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궁 18부- 둘이 하는 사랑, 움직이는 사랑 본문
'사랑은 둘이 하는게 아닐까?'
간만에
효린이 멋진 멘트를 날려준다.
그걸 이제 알았다니 그게 좀 유감스럽지만,
어떻든 호된 고통을 당한 후에
겨우 저런 결론이라도 건졌다면
그녀에겐 그간의 고통이 헛된 것만은 아니겠다.
적어도 고통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면
어차피 괴로운 인생살이,
청소년이라고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닌 바에야
저런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면 다행 아닌가~!
물론,
이후의 그녀의 행각을 보면,
저 멘트가 무색하지만 말이다
신채경이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매력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내겐
효린이가 성숙하고 괜찮아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만사를 다 초탈한 듯한,
하지만 여전히 사람 짜증나게 하는
그 느릿하고 단조로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어떻든 저런 멋진(?) 멘트라도 날려주는 것이다.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율군의 저 진부한 답...
하기야 효린의 말도 진부하긴 마찬가지지만,
어떻든,
신군과 채경이 온갖 닭살 행각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이제 두 사람 사이가 굳건하다는 걸
과시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걸 효린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사랑은
둘이 하는 거 아닐까?
신이가 채경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지금까지 신이의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저렇게까지 변한 걸 보면
정말 채경이가 좋은가봐,
채경이는 진작부터 신이를 좋아하고 있었고,
이제 신이도 채경이에게 완전히 돌아선 것 같으니
너도 이제 고만하지?
라고 충고 비스무리하게
넌즈시 한 마디 해주는데,
율군,
고집스런 표정으로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라고 못박는다.
과연 사랑은 움직인다.
효린에게서 채경으로 움직였으니까.
그러니
채경의 마음도 신군에게서 율군에게로 오지 말란 법 없다.
그런데 말이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율군은 그동안 너무 채경에게
편하게 신세한탄이나 늘어놓는 존재,
그럴 때마다
자기를 위로해주는 좋은 친구,
아니 위로를 빙자해서
가슴에 대못을 박아대며
신군의 마음을 의심케하고
효린이라는 존재를 자꾸만 부각시키는 걸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그래서 피하고 싶은데
막상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율군에게 가서 하소연할 수 밖에 없는,
남자로선 전혀 매력이 없고,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싶어도
궁밖의 친구들에겐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그래도 맘껏 할 수 있는 상대 정도로
이미 스스로를 전락시켰다.
남녀 사이로 발전하기엔 이미 늦은 것이다.
아니, 애초에
채경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채경은
만일 너를 먼저 만났다면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율군은 그 말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채경이 신군을 좋아하는 건
그저 그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
채경은 역시
남편이라는 자리에 있는 율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가보다.
하긴
그렇게라도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사랑이라는 괴물이
가슴 속에 들어앉아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니,
그 사랑을
율군식으로 하자면
어떻게든 진정시켜야하고
그 사랑이 주는 갈증과 통증을 무마시키기 위해선
그걸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그에겐
자신의 감정이 더 급하다.
채경의 마음까지 배려해줄 여력이 없다.
그녀가 누굴 사랑하던,
누굴 원하던
그건 그에겐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서
채경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역시
전통적으로 황태손으로 자랐다면
그야말로 독선적이고 거만하며
서민들이 자기 몸에 닿을세라 움추렸을
전형적으로 거만하고 그릇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황족 중의 황족스런 발상이다.
물론,
율은 그걸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하기야,
율군 같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갈구하는
드라마의 다른쪽에 있는 캐릭터들의
특징이 대개는 저런 것이다.
즉,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당신이 누굴 사랑하는 가는 상관 없어
이런 마인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난 저런 사고방식 때문에 가끔 돌아버리겠다.
드라마를 쓰는 건 대개가 여류 작가들이다.
그런데,
여류 작가들은
자기를 무턱 스토커하며 사랑한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들에게
은근히 로망을 품고 있나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술과 장미의 나날을 보내며
한편으론 자기를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는 남자가 하나쯤 있는 게
정말 좋은가보다.
작가들이 진정 사랑하는 건
남주가 아니라 바로 저런 마인드의 서브 남주이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여자던 남자던 은근히 자기를 좋다고 죽자고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즐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들에겐 하나같이
날 돌아버리게 만드는 마인드를 부여하는 게 문제다.
난 최근에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여주가 어떤 남자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녀를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는
단언한다
널 빼앗아올거야!!!
우쒸!!!
그 작가에게 달려들어 따지고 싶다.
당신도 여자자나!
그런데, 같은 여자로서 저런 대사를 쓸 수 있어?
여자는 사람 아니야?
아니 여자가 물건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여자 면전에서
널 빼앗을거야,
빼앗아서 내껄로 만들거야
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
그걸 가만히 듣고만 있는 여자들도
후려갈기고 싶다.
율군이 일찌기
채경 앞에서 혼인을 무효화한 후에
자기가 채경과 혼인하겠노라는 말을 할 때도
난 꼭지가 도는 줄 알았다.
채경이 그런 말을 입을 벌린 채 별로 화도 안내고 듣고 있는 것도
어이상실이었다.
난 저런 대사나, 저런 상황이 정말 싫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써먹는 방법이지만,
그러나
저런 방법을 써먹지 않는 드라마도 있다.
저런 발싸게같은 대사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라이벌과 당당하게 겨루는 드라마도 있고
그런 캐릭터도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좋은 작가인 것이다.
남의 흉내를 내지 말고,
자기 것을 개발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하여튼,
둘이 하는 사랑과, 움직이는 사랑..
그때까지 심리적으로 같은 열차에 몸을 싣고 있던
효린과 율군이었지만,
효린은 이제 열차에서 뛰어내릴 자세이다.
그녀는 그 싸움에서 이탈할 낌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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