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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3부-황태자 부부의 첫날밤

모놀로그 2011. 2. 1. 23:44

 

 

 

혼인을 허락한 이후부터, 마침내 첫날밤을 위해 꾸며진

방에 신랑, 신부로서 나란히 앉게 되기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신군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모조리 채경에게 보여주었다.

 

아마 그건 상대가 채경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신군을 무장해제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채경에겐 좀 가혹하지만, 신군은 전혀 그녀가 안중에 없었기에

조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채경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자기에게 너무나 싸가지 없고, 매정했던 그는,

그러나 혼례를 거행하거나, 가두 행렬 도중엔

멀리서 바라보았던 황태자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채경이로선 존경스러웠을 그의 의젓함은 갑자기

이면에선 황실의 복잡한 의식에 익숙치 않은

채경과, 그녀의 부모를 비웃는 것으로

스스로 그 혼례의 엄숙함을 뭉개버리면서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채경에게, 멀리서 동경을 품고 바라보았던 황태자이기도 하고,

자기에게 바싹 다가와서 전혀 다른 프로필로 환멸을 안겨주기도 한

인물이기도 하다.

 

 

 

 

단순한 채경에게, 그의 갖가지 표리부동한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의 채경은 내겐 어쩐지 생소하다.

 

 

 

 

난 채경이라는 캐릭터가 참 들쑥날쑥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초반의 채경은,

무심하고, 씩씩하고, 그러면서 밝고 순수해보인다.

 

궁에 들어와서 황태자비 교육을 받는 동안에 벌이는 갖가지 에피소드에서의

채경이도 사랑스럽다.

 

아마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으리라.

 

뭔가에 얽매이는 것에 익숙치 않은 21세기의 소녀가

갑자기 중세기적인 궁에 들어와,

갖가지 엄격한 법도와 조선 시대식의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그것에 어거지로 적응하려고 무리를 하기보단,

신채경식으로 명랑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조선 시대와 뭐가 다른 건지 알 길이 없는

21세기의 황실에 하품이 나올 지경인 우리에겐 청량음료같다.

 

후에 신군이 말하듯,

 

궁이 그녀에게 적응해나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녀가 궁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궁이 그녀에게 적응하게 하는 것,

신채경식의 페이스를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했다.

그랬다면 신채경 캐릭터도 신군처럼 멋지게 완성되었으리라.

 

 

난 채경이가 신군에게 흥미를 느끼는 장면이 참 인상 깊다.

그건, 채경이가 겉보기보단 훨씬 중심이 잘 잡힌 건강하고

생각 깊은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이내 가려지기 때문에,

난 그녀가 신군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곤 했다.

 

그녀는 신군처럼 이중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단순한 캐릭터여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매우 들쑥날쑥하기에,

나로선 그녀가 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되버린 것이다.

 

신군에게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을 품을 정도의

채경이,

 

그러나, 너무나 미성숙하고 어린애같은 언동을 일삼으면

난 정말 헷갈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관성이 가장 없는 캐릭터가 오히려 채경이고,

그래서 뒤로 갈수록 빛을 잃어간 캐릭터가

채경이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초반까지만 해도 채경은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낯선 환경에서 분명 두렵고 외로울 것이지만,

그녀는 그 무섭고 매정한 신군에게 조금도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의 부탁을 복잡하게 비트는 신군 특유의

뒤틀린 반응을 단숨에 물어뜯어버린다.

 

 

 

 

 

그래서 다시금 나타난 황태자의 그럴 듯한 겉모습을

얻어맞고 씩씩거리고 울부짖는

미성숙한 소년으로 전락시키기까지 한다.

 

신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채경과의 결혼은 그가 기대한

 

'뭔가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절반쯤을 충족시켜준다.

 

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라고 자기 자신을 발로 걷어차려다가 나가떨어지는 채경에게

비웃듯 말하였지만,

그말은 사실이다.

 

채경은 그가 은근히 기대했던대로,

그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잔뜩 긴장해서 벌벌 떠는 그녀의 부모들도 재미 있고,

혼례식 도중에 감히 자기에게 항의의 시선을 던지는

채경이도 재미 있다.

 

엄숙하기 그지 없는 문무백관과의 대면 자리에서

절을 하다가, 채경의 말마따나

 

십킬로가 넘는 대수머리인지 뭔지로

총리의 머리를 들이받는 것도 재미 있다.

 

자기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것도 재미 있다.

또한

채경을 가능한 무시하고 비웃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기에게 정면으로 대들고,

자기 손을 물어뜯는 것도 재미 있다.

 

그렇다.

 

채경은 신군이 원하는 것을 얼마쯤을 충족시켜주었다.

지루한 혼례식 도중, 그녀는 그를 가끔은 즐겁게 해주었던 것이다.

 

 

궁에서 가장 멋지고 높은 완성도와, 궁 특유의 색채감과 미술의

극치를 이루었던 3부의 황태자 혼례의 끝은,

어이없게도, 황태자비가 황태자 손을 물어뜯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신군과 채경의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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