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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14부- 황태자비와 이신의 아내

모놀로그 2011. 2. 13. 02:14

황태자비가 학교와 궁 사이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럴만한 무슨 일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다.

그들의 혼인에는 마치 원죄처럼 줄곧 따라다니는
두 개의 상흔이 있었으니
늘 두 사람의 의식 한 구석에 자리잡아
부부로서의 화합에 제동을 걸고,
가까와질 만하면 불거져서 제풀에 상대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게 한다.

신군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황태자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채경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는데,
그 모두가 실은 율군 것이었다는 찝찝함이 늘 따라다니고
있었다면,

채경 입장에선
서로 좋아하는 두 남녀,
즉 그녀가 보기엔 청혼까지 할 정도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던
효린과 신군을 자기가 갈라놓았다는 죄책감이다.
(그렇게까지 열렬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율군은 채경을 호시탐탐 노리고,
효린은 신군을 되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 상황에서
덧붙여 황태자위탈취에 열올리는 태후의 음모까지
가세하니
19세, 무방비상태로 상처받기 쉬운 나이의
청춘들은 쉽게 주변에 널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


보란듯이 황태자비의 거실에 놓여진
태국에서의 '효린과 신군의 뽀뽀사진'

그 대목에서
난 갑자기 오수의 말이 생각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 진실은 아닙니다'

그 사진의 실상은
신군이 효린의 기습 뽀뽀에 무대책으로 당한 사진이지만,
이미 태국에서 손에 손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이후이고,
그 사진으로 크게 상처받았던 채경이다.

그 사진 이면의 진실도 실은 채경이 상상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지만
채경은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자신에게 냉랭해진 상태로
굳이 혼자 태국으로 가버린 신군이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내내 단 한번도 자신의 전화에
응답이 없던 신군이었다.

그런 신군이
난데없이 문제의 태국에서 효린과 다정한 모습으로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요상한 옷차림으로
태국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면
달랑 그 사진 한 장만으로 볼 때
경험에 의한 편견과 오해가
진실로 자리매김한다.

이면에 어떤 과정이 있으며,
어떤 이유가 있으며,
어떤 경로가 있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뽀뽀사진까지?

태국 사건을 애써 눈감아주려던 채경은
충격을 받고
사라져 버리고
신군은 이성이고 체통이고 나발이고 내던지고
미친듯이 그녀를 찾아 헤맨다.

혼자만 찾아다니면 좋겠는데,
율군이랑 '누가누가 먼저 찾나시합' 까지 해야한다.

안쓰럽게도 신군과 채경,
두 사람이 함께 한 장소라곤,
같이 등하교하는  차 안과 같이 기거하는 동궁전이 전부이다.
그 외  두 사람만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는 없다.

굳이 한군데 꼽자면
신군의 비밀 아지트인 다락방이 있는데,
신군이 왜 거긴 찾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채경은 물론 신군의 비밀 아지트가 아닌,
율군이 데려가준 명선당을 택한다.

아마 신군을 연상케하는 장소는 당시의 그녀에겐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신군은 채경을 찾아내지 못하자
다급한 마음에 효린을 불러내기까지 하는데,
아마 그것도 일종의 학습효과일 것이다.

태국 일로 이미 맞짱을 뜬 두 사람이기에
행여 사진 일로도
그녀를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지푸라기였지만,

문제는
그때 신군이 효린에게 한 말이다.

'그 아이는 황태자비이기 전에 내 아내야~!!!'


참으로 중대한, 결정적인, 파격적인 선언이다.

이신의 아내가 아닌,
황태자비로 궁안에 들어온 채경이...

점점 그녀에게로 마음이 기울면서도
스스로 고삐를 죄듯,
언젠간 놓아주어야할 사람으로 여기고
거리를 두려고 안간힘쓰던 신군이
마침내 선언한다.

'그녀는 내 아내야~!!'

황태자비에서 이신의 아내로
그 결혼의
당사자인 이신에게 당당하게 인정받는 것이다.

황태자비 '신채경'보다
이신의 아내 '신채경'이  상위개념으로 올라서게 되는 순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