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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남주-이병헌과 신현준

모놀로그 2011. 2. 24. 22:47

마왕의 주지훈평을 쓴 글을 시청자 게시판에서 보고

퍼왔지만,

난 그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다.

 

특히 여주와 러브라인을 갖는 것이 메인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주장엔 더더욱 공감할 수 없다.

 

드라마는 물론, 남주와 여주의 사랑타령이 큰 줄기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드라마는 멜로이다.

 

아니, 그렇지 않은 척해도, 결국은 멜로가 주류를 이룬다.

실제로 멜로가 빠지면 김빠진 맥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인 남자라고 모두 여주의 사랑을 받은 건 아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해피투게더의 '서태풍'과,

천국의 계단에서의 '신현준'역이다.

(캐릭터 이름이 기억 안남)

 

해피투게더야 두말 할 것 없이 이병헌의 드라마이지만,

천국의 계단도 실은 메인 타이틀은 신현준이다.

 

즉, 최지우와 권상우의 사랑을 지켜보는 신현준의

사랑이 메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연기력과 배우의 매력도에서 그만 주객이 전도되는 바람에,

천국의 계단은 권상우의 사랑 얘기가 되고 말았다.

 

해피투게더와는 심하게 비교된다.

 

여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남주가 돋보이기란 참으로 힘들다.

그런데, 해피투게더에서 이병헌은,

 

김하늘역이

마치, 부활에서의 한지민처럼 꿋꿋하게 한 남자만 사랑하며,

이병헌역은 그저 자기 사랑의 푸념이나 들어주는 사람 정도로만 대함에도

서태풍은 조금도 극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

 

그건, 김하늘과 송승헌이 당시 연기 경력이나 내공에서

이병헌에게 현격하게 밀리는 탓도 있다.

 

둘이 연기가 서투르다보니

아무리 김하늘이 송승헌만 바라보고 있어도

이병헌이 그로 인해 빛이 바라질 않는다.

 

오히려,

김하늘이 송승헌 때문에 울고짤수록,

그것을 지켜보며 가슴 미어지는 이병헌의 사랑이

더더욱 심금을 울린다.

 

그게 바로 연기력인가보다.

 

해피투게더에서 김하늘과 송승헌의 사랑에 공감하며

눈물지은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강성연과 조재현의 사랑이나,

차태현과 전지현 스토리만큼의 위력도 없었다.

 

이쁜척하는 김하늘과, 맥아리 없는 송승헌의

서툰 연기도 한몫했겠지만,

 

이병헌이 워낙에 대단한 연기를 했다.

 

여기저기서 사람 대접도 못받고 굴러다니는 서태풍역을

그는 정말 멋지게 해낸다.

 

그래서 온갖 배우들이 난무하고

숱한 얘기가 넘쳐나는 해피투게더에서

이병헌은 줄곧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그 자리는 그 누구도 넘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서태풍을 이병헌 연기 중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날들에서야

워낙 라이벌다운 라이벌도 없고,

이야기도 단조롭다.

 

일찌감치 여주는 이민철에게 넘어와서

더이상 아무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

 

아니,

그는 너무나 찬란해서 다른 캐릭터가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해피투게더에서의 그는 너절한 역이다.

여기저기서 얻어터지며 굴러다니는 3류 인생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매력적으로 서태풍을 완성시키는지

감탄스럽다.

 

천국의 계단을 보자.

 

제대로 드라마가 진행되었다면,

만약, 절대로 밀리지 않을만한 배우의 매력도와 연기력이 있는 배우였다면

섣부르게 권상우와 최지우의 사랑 타령에 밀려서,

실은 자기의 사랑이 훨씬 비중이 있음에도

묻혀서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는 사람이 제발 좀 비켜주지?

 

라고 말하고 싶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개 이병헌이나 신현준같이

여주가 하는 눈물젖은 사랑의 둘러리나 하는 역이

절대로 지양해야할 것이 있다면

 

질척대지 말아야한다.

