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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모놀로그 2011. 4. 28. 18:05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땐

그 사람이 참 완벽해보인다.

 

내가 사랑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긴 그런 것이 있어야 사랑도 하는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가?

 

난 살면서,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이던, 하다못해 멀리서 바라보는 배우건간에

그가 최고로 아름다운 시절에 만난다.

 

당시엔 물론 그걸 모른다.

그저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때가 그 사람이 최고로 아름다왔던, 혹은 조금 특별한 시기였음을 알게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변하고,

그럼 내 사랑도 식는다.

 

'너에게 실망했어. 내가 사랑했던 건 지금의 니가 아니야.

따라서 난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

 

라고 난 얼마나 간단하게 말해치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짓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다.

 

인간이라는 건 애초에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부터가 그러하다.

 

대망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박재영이 그런 말을 한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타인에게서 너무나 싫은 점을 발견하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싫은 점은 내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고..

 

맞는 말이다.

 

난 완벽한가?

아니다.

 

하지만,

난 잘 변하지 않는 인간형이다.

 

그래서 상대에게서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이 변질되는 걸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뭐 나 자신을 내가 심판하기란 어려우니

내가 모르게 나도 변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도 그렇다.

 

지나고보니,

역시 그사람도 그때가 그에겐 잠깐 찾아든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

어느 인간에게나 잠시 휴식 시간이 있나보다.

평소의 자기 스타일과는 다른,

좀 특별한 시절이 있나보다.

 

고딩때,

어떤 아이와 친해졌다.

 

그 아이는 이른바 우등생에 범생이다.

전교 1등이고, 서울대가 목표이며

따라서 나같은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좀 달랐다.

 

원래 공부 잘하는 인간들은

평범한 인간들과는 뇌구조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며

인간 자체가 좀 다른 것이다.

 

게다가 그 아이는 이른바,

 

'교과서만 공부했어요

예습, 복습만 열심히 했어요.

과외같은 건 해본 적 없어요'

 

라고 서울대에 간 비결을 물을 때 반드시 나오는 저 대답이

진실인 아이였다.

 

왜냐면 그 아이는 고액 과외를 할만큼 부잣집 아이가 아니었다.

아니 가난한 집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나와 친하게 지낸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아이가 고딩이 되면서 잠시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른바 사춘기라는 것이 늦게야 찾아든 범생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 아이..라는 뜻은,

범생이 종류는 나와는 애초에 말도 안통하고,

정서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애는 잠시 범생이가 아니었다.

성적은 떨어지고,

방황하는 청춘이었다.

그때, 잠깐 나와 가까와진 것이다.

 

그 아이는 아마 그런 무렵에 나같은 종류의 인간이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난 그때도 꽤나 뻔뻔스럽고 냉소적이었으니까.

 

방황하는 영혼들이 잠시 내게 찾아와서 자기가 필요한 위안을 받고

잠시 후에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떠나가는 것이다.

 

난  애초에 그런 범생이 종류와는 별로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미련없이 돌아서서 더이상 친구 노릇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야말로 범생이가 되서

수학 공식을 물고 늘어지며 고민하는 그 아이를

가끔은 멀리서 바라보면서

난 문득 어째서 저런 아이가 잠시나마 나와 말이 통했던 것일까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우린 가끔 하루 몇 시간을 통화하곤 했는데,

말이 끊겨도 전화를 끊지 않고

그 침묵을 같이 즐기곤 했을 정도로

한땐 절친했고,

 

특히 그 아이가 날 무척 좋아했다.

 

난 원래 누굴 좋아하거나 그런 인간이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면 그냥 상대해주다가

내가 멀어지거나, 상대가 알아서 멀어져간다.

 

그 아이는 후자였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에 모든 걸 바치더니

기어이 서울대에 갔다는 소릴 들었다.

 

물론,

난 내게서 멀어진 후

단호하고 단순해진 그 아이에게서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곧 잊어버렸지만,

 

아주 가끔은

잠시 흔들렸던 그 순간이 그 아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난 그 아이가 그랬기에 잠시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간 그 아이는 너무나 생소하고, 매력도 없었으며

도무지가 친구따윈 되고 싶지 않은 전형적인 인간형이었으니까.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그게 그 아이의 본질이었음을 더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그렇듯,

어느 시절에 잠시 찾아든 휴지기에

난 어떤 인간을 만나고,

그래서 그 인간을 사랑하고,

그러나

그것은 그 인간의 본질이 아니기에

곧바로 그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찾으며,

그러면 난 그가 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변했다기보단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뿐이었다.

 

하긴

그렇게 한 인간에게 빈틈이 생길 때

어쩌면 그 인간은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난 그 인간에게 빈틈이 생길 때

만나서, 거기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그 인간의 본질이라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환멸을 느끼고 차갑게 돌아선다.

 

하지만,

나도 이젠 나이가 들었다.

조금은 더 인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웬지 이해해주고 싶다.

 

그도 변했지만,

그러나 그가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변한 이유 중에 나도 한몫을 했기 때문도 있다.

그는 끝없이 버림받아야했고, 떠나보내야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항상 버림받았다.

아니, 그를 버리고 돌아선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

나도 그러니까.

 

그럼에도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라 그런건지

아무도 오래 그 사람 곁에 머물지 못한다.

 

나만은 오래도록 자기 곁에 있어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떻게든 자기 곁에 묶어두려고 나름 노력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난 그걸 거부했다.

그것도 매몰차고 모욕적으로..

 

그때 그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을지

이제야 난 알게 되었다.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아마도 그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지.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겠지.

아무도 믿지 않겠지.

그렇게 그는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점을 상실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또한 그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뭐가 어쨌든,

난 문득

옛날 영화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실, 난 이 귀절의 번역이 좀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건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랑이란 결코 변명하지 않는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더 많이 잘못했으며,

누가 더 많이 빚을 졌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변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변해야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 그 사람을 이해하면서,

난 비로소

사랑이란 건 절대로

서로를 탓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도, 변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그 사람 때문에 그것을 알게 된 거지?

 

 

 

그래서 난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