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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21부- 망가지는 만큼 매력있는 궁

모놀로그 2011. 4. 20. 02:25

난 가끔 궁을 보고 있노라면,

다모가 생각난다.

 

어쩔 수가 없다.

 

우선 내가 최고로 사랑했던 캐릭터인

황보윤이 신군과 참 많이 닮았다.

 

이지적이고 냉철하고 표현력 약하지만, 여리고 남성적이다.

 

황보윤도 섹쉬하기론 그 어떤 캐릭터도 발치에 못온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는 말이다.

 

그 이상 더 멋진 캐릭터는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신군이라는 복병이 튀어나와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냅따 그쪽으로 달려갈 줄은

종사관 나으리께서도 미처 몰랐으리라..

 

풀밭에서 옥이를 보내는 심정으로

날 보냈을까?

 

ㅋㅋㅋ

 

아무튼,

 

다모는 사전제작된 드라마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라마의 중반까지만 사전제작되는 바람에,

뒷부분으로 가면서 갑자기 크게 휘청인다.

 

그런데

그렇게 휘청이는 틈에 다모는 망가지지만,

동시에 굉장히 드라마틱해지는 것이다.

 

사전제작된 부분에선

과연 장관을 이루는 영상미에

조화를 이루는 캐릭터들,

 

타당성 있는 전개 등등으로

완성도가 높은 대신에

 

그렇게 조화로운 작품에 반드시 따르는

나의 반응,

 

즉, 그냥 좋은 드라마 하나 감상하는 기분으로

멀찌기서 보았을 뿐이다.

 

빈틈이 별로 없기에

나도 개입을 안한다.

 

그런데

중후반에 갑자기 망가지기 시작하니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을 파고들어 필연적으로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속출한다.

그래서

갑자기 내 흥미를 끈다.

뭔지 모르게 균형을 잃으면서 오히려 매력적으로 변한 것이다.

 

아마 인간도 그럴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균형잡힌 인격을 가진 남자가 있다고 치자.

 

흐미

매력 없는 거...

 

그냥 나무랄 데 없는 남자이긴 하겠지만,

그 인간을 목숨 걸고 사랑할 맛이 나겠는가?

 

그래서 그런 인간들은,

자기에게 걸맞는

좋은 집안의 균형잡힌 규수와 결혼하고 잘먹고 잘살며

자기들같은 자식을 낳아 대대손손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좀 이상한 인간이 있다고 치자.

 

어딘지 빈구석이 있다.

멀쩡해보이고 그럴 듯 해보지만

정신 병리학적으로 심히 문제가 있다.

그런 남자라면

아마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흥미로울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목을 매다가 신세 망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그런 남자에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며 울고불고 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개나소나 그런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명품이어야한다.

 

명품이긴 한데

흠집이 좀 있는 제품인 것이다.

 

 

다모나 궁이 그러하다.

 

두 작품 모두 보기 드문 명품들인데

뭣 때문인지 갑자기 캐릭터들이 우왕좌왕,

작가도 헤매고 피디도 헤매고

그러다보니

조화가 꺠지고, 그걸 땜빵하기 위해서

각종 드라마틱한 장면에 공을 들인다.

 

다모에선 그 수혜를 황보윤이 받았듯이

궁에선 신군이 그러하다.

 

(하긴 다모의 경우는 다모폐인들의 80프로가 황보윤에게 홀릭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디의 생각과는 별개로,

시청자들이 원하는 캐릭터에게 비중을 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궁이 잘 나갈 땐

다모에서 채옥이가 최고로 돋보였듯

채경이가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고

그래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공은 신군에게 넘어간다.

 

이상한 일이지만

여주가 끌어가는 드라마는 대개 여주가 망가지면

남주가 급부상하게 되더란 말이다.

 

멋지던 여주가 갑자기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다보니

그 짓거리로 인해 상처받으면서도 페이스는 잃지 않는 남주에게 동정과 시선이 쏠리고,

그 둘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속출한다.

 

어쩜 그리도 다모가 걸어간 길을

착실하게 궁도 따라가는지??

 

채경이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상한 상황의 피해자이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신군과.

 

그 바람에 더더욱 드라마틱해지는 극은

망가지는 바람에 얻어낸 반대급부이다.

 

 

다모는 내가 첫회부터 본 유일한 드라마이다.

가 황보윤에게 빠진 게

다모의 중후반이다.

그리고 다모가 망가지는 것도

중후반이다.

 

반대로,

난 신군에겐 곧바로 빠졌는데,

그 이유는

첫회부터 보지 않고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보았기 때문이다.

조화가 꺠지고 캐릭터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드라마틱해지기 시작하는 극의 중심에

신군이 혼자 우뚝 서게 되는 것부터 보게 된 것이다.

 

궁이 망가지면서 신군이 유독 멋있어진 건 사실이니 말이다.

 

배우 주지훈에 대한 멋진 리뷰를 쓰셨던 분 말대로

좌초하는 궁을 혼자 떠매고 있던 것이 바로 신군이니,

 

게다가 그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도

유독 꼿꼿하게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타서 혼자 안들호,

그러니까

좋은 안들호로 가버리는 캐릭터이자 배우가

신군과 주지훈인 것이다.

 

채경과 율군은 나쁜 안들호로 가면서

신군에게 바이바이한다.

그들은 나쁜 안들호에서,

자꾸만 이상한 짓을 한다.

 

그 바람에 극은 더 망가지고

망가지는 만큼 드라마틱해지고

그만큼 더 신군은 멋있어진다

 

거참 이상도 하지..ㅋㅋ

 

그리하여

후반의 궁은,

마치 다모가 그랬듯

 

말은 안되지만,

뭔지 모르게 매혹적인 분위기와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속출하고

 

그 중심엔 신군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쯤 되면 망가져준 것에 감사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