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 18부-강오수의 밧줄 본문

주지훈/마왕

마왕 18부-강오수의 밧줄

모놀로그 2011. 5. 12. 16:11

대개 팽팽하던 신경전에선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나면,

이후엔 맥이 빠져버리고,

그 긴장감이 와해되기 마련인데,

 

마왕에선 오히려 정태성의 정체를 오수가 알고난 후에

둘 사이의 긴장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신경전도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강도는 색다른 방법으로

더해가고 있다.

거기에 이전에 없던 처절함까지 가세해서

후반부를 이끌어간다.

대단한 필력이 아닐 수 없다.

 

거듭된 신경전과 사건으로 지칠대로 지쳐가는

캐릭터들은, 그러나 이제 정신력으로 버티며

눈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바싹 타들어간 입술은 결연해진다.

그래서 마왕 후반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때까지 유지해온 극의 중심을 이어간다.

 

 

 

다시 취조실,

오승하가 석진의 변호인으로 취조에 동석하고 있다.

 

그는 무표정하고 사무적으로

취조에 응하고 있다.

 

그 광경을 의혹에 가득 찬 시선으로 오수는 지켜본다.

그에게 이제 오승하는, 변호사 오승하가 아니라

정태성이다.

 

정태성의 눈빛이요, 정태성의 표정이다.

취조실 너머로 자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도

정태성이다.

 

그는 그 정태성이 변호사의 가면을 쓰고 의례적으로 하는 말과는 별개로

오수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달리 있음을

이젠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는 정태성이 자기에게 보내는 불길한 메시지를 받긴 하지만

그 의미를 몰라서 안타깝다.

 

따지고보면

오수의 가해자들은 항상 그의 친구나 가족들이다.

소년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하다.

 

소년 시절엔 힘이 없어서 그랬다치고,

형사인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들 때문에 힘이 없다.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듯이

지금은 진실을 알고 싶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는건

오수 한 사람 뿐이다.

그 자신도 그걸 느끼고 있다.

 

지금도 엄밀하게,

자기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건

오승하가 아니라,

석진인 것이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입을 다물고 있다.

순기도 결사적으로 자신을 숨기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았다.

 

그가 지켜주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다시피한 그들이

오히려 진실을 숨기다가 파멸해가고 있으며

덤으로 오수 자신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석진이 무죄라는 건

오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승하가 석진의 변호를 자청했다면,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석진이 되는 셈이고,

그렇다면 진범이 따로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누군가를 승하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오수가 승하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과 아지 못할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면

인간은 고독해진다.

그럴 때 누군가를 찾게 되는데,

지금 오수가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우습게도 승하이다.

그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오수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 오승하가 된 셈이다.

 

 

자기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와 불신과 의혹 따위의

복잡한 감정들은 승하만이 그 답을 쥐고 있기에,

또한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 상대는 승하뿐이기에

그는 심리적으로 승하에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강오수,

그가 자기도 모르게 붙잡은 오승하라는 밧줄은

그러나 대단히 위험하다.

어쩌면 중간이 썩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거라도 붙잡고

진실이라는 곳을 향해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겠지만,

곧 끊어질 것이다.

 

그가 떨어질 곳은

그 어떤 무간지옥일 것이다.

 

오수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오수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오수를 곤경에 몰아넣은 사람들이

다름아닌 그가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이들이며,

그를 배신한 것도 그들이며,

그래서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승하에게

매달리며 그를 밧줄로 잡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미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오수가 딱하다.

 

그리고,

어쩌면 승하도 그런 오수가 딱할지도 모르겠다.

 

 

승하의 말대로

 

이제 세상엔 승하와 오수만이 남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의 목적은 같습니다'

 

라고 승하는 말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같습니다'

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그리고

그 순간이 점점 더 가까와지고 있는 것이다.

 

진실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순 없다.

그럴 때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오히려 이제부턴 진실은 파괴적인 힘을

휘두르며 모두를 극단으로 몰고가게 될 것 같다.

 

그건 단지 오수만이 아니라

승하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18부에 이르러

지친 듯한 화면에 자욱한 비명소리가

언뜻언뜻 들려오는 것만 같다.

'주지훈 > 마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왕- 오승하 (18부-4)   (0) 2011.05.13
마왕- 오승하 (18부-3)   (0) 2011.05.13
마왕 18부- 신이 아닌 오승하  (0) 2011.05.11
마왕- 오승하 (18부-2)   (0) 2011.05.11
마왕 18부- 오승하 거미줄과 강오수 파리  (0) 201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