 

가뜩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여주가 하는 사랑을 구경이나 하던가,

더 심한 경우엔 도와주기까지 해야하는데,

 

그 처연한 역에 질척대기까지 하면

정말 못봐주기 때문이다.

 

상대역은 여주의 사랑을 받는 엘리트이다.

 

송승헌은 검사였고,

권상우는 재벌 2세이다.

 

서태풍은 3류 인생이고,

신현준도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음에도

역시 3류 인생이다.

 

그럼 서태풍과 신현준은 뭐가 다를까..

 

신현준이 메인 타이틀임에도 권상우에게 밀리고,

최지우의 권상우의 사랑에 방해꾼으로 전락한 이유는,

 

서태풍과는 달리,

그는 그저 사랑밖엔 난 몰라!!

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메인으로서의 자기 영역을 잃지 않으려면

질척대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랑 외에 다른 인간 관계에서도

꿋꿋해야한다.

 

그래야 그가 하는 사랑이 돋보인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에게 목을 매는 걸

지켜봐야하는 남자가

그 여자만 바라보고 있다면,

 

그건 제2의 남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천국의 계단에선 신현준을 메인으로 내세워,

여동생 아닌 여동생을 우직하고 무식하게 사랑하는 캐릭터로

신현준을 설정했으나,

 

애초에 무리였다.

 

신현준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역인데다가,

권상우에겐 사랑 외에도 다른 걸 주면서

 

신현준에게 준 그림에 대한 사연들은

너무 처절하다.

 

사람들은 신현준의 사연에선 시선이 멀어진다.

그리고

최지우와 권상우의 사랑얘기가 중심이 되버린다.

 

내가 보기에 천계는, 결코 최지우와 권상우의 사랑 얘기가

주요 메뉴는 아니다.

 

오히려 최지우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에게 단 며칠 동안이나마 세상을 보게 해주겠다는 이유만으로

목숨까지 내던지는

신현준의 사랑이 메인 메뉴인 것이다.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밀려나서

 

오히려 최지우, 권상우 커플의 둘러리가 된 건,

역시

배우의 역량탓이다.

 

자기의 주도권과 기득권을

엉뚱한 배우에게 빼앗기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일 뿐이다.

 

원래 천계같은 드라마는,

시청자 입맛에 맞게 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따라서

대중이 권상우에게 환호하기 시작하자

재빨리 노선을 바꾼다.

 

그러나 기존의 대본이 있다.

즉 신현준이 메인이다.

 

그러니 신현준 얘기도 해야한다.

그런데 신현준 얘기를 보고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는 너무 처절한 상황인데,

같은 처절한 상황의 서태풍과 다른 점은

그는 외면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질척대고, 처절하며, 비참하고

뭔지 모르게 짜증나고 피하고 싶어지는 인물형이 되버렷기 때문이다.

 

난 가끔,

내가 본 가장 혐오스런 드라마가 천국의 계단이지만,

그 드라마를 그렇게 만든데 일조한 캐릭터가

바로 신현준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가 중심을 잘 잡아서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면

 

매우 특이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다.

 

마치 해피투게더처럼 말이다.

 

여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켜주기만 하는 사랑을 하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광채를 잃지 않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신현준역을 맡았다면

 

아마 천계는 많이 다른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천계는 최지우와 권상우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신현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지우와 권상우의 얘기가 되버렸는데,

내겐 그들의 사랑은 별로 매력이 없었다.

 

최지우는 신현준 못지 않게 질척대고,

권상우는 좀 생뚱맞다.

 

최지우를 사랑한다는 느낌부터가 내겐 별로 없다.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러다보니

천국의 계단은 그저,

질척대는 두 남녀와,

동떨어진 권상우,

 

그외, 인간 이하인 주변인물들이 너절하게 구는

괴상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최지우역의 젊은 여자 하나를

어릴 때부터 들들 볶다가 비참의 극치를 두루 맛보게 한 후에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이상한 드라마이다.

 

그러고보면

배우의 역량이란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 같다.

 

결국 이병헌은 한국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