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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21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경박함과 초라함

모놀로그 2011. 4. 29. 02:10

그럼 이제 채경을 보자.

 

동궁전, 발코니에서

신군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다.

 

거기에 채경이 다가온다.

차라리 그냥 당당하게 오던가,

쭈빗거리며 여전히 화장이나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로

다가오더니,

여전히 화장이나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말투로,

 

'신~~구운;;미안해'

 

휴!

여기까진 이해하겠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뭐가 더 있겠는가?

 

하긴, 저러고 있는 채경을 보면

정말 신군이 흘린 눈물이 좀 아깝긴하다.

이어지는 말들은 더 심하다.

 

'사랑한다구 구래짜나...

진심이라면..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해해주면 안 되?

미안하다는 말로 안되는 거야?'

 

차라리,

동궁전의 황태자비 거치에서 예전처럼 고집스럽게 여전히 콧대 세우고

앉아 있는 편이 낫겠다.

 

저게 뭔가?

저런 대사는 정말 사절하고 싶다.

 

 

내가 신군이라면,

좀 전에 흘린 눈물이 아까와질 것 같다.

하긴 정말 그 눈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줌 남아 있던 사랑조차 홀라당 사라져버릴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드라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한 후에,

바로 그 여자에게  저런 말을 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싸다귀가 날아갔을 것이다.

아니, 그런 대본이 나왔을 것이다.

 

하긴 저런 대본을 누가 쓰겠는가만서두.

그 정도로 너무 가볍고 의미없는 말이다.

 

그들은,

또래 친구인,

평범한 동네 처녀 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국의 황태자요, 황태자비이다.

그리고 방금 전에

방송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서

시어른들을 기함시켰으며

 

행여 황실이 폐지되어 거리로 나앉을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황제를

진노케하였다.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채경이는 여전히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설사 일국의 황태자부부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진다쳐도,

그냥 사귀는 남친도 아닌, 남편이다.

 

그 남편이

 

'사랑해!!'

 

라고 확성기에 대고 외치자,

 

'이혼해'

 

라고 더 큰 확성기에 대고 화답해놓고는,

 

'미안해, 날 사랑한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자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곤란하다.

더 심한 건 그 앞에 붙이는 단서이다.

 

'진심이라면..'

'진심으로 날 사랑한다면..'

 

이라는 말을 대체 왜 하는걸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여전히 니가 하는 말은 다 못믿겠지만,

 

'만일에 사실이라면!!'

 

이런 뜻 아닌가?

 

더 나아가면,

 

'니가 내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시 넌 진심으로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라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면

신군은 무조건 채경이를 용서해야한다.

 

안그러면 자기 고백의 진위조차 의심받을 판이다.

정말 신군은 열받아서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내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자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