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 17부- 해인과 승하의 오르골 본문
해인은 멀찌기서 천천히 다가오는 승하를 발견한다.
그녀는 반가움에 활짝 웃는다.
그때까진 아마 오수 때문에 근심하고 있었나보다.
착하기도 하지.
그녀는 자기 자신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아직까진 승하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는다.
승하는 그녀가 별로 걱정해줄 필요가 없는
남부럽지 않은 멋진 엘리트, 이 시대의 지성인인
변호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착잡해하던 두 남녀가 마주친다.
해인은 승하를 반가이 맞이하지만,
그러나
그의 기색이 다른 때와 다름에 놀라는 눈치이다.
그녀에겐 승하는 언제나 침착하고
자신만만하고 냉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다소는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 승하가
갑자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침통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지그시 자신을 바라본다.
깊은 밤이다.
'밤은 모든 것을 과장한다'...고 레마르크라는 작가는 말했다.
게다가 승하는 술을 마셨다.
오승하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나약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술냄새 팍팍 풍기며
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때 그의 표정은...
어떤 소설에서 읽은 귀절이 생각난다.
'자기가 내려서 머무를 수 있는 섬을 떠나가는 사람의 표정'
이라는..
해인을 바라보는 승하의 표정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표현된다.
사실, 그는 해인을 만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어딘가 가야겠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아니다.
실은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해인이다.
그래서 술김에 해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너도 별 수 없구나.
라는 듯..
하지만
승하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는 에너지를 그동안 오르골에서만 충전한 건 아니었다.
거의 매일 같이 도서관을 찾아서
그곳에선 빛을 흠뻑 들이마시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곤 했다.
그건,
인간의 향기,
생명의 향기,
그리고 빛의 향기와,
일상적인 안정의 향기이다.
오승하는 한번도 밖에서 술을 마신 적이 없다.
그는 두려웠다.
자기가 다른 사람이 될까봐..
그리고 그가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되버렸다.
혹은, 다른 사람이 되보고 싶어서 술을 마신걸까?
난 사람 같지 않나요?
라고 사무장에게 쓰디쓰게 되물었듯이,
아니,
자기가 사람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가는 과정 속에서
사고 한번 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하던 그가
술을 잔뜩 마시고
남들처럼 좋아하는 여자를 찾아온다.
과연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되어보고 싶었다.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사는 것이 지겨웠다.
그래서 그는 사고를 친다.
해인을 억세게 포옹한 것이다.
다신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니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것.
혹은 자기가 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은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간절하게 매달리듯
그렇게 결사적으로 해인을 포옹한다.
해인은 과연 놀라지만,
그러나
이때, 해인의 승하에 대한 마음이 드러난다.
평소와 다른 승하의 행동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몸으로, 마음으로
그를 이해하고,
그 순간의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본질이 추구하는 가장 원초적인 감성이다.
아마, 해인은 그 순간에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가 승하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래서 더이상 아무 말도 필요없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 사이라면
저 순간이 어떤 의미이건
아무 말도 필요 없다는 것,
아니 승하가 원하는 건 결코 질문이 아니라는 것과
셜명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포옹에 응답하려한다.
하지만,
승하는 그것을 뿌리친다.
아마 그로선 아직은 버리지 못한 마지막 이성일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이 함축된 이성이다.
그녀의 포옹마저 허용한다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질 것만 같은
자신이 두려웠으리라.
그는 과감하게 돌아서서 멀어져간다.
(솔직히 해인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그냥 가버리면
못쓴다고 본다.ㅋㅋ)
홀로 남은 해인은
아마도 승하로 인해 들뜨고 설레며
동시에 뭔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오르골을 열어본다.
이상한 우연이지만,
아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도 모르지만,
승하는 자신의 원한과 고통의 상징인 오르골을
해인에게 선물하는데,
그 오르골이 그녀로 하여금
승하라는 인물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럼으로써 승하와의 관계를 피상적인 것이 아닌,
보다 깊숙한 것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된 것이 의미심장하다.
승하가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오르골..
그것을 해인 모녀에게 선물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승하의 잠재의식일까..
그에겐 그들이 또다른 그의 가족이었던걸까??
확실한 건,
어떻든 오르골은 승하가 해인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그것은 해인에겐 의미가 깊다.
그녀는 아마도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승하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그러나 뭔지 모를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인해
오르골을 열어보았을 것이다.
그녀에겐 오르골이 승하이다.
아니, 자신이 승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자 매개체인 것이다.
그때의 해인은,
아마도 처음으로 이성과의 접촉으로 인한 들뜬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 외에도 뭔가가 그녀를 자극했던 것 같다.
단지 승하에 대한 애틋함에서 오르골을 열어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무의식에선 말이다.
그렇게 오르골을 여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굳게 닫혀있는 승하의 의식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을 오승하의 실체에 보다 깊숙히 다가가려는 몸짓이다.
그런 그녀의 잠재의식 속의 간절한 마음은
그가 준 오르골을 열고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극도로 예민한 그녀의 감각과 초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보고 또한 듣고야 마는 것이다.
다름 아닌
오승하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사랑의 힘이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그의 심리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맘대로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런데
해인은 승하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 그는 자신을, 자기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데,
실상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를 자극한다.
그를 알고 있는
그녀의 잠재의식이 부르짖는다.
그를 넌 알고 있다고..
그가 누구인지 넌 알아야한다고..
그래서
그녀의 초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단숨에
오승하의 본질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어떠한 것일까?
승하와 해인에게 있어서
그 진실은 어떠한 의미가 되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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