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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 3부-세상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놀로그 2011. 1. 26. 10:03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들의 어리석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그들은 허망한 몸짓으로 판토마임을 하는 서글프고 피곤한 피에로처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마다
피에로의 동작은 점점 커지고 격렬해진다.
그 앞엔 뭐가 있을까.
혹시 낭떠러지?

그러나
작가는 그 어리석음에 동정도 그렇다고 혐오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실체라는 듯,
우리에게 그들의 보여주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맒하는 듯 하다.

우리 역시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약하고 어리석으며 그럼에도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엔 인색하니까.


3부는

승하가 조동섭을 자수시킴과 동시에
그의 변론을 맡았음을 선언하여
강력반 수사팀, 특히 오수를 벙찌게 만드는 것이 이어서

취조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더불어 치열한
대결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가뜩이나 편치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제 피의자를 가운데두고
심문하는 자와 변호하는 자로 뚜렷이 대립각이
형성되었으니
그동안 은밀하게 오가던 신경전은 더욱 촉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난 이 첫 취조 장면에서,
말하자면 승하의 첫 작품을 둘러싼
오수와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음과 더불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동섭과 권변 사건은
승하가  일으키는 복수극의 제 일막이다.

그런데
우연인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사건의 경위가
오수와 태훈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하다못해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까지
비슷하다.
(하긴 그런 장면에선 대개 그런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


다시 말해서
승하가 일으킨 첫 사건과, 거기서 조동섭이라는
꼭두각시가 한 역할은
태훈과 오수 사건의 또다른 버전인 셈이다.


물론
오수도, 승하도
거기까진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취조실에서
조동섭의 진술을 듣고 있을 때,
이미 12년 전 사건의 진실을
듣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게 승하의 첫번째 작품이다.

난 의구심을 느낀다.
왜 작가는 하필 첫 사건에서부터
승하 설계도의 오류를 보여주는 것일까?

물론 그또한 작가의 치밀한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난 승하가 던진
이 대사에 흥미를 느낀다.


['세상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3부에선 유난스레
등장 인물이 상대에게 하는 대사가
실은 자기 스스로에게 제시하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야 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혹은 길게 볼 경우
부메랑처럼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말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죽 이어서 줄을 그으면

'세상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승하의 말에 가 닿는다.

세상은 물론 완전하지 않다.
세상이 그럴 정도이니
그 안에서 유한 생명을 이어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인간은
더더욱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우린 그것을 잊고 산다.
그래서 우린 어리석은데,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도 미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첫째로

오수가 자신이 12년 전에 벌인 사건을 잊고
(혹은 그런 일을 저질렀기에 더더욱 그런 말을 하는지도?)
승하에게 퍼붓는 일장 연설이 그러하다.
그건 오수에게 누군가 해줘야 할 말들이다.

그가 그런 말을 다름아닌
승하를 향해 늘어놓는다는 것이 그를 우스꽝스러운
삐에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난 그가 그 말을 할 때
문득
'팔리아치'의 '의상을 입어라'가 생각날 정도였다.


둘째로

강동현이 오승하를 일컬어 한 마디로 내리는 정의가 또한
그 범주 안에 있다.

'머리만 똑똑할 뿐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작자들'
이 말은 그야말로 강동현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인간은 전부 거기서 거기고,
그야말로 개미 체바퀴돌 듯
좀 모자라는 듯이 보이는 영철이나,

바로 눈앞에 있는 사실과 진실을 보지 못한 채,
또한 자기 자신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천방지축 날뛰는 오수나,


전지적 시점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믿는 승하나
언제까지고 자기 정당화가 계속되리라고 믿는 강의원이나

그외 관계자들 모두가

약하고 힘없고 불행한 존재들이다.
약하기에 그들은 죄를 짓는다.
석진은 불륜을 저지르고,
대식은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채업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순기는 친구의 약점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다.


세째로


오수에게 그러한 야유를 담은 문제제기를 한
승하의 시나리오조차 시작부터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승하도
그 불완전한 세상에 속해 있는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일뿐이라
그가 12 년에 걸쳐서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의 설계도 또한
완전하지 않으며,
아니 완전할 수 없으며,
그가 결국 전능한 마왕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그 시나리오는 역시 불완전한 토대 위해서
세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 또한
승하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사건에 관한 해석은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수만큼
존재합니다'

이 말은 승하가 성준표에게 던지는 통렬한 비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승하 스스로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승하가 말하는 의미와는 또다른 진실인 것이다.

그가 그 사건의 희생자, 혹은 당사자인한
그가 사건에 내리는 해석 또한
그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사건을 조종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그가 조종하는대로 움직인다하나,
시작부터 오류를 지닌 설계도가 형상화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렇듯 3부는

강력반의 수사가 조동섭이라는 인물의 자수며,
또다른 수상쩍은 인물도 찾아내는 등,
피상적인 성과를 올리긴 하지만
모두 승하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것에 불과한
헛된 삽질을 계속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보다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또한 곧 이어질 제2의 사건에 대한 복선들이 깔리고 잇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강요하지만
정작 진실을 깨우쳐야할 사람들은 그들이며,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한계로 인해
그 진실에서 자기만 배제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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