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 11부 -승하와 해인의 식사 본문
승하는 밥도 안먹고, 술도 안 마시고, 화장실도 안갈 것만 같다.
그가 혼자서 밥을 해먹고, 누구와 어울려 술집에 가는 등
뭔가 인간 냄새가 나는 일을 한다는 건 상상이 안간다.
하지만,
극을 보다보면
승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가방을 내던진 후에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내 마시곤 한다.
적어도 그가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두어번은 나온다.
그게 전부다.
그래서 유기농형이 잔뜩 가지고 온 유기농 야채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너무 궁금하다.
승하는 건강해야한다.
잘먹고 잘 자고 운동도 많이 해야한다.
싸우려면 체력이 필요하니까.
과연 그는 수영도 하고,
명상도 하고,
나름 노력을 한다.
그러나...
먹는 건??
맥주캔을 따는 건 몇번 봤지만
집에서 혼자 뭘 해먹거나
하다못해 밖에서라도 식사하는 건
안나온다.
오수를 술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그는 안주 한점 집어먹지 않았다.
하긴 오수는 깡소주를 마시다시피 했으니
안주도 부실했겠다.
그런 승하가
이상하게 해인과의 식사는 무슨 치뤄야할 과제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처음 그가 해인에게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
6부쯤 된다.
마왕은 대개 한 가지 화두가 주어지면
그게 해결나거나, 이뤄지는 건
그로부터 몇 회는 기다려야하는데
드디어 11부에 우린 그들이 식사하는 걸
볼 수가 있다.
그 전에
전에도 말했지만 승하는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기거나,
힘을 비축해야 하거나
큰 싸움을 앞두거나,
혹은 그런 싸움을 치운 경우엔
해인을 찾는다.
이젠 그게 습관이 되버린 듯 하다.
의문의 노랑봉투에 든 타로카드를 받은 후에
승하는 해인을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인에게 다시 식사 얘기를 꺼낸다.
해인은 병원비를 지불했으니 점심은 자기가 사겠노라고 한다.
전에 마왕갤에선 그게 하나의 농담 재료가 되었었다.
일인용 병실 값이 얼만데, 기껏 양푼비빔밥이냔 말이지.ㅋㅋ
하지만, 해인이 일인용 병실에 신세를 져야했던 이유를
제공한 장본인이 승하이니,
실은 조금도 미안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건강 보조제라도 선물해서
잔상을 읽어내느라 고생하는 해인의 영양보충을 시켜줘야할 판이다.
그러니
양푼 비빔밥이라도 감사히 먹어야할 승하인 것이다.
솔직히, 난 외식한다면
그런 건 안사먹는다.
집에서 실컷 먹을 수 있는 걸 뭘 돈내고 먹는단 말인가~!
하여튼,
너무나 토속적이고 가정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식탁앞에 승하를 앉힌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빈틈이라곤 없고, 인간이라는 느낌조차 없는
승하가
남루한 식당의, 빛깔도 화려한 나물과 맛은 좋지만 냄새는 지독한,
청국장 앞에 앉아 있으니 묘한 조합이긴 했다.
해인은 평소 승하를 좀 어려워하는 편이다.
나라도 승하 앞에 있으면 어쩐지 끌리면서도
같이 있는 것이 편하진 않을 것 같다.
도무지가 틈새를 주지 않으면서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마음을 설레게는 하겠지만
같이 있으면 몸둘 바를 모를 것처럼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 승하를 대뜸
그런 서민적인 식탁 앞에 앉히는 걸 보면
역시 해인은 승하가 바라는 걸 모조리 지니고 있는 여자이긴 하다.
그의 옷차림은 근사한 레스토랑에나 어울리겠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마주 앉으면
그야말로 음식이 목에 걸릴 것 같다.
난데없이 한국적이고, 가정적인 식탁 앞에 앉혀진 승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히려 어색해하고, 난감해하며 몸둘 바를 몰라하는 건
해인이 아니라 승하가 되버린 것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승하는 그토록 해인과의 식사를 기어이 풀어야할 과제처럼
여기는 걸까?
흔히 남녀 간의 데이트 코스 중 두번째 쯤이 식사가 되겠다.
처음엔 차를 같이 마신 후에
자리를 옮겨서 식사를 한다.
좀 더 친해지면
차를 마시고, 영화를 한편 보고, 드라이브를 한 후에
멋진 곳으로 가서 식사를 한다.
뭐 순서야 어떻든,
남녀 간의 식사는 직장 동료가 아닌 담에야
꽤 의미있다.
여자와 데이트라는 걸 해본 적이 없을 승하는,
겉으로야 스마트한 일류 신사이지만,
내면적으론 전혀 그렇지 못하니
여자와 식사라는 걸 갑자기 해보고 싶어진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물론 상대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해인이다.
그리고 해인은 이제 그에겐 여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녀의 빰도 만져보고 싶고,
그녀가 눈부신 햇살 속에서 웃고 있을 때
홀린 듯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한다.
각박한 삶을 사는 승하에게 빛의 향기를 뿜어내는 해인과
그러나 식사를 같이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승하는 진정 몰랐단 말인가?
아직도 난 승하가 해인과 식사를 하고 싶어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인데,
그의 설계도가 다시 한번 휘청해서 수정해야할 상황이 올 것이 뻔한데,
왜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릎쓰는 걸까?
아닌게 아니라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흔들린다.
식사를 하고, 휘날리는 벚꽃 길을 걸으면서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기도 하고,
따스한 해인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그 손을 잡고 싶어 움찔거리기도 한다.
물론,
그는 잠시 자기에게 허용했던 그런 흔들림에서
가혹하게 자기 자신을 돌려세운다.
그리곤
해인에게
다신 해인씨와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오승하!
그대처럼 냉철한 사람이,
전지적인 시점에서 모든 인간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조리 머리 속에
입력되어 앞길에 포석을 척척 놓고 있으면서,
해인과 식사를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랐단 말인가?
해인에게도 승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기쁨을 선물해주고,
그건 승하에게 설레임을 품고 있는 해인에겐
그렇게 가벼운 사건도 아니건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다신 너랑 밥을 같이 먹지 않겠다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핵심은 바로 그 앞에 한 말에 있다.
해인은 그 말을 더 새겨들어야한다.
고마워요, 맛있게 밥을 먹는 게 어떤 것인지를 기억나게 해줘서..
다시 말해서
그가 자신과 더이상 식사를 못하겠다는 이유는
맛있는 밥을 먹으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해인은 여기서 의문을 품어야했다.
기껏 양푼이 밥을 사줘서가 아니라,
오히려 양푼이 비빔밥을 사주는 바람에,
그게 너무나 맛있어서,
그런 소박하고 인간 냄새가 물씬나는 식사를 하게 하는 바람에,
그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식사를 절대로 같이 안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런 소박한 기쁨은 자신에겐 당치도 않고,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을 자신에겐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해인은 다신 당신과 식사를 안하겠다는 그 말에만 놀랄 뿐이다.
마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이고,
또한 아름다운 명장면에 해당되는
해인과의 식사는
이렇듯
돌아서서 주먹을 불끈 쥐는 승하의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식사는 어쩔 수 없이
승하와 해인간의 간격을 그만큼 좁혀놨으니,
그건 승하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다신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건
당신과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매일같이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승하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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