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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앤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선우의 포옹과 세 남자의 진실

모놀로그 2010. 12. 26. 15:54

 

 

 

영화나 드라마나

일회성 소모용품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서 우린 인생에 관한 작은 진실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건, 우리 일상에서도 필요한 진실들이다.

별 것 아닌 듯 하면서도

실은 지극히 힘든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밑바닥 진실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날,

선우의 방에선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선우가 처음으로 진혁을 포옹한다.

 

난 이때 왜 선우가 진혁을 포옹했는지 이해가 잘 안갔었다.

늘 궁금한 장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갑자기 너무나 단순한 이유였음을 꺠닫는다.

 

진혁이, 너를 좋아했느니, 너와 자고 싶다느니 하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처음으로 진솔하게

 

날 도와줘

 

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선우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대단해보이는 진혁이,

바로 선우에게

친구로서 진지하게 부탁한 것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탈탈 털어보이며 절박하게

떠나지 말고 앤티크에 남아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선우는 그를 안았던 것이다.

 

진혁이 자신을 적당히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친구로

진지하게 상대해주기를,

진실이라는 걸 가지고 대해주기를

선우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해왔는지,

짐작이 가며,

 

역시 우리가 상대와 완전한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실 뿐이라른 걸 알 수가 있다.

 

진혁과 선우는 오랜 친구 사이지만,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아니었다.

 

학창시절엔 선우가 짝사랑한 대상이고,

이후엔 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면서

자기 사업에 필요해서 마지못해 상대해주는 정도로

선우에겐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에 처음으로 선우와 진혁은 동등해진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던 갖가지 장애물들이

치워지고,

허심탄회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우는 진혁을 안고,

남자와의 접촉을 혐오하는 진혁은

그 포옹을 받는다.

 

이어서,

수영의 고백이 있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수영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그리고 선우와 진혁에게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은 평소의 수영이 베풀던 사랑의 원천이 되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아픔이었다.

 

맞아도 싼 인간은 없다~!

 

단순한 진실이지만

얼마나 휴머니즘에 가득찬 확신인가~

 

늘 구박당하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절절매면서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그래서 그가 있으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의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수영이란 캐릭터가 참 좋은데,

어쩌면 내가 흉내도 낼 수 없는 인간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어준다면 참 아늑할 것 같다.

 

진혁도 입으론 툴툴대지만, 수영에게 많이 의지하고,

그가 뿜어내는 아늑함에 기대왔을 거라고 믿는다.

 

 

그건

진혁이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다소는 냉소적인 말이었지만

 

'내 사정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는 형의 그 무신경함이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하지만

의의로 그건 사실이다.

 

수영같은 인물이 가까이에 있다면

아무리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내겐 너무나 대단하고 무서운 일도

수영에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대단히 화가 날 수도 있지만,

대단히 힘이 될 수도 있다.

 

평소 무심하고 무한하게 열려 있는 세상에 대한 그의 태도 이면엔

맛아도 싼 인간은 세상에 없다는

소박한 믿음이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기에

아늑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무능한 대신에

그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인간일 수 있다.

 

고통스런 삶을 사는 우리는

그렇게 고통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위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픔을 긍정으로 승화시켜 살아온 수영의 한 마디는

자신을 맞아도 싼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온

선우의 진실까지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날

선우의 방에서

세 남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실했고,

 

그 진실 속에서 깊은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