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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고주원역과 궁의 김정훈역

모놀로그 2011. 2. 24. 18:50

최근 보았던 부활에서,

고주원이라는 배우를 보며,

난 얼굴 반반하고 젊은 신인급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새삼 깨달았다.

 

그나마 자기 역을 제대로 해내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부활에서의 고주원역은 제작진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활에서 고주원역은, 말하자면

엄태웅역의 라이벌이다.

사업과, 애정의 라이벌인 것이다.

 

아마도 유신혁이었을 무렵엔 번번히 그를 앞질렀을

교만한 왕자님 역이었을 것이다.

 

서하은으로 바뀌면서 이제 그도 패배의 쓴잔을 맛보는데,

그것도 사업과 애정면에서 모조리 역전을 거듭하는 역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전혀 힘도 못써보고 그대로 흐지부지되버리는데,

그걸 그의 연기력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가 힘을 쓸 멍석을 전혀 마련해주지 않았다.

 

 

연기를 잘 하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캐릭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고주원역이 맡은 게

사업과 사랑의 라이벌이라지만,

사랑의 라이벌쪽이 더 비중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가 죽은 걸로 믿고

어거지로 다른 남자의 대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그래도 고주원역에겐 멍석을 펼쳐주는 셈이 된다.

 

 

복수를 결심하고 다른 인물로 변신한 서하은은

그리하여, 서하은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조리 버려야하는데,

그 중엔 사랑도 있다.

 

그에겐 아마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

사랑일 것이다.

 

이후에 쌍동이 동생으로 변신해서 살아가면서,

바로 코 앞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뻔히 두고도 모른 체 해야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주어진다.

 

이때, 그가 애틋하려면,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의 죽음을 확신하고 그를 포기해야한다.

눈 앞에서 그를 포기하고,

대신 다가오는 라이벌에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열어야한다.

 

그래야 그걸 지켜보는 서하은의 고통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라이벌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주는 서하은을 죽어도 잊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영원불멸이다.

 

여기서 또한 그녀가 애틋하려면,

서하은을 잊지 못하면서,

눈앞의 서하은 아닌 유신혁에게 마음이 끌려야한다.

왜냐면 둘은 결국 같은 인물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를 물론 거부해야한다.

사랑하는 남자의 동생인지 형을 또다시 사랑하면 안되니까.

 

그래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제2의 남자에게

어거지로라도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을 해야한다.

 

물론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상황을 구태의연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연출의 힘이고, 연기자의 능력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우선 서하은이 더욱 비극성을 띠게 되었을 것이고,

여주의 비극성도 우리에게 와닿는다.

그리고 제2의 남자도 활약할 무대를 얻는다.

 

일석3조인 것이다.

 

그런데

여주가 제2의 남자를 아예 상대도 안해주면서,

서하은은 죽어도 놓지 않고,

그러면서 서하은 아닌 서하은에게 느끼는 혼란스런 마음도

애매하게 그려지는 바람에

 

서하은과 여주의 사랑은 지루해지고,

서하은과 2의 남자인 고주원의 관계엔

긴장감이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고주원역은 할일이 없다.

 

가끔 여자 앞에 나타났다가 망신만 당하고

남자는 커녕 사람 대접도 못받는다.

 

그래서야 무슨 얘기가 될 것이며,

고주원역이 할 일이 뭐가 있는가?

 

하다못해,

친구로라도 상대를 해줘야 뭘 어찌 해보지 않겠는가?

 

 

마왕에서, 해인이 어떻든 오수에게도 나름 진심으로 대해주고,

그를 비록 동료로만 대할 뿐이라지만

그를 배척하지 않기에,

해인을 짝사랑하는 오수지만

그럭저럭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활처럼 노골적으로 여주가 상대도 안해주면

그 캐릭터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저 사업상의 라이벌로만 존재하게 되는데,

그럼 그 캐릭터의 존재감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고주원역이 빛을 잃은 것은,

그가 연기를 제대로 못한 이유도 있지만,

여주가 그를 심하게 홀대함으로써

도무지가 대립각이 서질 않고,

점점 드라마에서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며,

아예 라이벌이 될 싹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연기가 서투르건 말건

제작진에서 그에게도 뭔가 역을 줘야한다.

 

대개 라이벌이 남주와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려면

여주가 상대편의 캐릭터에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어째서 작가는 여주로 하여금 그를 상대도 안하게 만들었을까?

난 대체 고주원이라는 캐릭터를 왜 부활에 내보냈을까

의아했다.

도무지가 작가부터가 그 캐릭터에 애정이 없고,

힘을 실어주질 않는다.

그에게 아무런 역도 주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과 비교된다.

 

 

궁에서 율이란 캐릭터가 그나마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채경이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은 채경이가 아니면

거의 극 중에서 할 일이 없는 캐릭터이다.

그러니 채경이가 상대를 안해주면

그는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궁에서 율군은 채경이가 없으면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그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여

나름의 캐릭터로 움직이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황제 자리를 노리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한다쳐도

그 이유가 채경이다.

또한 채경이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그만둘 용의도 있다.

 

그러니

채경이가 율을 상대 안해주면

율이 설 땅이 없다.

 

전에도 궁 리뷰에서 썼지만

그래서 작가는 채경으로 하여금 율의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게 만든다.

 

또한 율에게도 뭔가 할 일을 줘야하는데

마땅한 게 없으니

그저 이간질이다.

 

그래서 궁은 망가졌지만,

 

그렇다고 꼭 고주원에게 그런 역을 시키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왕 등장시켰다면

뭐든지 할 일을 마련해줘야하지 않겠는가?

 

율처럼 오로지 채경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진 않게 하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다.

 

그리고 지우신공은 역량있는 작가이다.

그렇다면

고주원역을 그렇게 방치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가뜩이나 막대기같은 여주와 그에 못지 않게 막대기같은 고주원이

아무런 관계도 가지지 못하니

한쪽이 죽어버린다.

 

남은 건

하은과의 사랑 타령과, 눈물뿐이다.

 

그래서

부활에서의 사랑 얘기는 지루하다.

 

사랑 얘기에 많은 비중을 어차피 두었다면,

하은과 여주의 사랑에만 목을 맬게 아니라

거기에 기왕 등장시킨 고주원을 활용했다면 좋았을 걸 싶다.

 

물론 궁처럼

2의 남주를 살려보겠다고

여주를 희생시켜 같이 망가지게 하면 곤란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