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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그의작품들

먼길 (5) ─인연 ─

모놀로그 2010. 6. 6. 15:23




우식이 가족이란 이름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인간적인 정서를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연이 아닌가 싶다.

하기야..모든 드라마와 현실 세계는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인연으로 와줘서 고마워..."
"인연이란 게 있잖아요"


후자는 우식이 자신이 자란
고아원을 일컫는 말이지만

좋은 인연으로 와줘서 고맙다는 선주 아버지의 말은
어떤 의미에선 진리 중의 진리인 셈이다.

오갈 데 없는 난감한 처지의 두 모녀가
우식이라는 좋은 인연을 만남으로써
구원받고

동시에
우식 또한 인간미를 회복하면서 가족을 가지게 되니 말이다.



실제로
화면은 그에 앞서
이미 우식과 선주가
범상치 않은 인연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체국에서 실랑이를 벌이면서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리고 만일 두 사람의 인연이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해도
마지막까지 그렇게 믿고 살았겠지만
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보다 전에
이미 하루를 거의 함께 보내다시피 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끝내 모를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실은 어느 상점의 쇼윈도우 앞이었다.

나란히 서서 물끄리미 윈도우 안의 마네킹을 바라보고
서 있던 두 사람..
선주는 아버지와 딸의 마네킹을
그리고 우식은
어미니와 아들의 마네킹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은
선주와 아버지와 관계,
우식을 버린 어머니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도 하고..

장차 두 사람이
그렇게
한 가족을 이루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그 이후에
남대문 시장통을 함께 돌아다니며
혹은 상점에서 혹은 리어카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코스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도입부이다.

그렇게 마음은 아직 서로를 모르지만 몸이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은 무의식의 세게에서 인연으로 자리잡으면서
서로의 인생이 교차되는 순간을 향해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상투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선주가 탄 전철과

우식이 운전하는 봉고차가
나란히 달릴 때이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전철과 경쟁이라도 하듯 전속력으로 달리는
우식의 봉고차
그 봉고차를 전철 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주..
두 사람은 각각 그 안에서
비록 평행선을 이루고 있지만
그 종착역은 한 곳일수도 있으며
이제 곧 그들은 같은 지점을 향해서
통쾌하게 인생에 가속도를 붙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하다못해
그들은 핸드폰 벨소리까지 똑같을 정도로 범상한 인연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몸이 한 지점에서 만났듯이
마음도 함께 하게 되었겠지?
인연의 끝은 몸과 마음의 합일이니까..



우린 정말 삶 속에서
그렇게 소중한 나의 인연과
숱하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로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비껴 가기도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결국엔
언젠가는 한 지점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친근감을 느끼는 거 아닐까?
만난 적 없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한계이고
보다 큰 시선은 미소를 지으며
너희는 이미 오래 전에 수없이 만나고 또 만났던 사람들이라고
그게 인연이라고 말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