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조승우의 '시지프스' 그리고 '라이프'(1) 본문
난 시지프스와 라이프를 소장하고 있으며, 틈만 나면 정주행을 한다.
이 드라마들을 특별하게 좋아하고, 아끼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근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엄밀하게, 둘 다 그렇게 완성도가 뛰어나거나 보기 드문 명작이거나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유난스레 이 드라마들에 싫증도 내지 않고
몇 년 간에 걸쳐서 정주행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우선, 공통적으로 조승우라는 배우가 등장하는데,
조승우라는 배우는 뭔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나에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시지프스는 단지 조승우 역의 한태술이 그리워서
찾아보곤 하는 것이다.
또한 여주는 박신혜인데, 수많은 한국의 여배우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중 하나이다.
그녀는 내게 안정감을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미인이지만, 미모만 내세우는 배우도 아니다.
현실적이고 강인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우습게도 드라마 속의 남주들이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도 나와 비슷하다.
한국 남자들, 특히나 돈 많고 까칠한 남주들은 대개 정서적으로 불안한데, 그녀는 그런 남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성적이고 강한 여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박신혜의 모든 드라마를 다 본 건 아니다.
'미남이시네요'와 '닥터스'는 닭살 돋아서 초반에 하차했는데, 그건 남주들 때문이지 박신혜 때문은 아니다.
'알함브라'는 내가 워낙 게임에 대해서는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뭔 소린지 몰라서 아예 도전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시지프스'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애착을 느끼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조승우'와 '박신혜'라는 기막힌 배우들의 조합이 첫 번째 이유 같다.
두 사람 모두 내겐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배우들이고, 뭔지 그리운 사람들이다.
한 가지 슬픈 점은 드라마를 소장하고 가끔 되돌아 정주행을 하다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몇 년 전 작품이 되어버리며,
그동안 배우들은 나이 들어서 드라마 속의 그들과 현실의 그들 사이에 괴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더욱더 드라마에 집착한다.
세월이 흘렀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암튼, '시지프스'도 그렇지만 '라이프'도 내겐 무척 애착이 가는 드라마이다.
라이프는 시지프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분명 심오한 메시지를 담았는데, 그 메시지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강해서
메인 스토리보단, 오히려 그런 단점이 부각되는 지루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주며
점수를 깎아먹는다.
특히 라이프는, 마치 시지프스가 2035 년의 풍경을 너무도 산문적인 연출도 모자라.
쓸데없이 길게 보여주는 바람에
드라마의 평을 절반을 깎아먹고, 드라마의 질을 훼손시켰듯,
두 형제의 사적인 영역을 역시 산문적이고 지루하게,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으며
전체적인 드라마의 흐름과 동떨어지는 그들의 생뚱맞은 서사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역시나 드라마의 가치를 망가뜨렸다.
라이프는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회의를 품기 시작한 지 오래인 시대에 접어들어
그들의 문제점과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자만심과 자부심, 그에 미치지 못하는 그들의 도덕성,
그리고 그들이 도덕성을 마모시키는데 일조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아예 시스템화 되어감으로써 두터운 아성이 되어버린 의료계의 여러 문제점과 그 문제점에 기생하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타락한 꼰대 의사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댐으로써, 여태까지 보여준 히로인적인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병원은 엄청나게 많지만, 과연 그 병원들이 나를 살려줄까? 가난하고 힘없는 나에게 살 기회를 줄까?
사명감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려는 몇 안 되는 의사들을 좌절시키고 낙오시키는 것이
지금의 의료 현실이다.
시스템과 그 안에 안주하려는 직업적 나태함에 길들여지는 것에 회의하고 고민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사들도 있다는 점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도 하게 만든다.
과연 그들도 의사 집단의 병폐에 말려들고 말 것인지, 그렇게 안 되기 위해 몸부림치기엔 그들의 힘은 너무 약하다는 것과,
기득권이라는 집단과 그에 속하고 싶어서 안달난 인간들이 얼마나 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는가,
그 기득권에 편승하지 않은 우리에겐 보이지만, 막상 우리도 그것에 올라타면
과연 그것의 탐스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너무나 골치가 아픈 문제점들이 마구 떠오르지만, 막상 해결 방법은 요원하다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점은 기득권을 지니기 위해 온 젊음을 바쳐온 구승효가, 그나마 남아 있는 진실을 객관적으로 볼 힘을 다해서 말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미래는 너희에게 달렸다. 너희가 항복하던가, 끝까지 싸우던가!
만일 손을 든다면 그 담엔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의료민영화라는 무서운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듯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세대, 다시 말해서 이 나라의 미래가 짊어질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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