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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6부-유기농형과 승하 본문

주지훈/마왕

마왕 6부-유기농형과 승하

모놀로그 2011. 1. 26. 16:35

이른바 '유기농형' 이라고 불리워지는,

오승하의 형이라는 인물이

2부에 이어 잠시 등장한다.

 

유기농형은, 마왕에선 숨어있는 복병이요, 지뢰이다.

왜냐면 그가 있어서

오승하라는 인물에게 실체감을 주지만, 동시에

오승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에,

장차는 그가 오승하 아닌, 정태성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기농형 당사자 입장에선

정태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고,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만이 오승하가 실은 정태성이라는 열쇠를 쥐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유기농형은

2부에 잠시 등장하는데,

묘한 분위기에 현실감이라곤 없는 오승하가

갑자기 매우 정상적이고(?) 거의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태도로

그를 대하는 데, 아마도 오승하의 그런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는 매우 정상적인 인물로 잠시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기농형이 가져온 사진을 들여다보는 승하의 표정에서

우린 또다시 심상치 않은 뭔가를 느끼게 된다.

 

즉, 유기농형이 승하의 집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사진을 전달해주려는 것이

주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며,

 

물론 승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부탁한 척 하지만,

그가 정말 원한 것은

유기농형이 잔뜩 싸들고 온 유기농 야채나,

유기농형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 사진임을 알 수가 있다.

 

이어서, 그 사진을 불태우며

눈가에 스미는 눈물과 상반되는 입가의 냉소적이고 잔인한 미소로 인해

더더욱 오승하라는 인물에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사진 속엔

두 사람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은 유기농형의 말에 의하면

바로 유기농형 자신인 듯 하다.

다시 말해서,

그 사진은 유기농형과 오승하의 사진인 것이다.

 

그 사진은 승하의 손에 의해서 불살라진다.

승하가 말살하고자하는 인물은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하면,

바로 그 소년이다.

 

우린 오승하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묘한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비추며

자신의 소년 시절을 찍은 유일한 사진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의식을 지켜봐야한다.

 

이쯤에서

지극히 건전해보이는 생활인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유기농형과,

그를 대하는 일상적이고 멀쩡해보이는(?) 오승하가 잠시 연출한

유쾌하고 편안한 장면마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즉, 유기농형의 역할이 바로 그 사진을 승하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숨겨져 있는 장면이다.

 

또한 그 사진이 장차 어떤 식으로든 지뢰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유기농형이 다시 6부에 등장하는데,

차 사무장에게

 

'제가 오승하의 형입니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것만으로도 차사무장이 오승하변호사에 대해서

잠재적으로 품고 있을지도 모를 일말의 의구심이 있었다 해도

단번에 날아갔을 것이다.

 

척 보기만 해도, 호인이고 현실적인 생활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승하의 형이라고 나서니,

 

12년 전의 사건의 결과인 듯한 연쇄 살인사건에 오승하가 연루되고,

그 사건으로 속출하는 피해자들을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한 사무장의 본능적인 의심을 해소해줄 수밖에 없다.

 

유기농형은 우리에게

승하의 수상쩍은 행적을 알려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것은 주로 승하의 과거에 얽힌 사연과,

그것을 증명하는 사진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금 사라진 사진에 대한 언급이

유기농형의 입으로 흘러나온다.

 

그가 굳이 변호사 사무실에 등장한 이유는,

 

첫째로, 차무장에게 오승하에게 실체감을 심어주기 위함이고,

둘째가 오승하의 과거와 연관된 사진들이

사라졌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그때 승하의 표정과, 눈빛으로 봐서

사라지는 승하의 과거의 행적들은

승하 내지는, 승하의 앞잡이의 소행임을 알 수가 있고,

그러나

대체 왜 그가 그토록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말살하여

한 조각이라도 남은 과거의 잔해를 날려보내려고 하는지는

아직은 미지수로 남는다.

 

물론,

그것도 퍼즐의 한 조각이다.

 

2부에서 불타는 사진과 연결되는

또다른 사진들에 대한 유기농형의 언급은,

 

그러나

역시 그 어떤 사진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바로

유기농형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잠재된 그 퍼즐은 후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오승하의 가면을 벗기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유기농형에 대한 오승하의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엿볼 수도 있지만,

차사무장의 입을 통해 다시금 승하의 어둠이 우리에게 전해지니

 

'두 형제가 조금도 닮지 않으셨습니다'

 

라는 한 마디이다.

 

사람들은 가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믿는 순간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그 의문에 대한 정답을 자기 입으로 내뱉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