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 14부- 빈틈 본문
예상했던대로,
해인의 집으로 저녁 초대를 받아,
승하로서는 정말 오랜 만에 그런 가정적인 따스함과, 화목함,
또한 보편적이고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식탁에 앉은 건
상당한 후유증을 낳는다.
애초에 승하가 해인이나 그의 모친같은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그는 이미 초반에 비해 많이 약해져 있는 참이었다.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인간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 파장이
영혼에 미치지 않을리가 없다.
사람만 죽어나가는가?
그때마다 자신이 이용한 피해자도 늘어난다.
소라와도 같은 그 피해자로 인한 또다른
불쌍한 피해자까지 늘어난다.
비록 그가 소라를 돌봐주고 있다지만,
그러나 소라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름아닌 엄마가 아니겠는가?
그는 지금 소라같은 어린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은 셈이다.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지치게 하고 있던 와중에,
그런 평범한 가정의 한복판에 뛰어들었으니,
잡채 아니라도 그는 체했을 것이다.
그는 벌써 12년째 체한 상태니까.
그러나,
그 저녁 식사로 인해 잠시 무장해제된 승하는
역시 빈틈을 내보이고 만다.
아주 사소한 대화에서,
해인의 기억을 되살리고 마는 것이다.
승하가 자꾸만 해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의 사업(?)에 관해서는
가급적 해인을 피해야 한다.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고, 개인적인 관계는
갖지 말아야한다.
왜냐면, 해인은 초능력이 있기에
아주 예민하고,
무엇보다 정태성이라는 소년과 직접 대면하여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유일한 인간인 것이다.
물론, 상대가 정태성이라는 걸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잠재되어 있고,
그래서 해인은 승하를 보자마자
어디서 만난 적 없냐고 물었을 정도이다.
하물며, 해인과 승하는 점점 더 자주 만난다.
자주 만날 뿐 아니라
서로 감성적으로 통하고 있다.
즉, 남녀로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호감은 점점 깊어지고, 이제 설레임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것은 곧, 승하로 하여금 해인 앞에선
많은 빈틈을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마침내 빈틈을 보이고 말았으니,
해인의 깊숙한 기억의 동굴 속에서
늘 메아리치고 있었을 한 마디를 끄집어내고 만다.
그 사실을 기억해낸 것 자체는 아직은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그녀는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오승하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아주 작은 단서를 마침내 잡았다.
물론 그녀는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음반 가게 앞에서 만났던 그 소년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느니 만큼,
또한 그녀가 자주 잔상으로 보는,
음반 가게 앞의 두 소년 중 한명이 정태훈인 것도 아는 만큼,
두 소년이 다정하게 서 있고,
그 중 한명이 정태훈이라면,
당연히 남은 한 사람은 정태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마침내 잔상에서 확인되는 순간,
재빨리 줄긋기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진상이 한꺼번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날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한 가닥 진상에 이르는 씨앗을
해인의 마음 속에 뿌려놓은 채
일단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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