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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21부- 명선당의 신군

모놀로그 2011. 5. 2. 11:11

궁은 참 묘한 드라마이다.

 

참을 수 없는 경박함과,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 공존한다.

 

대개,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은 신군이 온통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화면에 나오면 꽉 차는 느낌을 준다.

신군은 상대적으로 매우 정적인 인물이니만큼

그때의 화면도 고적하고 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채경쪽의 경박함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이다.

 

황제에게 무참하게 까이고,

채경의 무대책적인 혜정전측, 그러니까 혜정전과 율군이 하는 말이라면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저 따르는

이른바 아낙네 스타일의 석고대죄에 대해서도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권했다가

한 마디로 거절당한 신군은 이제 하릴없이

명선당을 서성대고 있다.

 

 

난 이 장면을 무척 좋아하는데,

특히 그가 회상하는 장면이 좋다.

 

궁의 영상미가 특히 극대화되는,

궁의 아름다움은 건물과 정원의 조화에 있다.

 

황제와 황태자,

부자가 함께 궁 안을 산책하고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 황제는 호강에 겨워 요강에 *싼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적나라한 속담이 떠오른다.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불행히도 황제 자신이 자신이 얼마나 복이 많은지 몰라서

스스로 걷어차면서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게 문제이다.

 

그의 아내는 현모에 양처요,

바른 판단력을 가졌으며,

 

그의 아들로 말하자면,

총명하고 듬직하다.

 

딸은 발랄하고 영리하기 짝이 없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초연하기까지 하니,

 

이만하면 그의 가족들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가 그 가치를 모르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도 좀 캐릭터가 이상하다.

 

 

그는 학자 타입의, 소심하고 예민한 인물처럼 보이는데

막상 그의 마음이 가는 곳은

혜정전같은 타입의 여자이다.

 

하기야,

자기 자신에게 없는 면을 가진 화려한 혜정전이

그에게 주는 미혹을 뿌리칠 길이 없나보다.

 

황후야,

까놓고 말해서 재미라곤 없는 여자일테니까.

 

그건 신군과 비슷하다.

그도 어찌보면 정말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인물 아닌가!

ㅋㅋ

 

황제 자신도 내가 보기엔

재미없고 답답하기론 그들 못지 않건만

공연히 황후나 아들은 배척하면서

엉뚱하게도 자기와는 전혀 다른 혜정전에게 쏠리는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하긴, 그게 사랑인가?

 

아무튼,

신군의 회상 속에서

궁안을 산책하다가 율군을 만나자

너무나 반가와서 황제의 체통을 잊고 뛰다시피 한다.

 

깊이 총애하고 있는걸로 보이는데,

어쩌면 신군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보이는건지도 모르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도 율군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형의 아들이요,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이기도 하니,

따지고보면 아픈 조카이기도 하다.

 

율군에게도 동정의 여지가 매우 많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멀쩡한 황태손이 난데없이 내쳐져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했으니

자기완 무관한 선대들의 악연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딱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대개 자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게

바로 선대들의 악연일 수밖에 없는 게

또한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 심한 황족들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황제는

그날, 아들은 물먹이고

석고대죄를 하는 어린 며느리까지 생까주시고

그 율군을 황태자가 마땅히 참석해야할 자리에

동반해서 가버렸으니,

 

이건 황제 스스로가 자기 아들보다는

의성대군이 자기의 대를 이어

황제에 오를 만한 인물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그런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을만한 행동이라는 건

알고나 있는지 의아하다.

 

자기 자신,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아니 그래서 그런건지

며느리에겐 가혹하기 그지없다.

 

자기가 그랬기에

며느리도 그럴거라고 생각하는건지

어린 며느리가 어디가서 바람이라도 피우고 왔다고 생각하는건지,

 

대개 부도덕적인 인간들일수록

남에겐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법인데

 

그런 의미에서

난 황제가 정말 신기한 것이다.

 

만에 하나 채경이가 진심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한들,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황제이고,

그걸 용서하지 못할 인물은

황후이건만

 

이건 어찌 된 것이

황제야말로 제일 진노하고 있으며

강한 의심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분노와 의심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노골적인 증오로 표현되어

그들을 냅따 차버리고

율이만 데리고 나가버린 것이다.

 

 

그런 참담한 속에서

홀로 남겨진 신군은 명선당을 서성이고 있다.

 

우린 신군의 의식 깊숙히에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역시나 아직은 어린 신군의 일면을 본다.

 

또한 율군에 대한 묘한 패배감을 지니고 있기까지하다.

 

아버지와의 사이에,

또한 아내와의 사이에

늘 율이라는 존재가 어른거리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명선당 장면은,

가끔 궁에 찾아드는 매우 정적이면서도 고적하고

쓸쓸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이 있다.

 

어린 신군이 짊어지고 있는 너무나 많은 짐들과,

그 짐을 묵묵하게 감수하려는

신군이라는 존재의 무거움 앞에

공내관 정도의 인물이 고개를 숙이듯,

 

명선당에 흐르는 정적조차

신군에게 조아리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멀찌기 밀어내며

씁쓸하게 웃는 듯, 우는 듯

 

그저 눈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아직은 어린 신군이 뿜어내는

존재의 무거움에

나도 모르게 부대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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