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나의 금도끼와 은도끼 본문
대학 시절,
친구들과 농담삼아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물에 도끼를 빠트린 나뭇꾼처럼,
어느날, 신령님이 나타나서
"'사랑과 재능과 재물 중에서 하나만 골라라'
라고 한다면,
넌 무엇을 고르겠니??"
그때, 난 주저없이
'재능!!'
이라고 답했다.
나의 꿈은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능을 맘껏 펼치다가 이 한몸 불사르는
짧고 굵은 생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대학 시절의 내겐 남자나 가정, 아이들 같은
여자다운 소박한 꿈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오자마자
남자를 구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가 된 듯한
동기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내게 결혼이란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찬
낡은 장농처럼 따분하게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이제 재능도 원하지 않는다.
만일 지금
내게
사랑과 재능과 재물 중에서
원하는 걸 주겠노라고 한다면,
난 이제
권태롭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돈이나 주쇼!!'
그렇다고 내가 돈을 가지고 뭘 하겠다는 비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고급스런 가구에 둘러싸여 고뇌하느냐,
아니면
초라한 집에서
싸구려 옷을 입은 채로
고뇌하느냐
그 차이밖엔 없다.
뭐 기왕이면
우아한 모습으로 괴로와하면 좀 낫겠지만
그렇다고
생이 주는 고통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리라.
뿐이랴,
많은 돈이야말로 정말 인생을 권태롭고 따분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돈을 택하게 된 것은,
재능에도 사랑에도
이젠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난 매사에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재능이나 사랑도
의욕이 있고 건강할 때나 그거 가지고 뭘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ㅋㅋ
돈을 원하는 건,
그게 있다면
아마 난 그걸 가지고 뭔가
날 지겹게 하지 않는
재미 있는 장난감을 살 것 같다.
내게 가장 재미 있는 장난감은,
뭔가에 몰두하는 것이다.
물론,
쉽게 내버릴 수 있는 장난감이어야한다.
어떻든 지금까지 한번도
사랑을 원하지 않았던 내가 참 신기하다.
난 사랑이라는 걸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건
인간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혹은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지도 모른다.
난 사랑할 수 있는 자유보단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내게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는 한편, 내가 더이상 재능을 원하지 않게 된 것에
일말의 쓸쓸함을 느낀다.
난 불과 얼마 전까지도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
남자도, 사랑도, 가정도 돈도 아닌,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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