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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4부- 현장검증

모놀로그 2011. 1. 26. 13:17

 

4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 중 하나는

바로

'현장검증'이 아닐까 싶다.

 

마왕의 모든 장면이나, 대화가 그러하듯

 

역시 중의적 의미의 '현장검증'이다.

 

오승하는 현장검증에 참여한다.

변호사가 현장검증까지 참여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닌가보다.

 

입구에서 걸리고,

방에서도 걸리고,

 

오수도 이죽거리는 걸 보면...

 

오승하는

권변 사건의 피고인 '조동섭'의 변호사 자격으로

현장검증에 나타났다.

 

이건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고,

 

실은

정태성으로서, 형 정태훈 사건의 현장검증에 참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권변 사건이 오승하가 설계도의 첫 사건인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관계자 중에

변호사가 첫 테잎을 끊었고,

그 사건만이 유일하게 정태훈 사건과 유사하다.

 

즉,

그렇게 되도록 오승하는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권변은 권력과 결탁한 전형적인 악덕 변호사이다.

아니,

정치 권력에 굴복하고, 거기에 빌붙어

잘먹고 잘 살며

초법적인 지대에 살고 있는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약하고,

서민에게 가혹한 법의 또다른 얼굴의,

아니 법의 가장 어두운 면에 기생하며

거기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런 인간들이 흔히 그러듯

사회적으론 성공한 사람이다.

아마도

법조계의 거물일 것이고,

최고로 비싼 수임료를 지불해야하는

몸값 비싼 변호사일 것이며

 

서민들을 위해선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는 강동현 아들 사건에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그 뒷수습까지 돈으로 마무리하는 등

강의원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다시 말해서,

있는 자의 범죄는 가려주고,

 

대신 조동섭같은 사회적 소외층이나 밑바닥 인생에겐

가혹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비록 상습적이라 하나,

절도범에 불과한 그에게

10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한다.

 

설사 그런 구형을 했다하나,

그런 판결을 내린 법이 정말 무섭지 않은가?

 

그렇듯,

법의 또다른 횡포를 상징하는 권변이

오승하 설계도에서 첫번째 표적이 되는데,

 

그것을 위해 오승하는 미리부터 사전 작업을 치밀하게 해두었다.

 

아마도

그의 밑에 들어가서 일했던 6개월동안,

권변의 일상적 습관이나, 사적인 친분 관계,

그의 비리나 그가 저지른 갖가지 악행 중에서,

 

가장 비통한 피해자인 조동섭을 선택했을 것이고,

 

권변에겐

타로 카드와 더불어 칼을 보내는데,

 

바로 이 칼이 중요하다.

 

첫 사건에 칼이 소품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물론,

권변이 순순히 조동섭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칼은 전혀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럴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동시에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기회와 선택의 법칙은 적용되며,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인성에 맞게 선택한다.

 

즉,

권변도 조동섭에게

사과 한 마디만 하면 그만일 것을

결국 그걸 아끼고,

칼을 휘두르다가 실랑이 끝에 그 칼에 스스로 찔리는 걸로

막을 내린다.

 

그런데,

 

이 첫 사건은 정말 재미 있다.

 

조동섭이 권변을 찌른 것은 실수였다.

즉,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흥분해서 찌르라고 달려들었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권변이 스스로 찔린 것이다.

 

그게 그 사건의 진상인데,

또한 그게 정태훈 사건의 진상이기도 하다.

 

조동섭이 전혀 권변을 죽이거나 찌를 생각이 없었듯이.

 오수도 전혀 태훈을 찌르거나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 현장검증에서,

그리하여

오승하는 사건의 진상을 고스란히 목격한다.

 

그런데,

 

그는 그 사건의 진상이 있는 그대로 자기 앞에서 벌어짐에도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현장검증을 보지 않고,

오수만 보고 있다.

 

오수의 기억 속에 깊숙히 가라앉은 그 사건이

현장검증으로 인해 떠오르는 걸

차갑게 지켜보고,

그가 당황하고 떨고 긴장하는 것만 볼 뿐이다.

 

그리고,

 

후에 오수와 나누는 대화에서

그는 말한다.

 

현장검증에 참석한 이유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고,

혹시라도 거짓이 있다면

현장검증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데

자기는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승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지 못했다.

 

첫 사건에서

이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 설계도가 첫단계에서부터 뒤틀리는 것이다.

 

그건,

 

결국

승하 복수의 치밀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진실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고,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보기 힘들고,

그 바람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토록 긴 시간을 연구하고 준비해서 시작한 복수극의 첫 단계에서

벌써 심각한 오류가 감지되는

 

오승하의 설계도...

 

난 그 현장검증 장면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인생이란 것이 무서워지기도 한다.

 

왜냐면

평소에

난 그런 것들을 인간 관계에서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난 내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은 모른다.

 

상대는 내 마음을 알까?

아니, 그도 날 모른다.

 

그런데,

나와 상대는 서로 거짓말을 한다.

 

내 마음이 너무나 단순하듯,

상대도 그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난 내 마음의 단순함에 견주어

상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예단한다.

상대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오류들..

 

그래,

그렇게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경계음이라도 울려주면 좋으려만..

 

현장검증씬을 볼 때마다

우리가 뻔히 보면서도 놓치는 많은 진실들과.

 

그로 인해 소비하는 많은 시간들이

날 우울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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