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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15부- 정태성에게 선물을.. 본문
승하가 된 이후로 정태성이 가장 충만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물론, 그날 농장에서의 시간들 모두가
승하에겐 선물같았겠지만,
동시에 비수를 품은 시간이었을 것 같아
난 마음이 편치가 않다.
하지만, 그날
갑작스런 비로 인해 잠시 처마 밑으로 피했을 때,
엄마까지 묻고 이제 홀홀단신이 되어 기약없는 길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나보고 싶었던 그 소녀를 만났던 기억을
내내 품고 있었을 승하가,
농장에서의 그 순간에 그떄 그 순간을 떠올린 건
필연적이다.
바로 그 소녀가 자신의 곁에 서서
그때처럼 같이 비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그를 무척 행복하게 해주었을 것만 같다.
아니, 내가 정태성이라면 그럴 것 같다.
그 순간만은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해인의 밝은 미소에 휩쓸려
그도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죄인이 아니었다.
비참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그는 그 소녀처럼 무결한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꿈처럼 그 소녀가
바로 자기 옆에 서서 웃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인의 행복한 듯한 웃음이
승하를 끌어들인다.
그도 미소를 짓는다.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쓸쓸한 미소지만
그래도 그 기억과, 그때의 소녀가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그때 그 소녀가 그랬듯이
손을 내밀어본다.
그때 그 소년으로 돌아간 듯이..
그 소년은 그 소녀처럼 떳떳했으니 말이다.
그 빗줄기에게도 당당했으니 말이다.
세상에 한점 부끄러움 없던 시절이니 말이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자기 자신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와질 수 있다면
승하에겐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가 해인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그때가 처음이다.
물론, 이전에도 그들은 많이 만났지만,
그건 오승하로서 만난 것이다.
나란히 서서 소년 소녀처럼 비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그는
정태성이다.
16세의 무결한 소년 정태성..
그래서
그는 그 순간에 비록 허위일지라도
잠깐은 행복했을 것이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그에게도 그런 행복이 한번쯤은 주어져야하지 않겠는가?
그날 이후로 단 한순간도 지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태성에게,
한번쯤은 그런 휴식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난 그때 그가 모든 걸 잊고 정말 행복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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