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최악의 악-준모와 해련에 관한 나의 시선(1) 본문
난 궁금하다.
대체 '최악의 악'에서 해련이라는 캐릭터가 왜 필요했을까?
거친 남자들,
양아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조폭들과,
조폭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형사들,
그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난데없이 등장한 '해련'은
드라마에 참신하면서도 강렬한 색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익숙하다.
그녀 뒤에는 그들을 시선만으로 제압할 만큼 살벌한 분위기의
보디가드가 줄곧 버티고 있고,
그보다 더 무서운 마약상인 '흑사회'의 보스인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직 어리다고 해도 무방한 그녀를
위험천만인 양아치들의 세계에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딸을 '이용'하는 셈이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렇게 생각되는 존재이다.
그런 배경때문일까?
분명 나이가 20대를 넘지 않았을 해련도 거친 남자들에 꿀리지 않을만큼의
카리스마와 배짱이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두려움을 보이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훈련을 해 왔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배경과,자신이 모든 거래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분위기를 자기가 주도하는 것에 익숙한,
한 마디로 매우 이색적인 여성이다.
시니컬한 말투와 비웃는 듯한 표정,나른한 태도 같은 것은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과 함께 일종의 보호색같다.
왜냐면 그 속엔
남들처럼 공부하고,연애하고,젊음을 즐기고 싶어하는
매우 평범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알맹이를 보여준 사람은 준모뿐이다.
그런데,
준모 말대로 그것은 욕심이다.
돈과 권력으로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평범함을 꿈꾸는 기철과 다를 바가 없다.
단지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이 없는 여자,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마약 보스인 아버지 탓에
어릴 때부터 보디가드를 달고 살아온 여자,
만나느니 험상궃고 야비한 마약상들 뿐이었을 여자.
그녀가 준모를 만난다.
그녀의 등장은 내겐 강렬했다.
그런 여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연기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던지라,
난 얼핏 장희진인가 싶었다.
그러나 첫등장 이후에 곧바로 립스틱을 지우고, 가발을 벗어버린 해련은
지친 듯한 눈빛 속에 상대를 깔아뭉개는 듯한 오만함,
지겹다는 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20대의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그러나 용모는 아주 앳된가 하면,한편으론 매우 되바라지고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마저 풍기고 있다.
이후에 그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면서 그녀는 매우 독특한 시선 처리와,
말투로 캐릭터에 좀더 선명함을 더 한다.
그런 전반적인 존재감엔 일종의 독특한 카리스마와
두려움 따윈 없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 어떤 혼란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몸짓과 어조로 주변을 제압해버리고,
남자들은 상대가 젊고 아름답고,게다가 성적 매력이 넘치면서도
그것들을 무색하게 하는 거친 내음에 당황한다.
도대체가 어떻게 상대를 대해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자주 준모에게 머물기 시작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런 세계에서 보기 힘든 여자가 나타났듯이, 그녀에겐
마찬가지로 준모가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남자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난 마지막 회까지 그녀를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왜? 해련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을까?
히로뽕의 공급책인 중국에서
누군가 나타나는 건 드라마의 흐름 상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 인물이 굳이 해련이어야 할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녀가 준모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짧은 시간에 깊어지고,
깊어지는 만큼
준모가 극중에서 온갖 딜렘마와 위험과 계속 어긋나는 수사 때문에
초조해지면서 사면초가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런 준모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인 도움을, 정서적인 힘을 주는 것이
다름 아닌 해련이라는 캐릭터로 내겐 보인다.
우선, 그녀는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그런 권력이 있지만, 그것을 남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그 권력은, 준모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게 되고,
그 도움으로 인하여 위험천만한 곡예를 벌이는 언더커버로서의
역할에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준모는 대뜸 그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음을 캐취하고
그것을 또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그녀는 점차 노골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듯한 농염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대뜸 키쓰를 퍼붓는다.
그때의 준모를 '싫어서 견딜 수 없지만, 그래서 밀어내지만 거역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엔 그 키쓰가 길어질수록
그의 갈등이 보인다.
젊고 아름답고 섹시하며 자신에게 흠뻑 빠진 듯한 여자의
돌발적인 스킨쉽을 싫어할 남자가 있을까?
그는 그 키쓰를 지속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엔 그녀와 잠자리를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휘말릴 때마다
의정을 떠올리며 빠져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겐 의정이란 존재가 구원의 밧줄이다.
실은 경찰인 자신이 마약상인 여인과 깊은 관계까지 간다는 건
매우 위험하고 있어선 안될 일이다.
경찰로서의 준모와,
남자 준모가 강렬하게 맞서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 혼란스런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아마도 매우 고혹적인 지옥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키쓰에 휘말려 들어가기도 하고
그때마다 의정이를 떠올리고,
그런 의정이는 경찰복을 입고 있다.
의정에 대한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이 경찰이며, 또한 굳이 위험한 언더커버 세계에
뛰어든 근원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원하는 상대를 기어이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세상에 태어나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었을 여인과,
남성성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이성의 한조각 끈을 놓지 않으려고 미친 듯 갈등하며
그렇다고 함부로 거역하지 못하는 남자의,
그래서 더욱 더 치열한 순간.
하지만 그런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얼마나 수많은 남녀로서의 장애물을 한꺼번에
뛰어 넘었을까?
비록 키쓰뿐이었지만
거의 갈 때까지 갈 뻔한 남녀 특유의 분위기가 절로 형성되고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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