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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18부- 승하의 고통,또다시 상실하는 가족 본문

주지훈/마왕

마왕 18부- 승하의 고통,또다시 상실하는 가족

모놀로그 2011. 5. 28. 10:19

승하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그에겐 세월에 의해서

걸러지고 또 걸러지면서 응축되고 형상화되어 이젠 생명을 지닌

개체가 되서 그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 했다면,

 

해인으로 인한 고통은

그것과는 또 다르게 너무나 생생하고 부대끼며

감당하기 힘들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그의 음습한 인생에

에너지가 되어주었다면

 

해인과의 결별은

그를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절망과 고통속으로 밀어넣는다.

 

남녀의 사랑과, 그 이별의 고통은

가족과의 그것과는 또다른 격렬한 아픔이라는 걸

승하는 배웠을 것이다.

 

대개

정상적인 남녀의 사랑은 가족의 사랑으로 진화된다.

 

아니 그렇게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인 가족이라는 것의 태동이

바로 남녀의 사랑이다.

 

승하에게 해인은 또다른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씨앗이었다.

 

그가 잃어버린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자신의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씨앗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상실하였다.

 

아니

애초에 그걸 가질 수 없음을 통감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족을 잃었을 때와는 또다른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이미 많이 약해져있는 만큼

그 고통은 갑자기 승하에게 괴물처럼 달려들어서 갉아먹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린 너무나 나약해진 승하를 보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게는 물론

우리에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다.

 

 

난 해인에게서 돌아선 후에

너무나 힘들어하는 승하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마왕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가슴 아픈 부분이기도 하지만

 

결국

승하는, 자신의 원한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용하던 해인의 손에 이끌려

원한에 사로잡혀 소모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청춘은 봄날처럼 따스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해인에 의해서 다시금 자기에게 허용되지 않을 그것들,

애초엔 자기가 버렸지만,

이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게 된 그것들을

확실하게 떠나보내는 고통이

이제는 소년의 그것이 아니라

한 남자의 그것으로 보다 리얼하게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가족을 잃어버리는 아픔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견주자면,

 

전자는 가족에 대한 연민이지만,

사랑을 잃어버리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이때 사랑하는 사람은 곧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이기에,

그녀를 거부하고 돌아설 때

해인에 대한 연민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다를 바 없으며,

따라서 연민의 고통의 무게는 물론 두배가 된다.

 

승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도,

뭔가를 원해본 적도 없지 않았을까?

 

승하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가족에 대한 연민을 풀려고 했지만

결국 해인을 통해

포기했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다시 한번 포기하는 아픔을 맛보는 것 같다.

 

승하가 멀쩡한 인간이었다면

단순한 실연의 고통이겠지만,

 

그에겐 해인이란 존재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그의 고통은 내가 가히 짐작하기도 미안할 정도이다.

 

사랑밖에 가진 것이 없는 인간에게

그 사랑은 사랑 이상의 의미라고

일찌기 레마르크가

개선문을 통해 말했듯이

 

승하의 상실감과,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