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주지훈과 정동환의 연기 대결

정동환이라는 배우는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나이들어가면서 점점 내공이 쌓여

본좌급 대우를 받는 연기자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연기 경력에서

주지훈과 감히 대결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미안하다.

 

하지만,

그 정동환이 맡은 강동현과의 대결에서 주지훈의 오승하가

조금도 밀리지 않은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비슷한 젊은 또래 배우들과 함께

무더기로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나 트렌디 드라마에선

연기를 못하는 게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왕은 다르다.

 

만에 하나 오승하가 강동현과 만나는 장면에서

연기력이나 포스에서 밀리면

그 중요한 장면의 퀄리티가 심하게 훼손되면서

드라마 자체의 함량도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주지훈이 그 장면에서 조금만 밀려도

그 장면이 주는 긴박함이 사라지며

맥이 빠지는 것이다.

 

묵직한 중견 배우와 마주 앉아 연기를 해야하는

신인배우 주지훈은,

오승하라는 캐릭터에 이미 몰입할대로 몰입해 있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연기틀을 이미 만들어놓고 있기에

조금도 꿀리거나 밀리지 않는 놀라운 내공을 보여준다.

 

단지, 상대가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왕에서 실제 배후 인물들이 마침내 대면하는

장면이다.

 

정태훈 사건의 배후 인물인 강동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의 배후 인물인 정태성이 만나는 장면이다.

 

아차 하면 그때까지 잘 유지해온 드라마의 퀄리티가 훼손된다.

 

그런데,

주지훈은 그 장면에서 상대를 강하게 의식하여

공연히 힘을 주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는 얼굴 근육을 전혀 쓰지 않는다.

눈에도 힘을 빼버린다.

거의 나른하게 보일 정도이다.

 

거기서 눈빛을 이글거리거나,

분노를 참는 오버를 했다면

 

정동환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지훈은 포커페이스를 쓰는 방법을 택한다.

 

참으로 교묘한 연기인데,

그는 오승하로서 오승하가 아니라,

강동현의 눈에 비치는 오승하로 보이게끔

한다.

 

즉, 우리도 숨을 죽이고 강동현이 되서

오승하라는 매우 수상쩍은 인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볼 때,

그의 나른한 눈빛과 근육을 쓰지 않는 포커페이스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다.

 

게다가,

그 어느 때보다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천천히 밀어내듯 말하면서

가끔 입꼬리만 사용해서 웃어준다.

 

눈빛 연기가 필요해질 땐

그저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본다.

 

그떄 그 눈빛엔 증오나 분노가 없다.

그것들이 걸러진 눈빛이라

오히려 효과가 극대화된다.

 

피가 맺힌 시선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강동현을 보았다면

구태의연하였을 것이다.

 

그 장면이 매력적인 건,

두 숙적이 예의바르게 서로를 공격하면서

감정을 극도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낄 감정의 진폭은

우리의 상상의 영역에 맡긴다.

 

그 힘든 장면을 주지훈은 정말 멋지게 해낸다.

 

후에,

 

연기 본좌인 정동환에게 전혀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서기까지한 주지훈의 연기는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최근에 본 부활에서

고주원이라는 배우를 보며,

 

얼굴 반반하고 비주얼 그럴듯한 젊은 배우가

자기 역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감한 나로선

 

그토록 험란한(?) 장면에서

기대 이상으로

자기 역을 해내는 주지훈이 경이로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