그는 말한다.
'너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마'
그렇다.
혜정전과 율군은 자신들만 상실했고
상처받았다고 울부짖는 어린애들이다.
황후와 신군도
사람이고,
그들이 원하는 건
다른 한쪽이 빼앗겼다고 이를 갈면서
되찾겠다고 펄펄 뛰는
황위와 그에 따르는 갖가지 부수물이 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황후가 원한 건
남편의 사랑이었고,
신군이 원한 건
인간 이신으로서의 자유와,
따뜻한 부모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별로 원하지도 않았던
황위의 중심에 서는 것으로
혜정전과 율군의 온갖 공격을 받아야한다.
엄밀하게,
혜정전과 율군은 빼앗긴 것이 아니다.
아니,
황후와 신군이 빼앗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간 인물로
황후와 신군을 증오한다면,
그 또한 내겐 희극으로 보인다.
황후와 신군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그것들로 인해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했지만
그렇게 떠들어대진 않기 때문이다.
도무지가
혜정전과 율군은 너무 시끄럽고
말도 많다.
그래서
모처럼
신군이 한 마디 해준다.
'나한테 이런 말까지 하는 건 도와달라는 뜻이야?'
라는 율군의 유아적이고 단순한 질문에
신군은 답한다.
'아니, 니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
혼자만 피해자인척 하는게 비위가 뒤집어져 말이지'
(대사는 부정확하다'')
그런데
난 신군의 저 말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무척 웃었다.
저 한 마디로
율군의 말을 너무나 보잘 것 없게 만들어버리는
신군이 재미있어서이다.
그는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 그렇듯
한 마디에 굉장힌 무게가 실리고,
그것은 또한 굉장한 진실이다.
그리고
오만하다.
그 오만하고 거만한 냉소는
율군이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다.
율군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신군은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일수도 있지만,
어떻든
신군과 함께 있을 때
율군이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신군의 저 오만한 냉소라는 강력한 자기 방어의 무기를
율군이 미처 깨닫지 못하게 때문이 아닐지..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법인데,
물행히도
율군은 신군을 너무 모른단 말이다.
자기가 만들어낸 신군의 허상에 눈이 멀어서,
마치 채경에게 그러하듯
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또다른 율군의 오만함일 것이다.
하지만
율군의 오만함엔 독선이 있고,
신군의 오만함엔 냉소가 있으니
난 그들이 마주 않은 이 장면이
즐거운 것이다.
'주지훈 > 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궁 22부- 신군의 눈물과 율군의 눈물 (0) | 2011.06.19 |
---|---|
궁 22부 -궁과 신군 (8) (0) | 2011.06.19 |
궁 22부-주지훈의 신군, 캐릭터와 패션의 조화 (0) | 2011.06.18 |
궁 22부- 주지훈의 신군, 익숙치 않은 동선의 매력 (0) | 2011.06.14 |
궁 22부 -궁과 신군 (7) (0) | 2011.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