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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 16부- 승하와 오수의 슬픔의 강

모놀로그 2011. 3. 6. 13:31

드디어, 정태성과 강오수가 만난다.

이 장면은 생각했던 것보단 긴박함이 덜하다.

 

하지만 매우 아름답다.

 

마왕은, 장면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다.

스케일 큰 영상미에 어울리는 비감한 음악이

그 장면이 말하고자하는 비극성을 고조시킨다.

 

성당에서의 대결은,

아직은 에너지가 완전히 분출되지 않고 있지만,

시작부터 카메라는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의 승하와 오수의 터질 듯한 심리의 파고를

카메라가 표현해줄 뿐,

 

막상 두 사람은 생각보단 차분하다.

특히, 승하는 그렇다.

그는 여전히 그 빈틈 없고 깐죽대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고수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지만,

멀리서 쨉만 날릴 뿐

결정적인 한방은 아껴두는 느낌이다.

 

마지막에야 서로에게 약간의 데미지를 입힌다.

그런데 어쩐지 승하 쪽이 더 타격을 받은 것 같다.

 

 

'자신의 죄는 쉽게 용서받고 싶어하면서

남에게 정당성을 요구하는 건 웃기잖냐!'

 

'넌 사람을 죽여놓고도 권력의 힘으로

슬쩍 피해자로 둔갑해놓고는

누굴 심판할 자격이 있냐!!

니 입에서 인간 목숨의 존엄성이니, 인간의 도리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건 희대의 개그 아니냐!'

 

는 승하의 강펀치에,

 

'넌 해인씨를 이 사건에 끌어들여 이용했다.

내가 사랑하는 해인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널 좋아하게 만들었다.

해인씨가 이 모든 걸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일까?

 

해인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너같은 살인자를 사랑하고 있다.

너도 해인씨에게 아무 마음 없는 건 아니지?

니가 그럴 자격 있어?'

 

이렇게 해인을 내세워서

보다 강력한 펀치를 먹인다.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한 승하의 아킬레스건이자,

오수의 자존심이다.

 

한 여자를 둘러싼

남자 대 남자의 대결에서

어느덧 자신이 밀려났는데,

그 상대는 절대로 해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남자라는 사실,

 

대개의 남자들은 그런 사실에

격분한다.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비극인가!

 

오수는 자기의 과거를 해인 앞에서 고백한 이후로

해인에게 접근하는 걸 자제해 왔다.

 

그런데 사건의 당사자인 승하가 해인과 점점 다정해진다.

 

대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냐는 듯한

오수의 반격이다.

 

사실, 그 말엔 승하도 할 말이 없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겁나지 않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다고 믿는 승하는,

그러나

해인 앞에서만은 자신이 이젠 없다.

 

해인이 자신이 정태성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

모르고 넘어가주길 바라게 되었다.

 

그 자신도,

자기가 오승하의 껍질을 입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까진

해인과 함께 있을 때의 그 설레이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싶다.

 

그건 얼마나 이기적인 욕망이었던가!

지금 오수는 그걸 지적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나 이성적으론 승하에게 어차피

약자인 오수지만,

 

해인이라는 여성을 사이에 두고

남자대 남자로 맞서서

절묘한 순간에 승하의 감성을 자극한다.

 

처음으로 승하는 오수 앞에서 눈을 내리깐다.

 

하지만 그건 꼭 해인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승하는 알게 모르게 많이 지쳐 있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설계도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거기까지 오는 동안

그가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알게 모르게

승하를 자극하여

약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건물은 훌륭하게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

막상 기초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위태위태할 즈음이다.

 

그는 세상에 나와서

너무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러면서 삶속으로 깊이 들어와버렸다.

 

인생이란 건

생각보다 매혹적이다.

더더욱 그는 아직 젊다.

 

소모되지 않은 청춘이 그의 내면에서

꿈틀대는데,

그걸 자극한 것이

물론 해인이라는 존재이다.

 

아니, 해인이라는 존재를 매개체로 그가 접한

긍정적인 세상이다.

 

오수는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휘청한다.

 

오수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승하가

우두커니 서 있다.

 

이윽고 오수와 승하의 얼굴이 교차되며

장엄하게 흐르는

 

슬픔의 강은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다.

 

슬픔의 강, 이쪽 저쪽에 서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어느덧

두 사람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오수가 이쪽으로 건너온건지,

승하가 저쪽으로 건너간건지

 

아무튼 이제 둘이 함께 그 슬픔의 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렇게 흐르는 슬픔의 강처럼,

오수와 승하의 얼굴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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