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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14부 -오수의 전화와, 승희 본문

주지훈/마왕

마왕 14부 -오수의 전화와, 승희

모놀로그 2011. 2. 4. 14:04

해인의 집에서 돌아온 승하는

상처를 입으면 재빨리 자신만의 소굴로 퇴각하여

스스로 치유하는 동물처럼 다시금 오르골 상자를 열어본다.

 

그 음악은 그들 가족의 장송곡,

그 안에 묻힌 사진들은

그의 미이라..

 

그 안에서 시간이 멈추고,

모든 것은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샘솟는 슬픔과 원한을 승하에게 주는가보다.

 

그리고 승하가 자신을 치유하는 약은

슬픔과 원한인가보다.

 

너무나 아플 땐 그 아픔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그나마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익숙한 곳이기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미 자신에겐 잊혀진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

어쩌면 살아 생전엔 절대로 자기 것이 될 수 없을

가정적 행복이라는 것은

그에겐 오히려 더 큰 상처일 수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익숙한 옛상처가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되버린 것이다.

 

그래서 승하는 불꺼진 집안, 오르골을 열고

무덤 속에 들어가 그들과 두루두루 만나고 있다.

 

하필 그때,

오수가 전화를 할 건 뭐람?

 

오수를 만난 승하는, 전과는 다르게 독이 올라 있다.

오수에게 내보이는 증오심이나 깐죽거림도

이젠 상당히 노골적이다.

 

오수와 대화할 땐 늘 그렇지만,

 

가족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언제나 서로 다른 언어로 엉뚱한 얘기를 주고받는데,

 

그날도 그랬다.

 

'가족이기에 오히려 모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강형사님 가족은 몰라도, 저희 가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긴, 승하 아닌, 태성의 가족은 바로 그런 상태에서

정지되어 버렸으니

서로에 대해서 그야말로 남김없이 샅샅히 아는 사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조금 섬찟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오수가 말하는 가족인 승희와,

승하가 말하는 가족은 전혀 다르지만,

 

어떻든 그 대화에서 승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성준표가 문제의 녹음을 승희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성준표는 정말 대단하다고 나도 감탄한다.

그는 만일에 대비하여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승하가 그 승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승하의 친누이에게 알려주는 것만큼 대단한 복수도 없다.

적어도 성준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승하도 일단은 그것에 공감할 것이다.

 

난 마왕에 나오는 인물 중에,

승하의 강적은 성준표라고 생각하는 바,

 

물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서 결국은 희생되지만,

그러나,

 

승하를 자신의 죽음의 현장까지 불러낸 인물로써

역시 그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승희에게 보내졌다는 우편물의 잔상이

성준표가 가지고 있었던 카드에 남아 있었음은

물론, 승하로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애초에 성준표가 그런 짓을 한 것도 몰랐을테니.

 

따라서 성준표는 그야말로 승하의 유일한 적수였던 셈이다.

 

승희에게 보내진 USB칩에 녹음된 승하의 죽음의 비밀은

이미 승희에게 알려진 이후이다.

 

아마도 승하 역시 이미 승희가 그 녹음을 들었을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듬과 동시에.

승하로선 상처주고 싶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승희라는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어낸 것이니,

 

그의 설계도에 따라 힙겹게 지어지고 있는 건물은,

그러나 너무 많은 돌발 사고에 의해서

얘기치 않은 지출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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