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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궁

궁 3부-오렌지빛 왕자 율군의 시선

모놀로그 2011. 1. 31. 19:25

 

 

 

 

조선 시대엔 군왕이나,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왕족을 폐한 후엔 그들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한때 군왕이었거나, 세자였거나 하면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만큼 그들의 추종 세력이 있다.

 

그리고 대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정통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는 게 두려워서라도

죽여버린다.

 

공식적으로 죽이는 경우보단

암살의 형식을 빌어서 죽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무튼 훗날 걸림돌이 될 만한 왕손들은

대개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곤 했다.

 

비공식적인 암살도 있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내세워 공식적으로 죽이거나,

유배를 보낸 후에 낼름 사약을 내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문제가 있는 채로 왕위에 오른 왕은

피비린내나는 보복을 하였다.

 

연산군이 그랬고,

결국 정조도 그러했다.

 

한쪽은 어머니의 죽음,

후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왕위에 오른 후에 일대 숙청 작업을 벌이는데,

그 숙청 작업이 두려워

그들이 정상에 오르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것이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말이다.

 

대개의 왕족들의 죽음은 결국은

정치적인 이유에서였고,

파워 게임에서 진 결과의 죽음인지라

그들의 자손이 보위에 오르면 상당히 고달파 지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비정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장차 일어날 환란의 씨앗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그 세계 나름의 게임의 규칙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궁에서,

율과 그의 모친을 보면,

결국 조선 시대에 가끔 일어났던 숱한 비극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율은 둘째치고, 그의 모친부터가

한때 황태자비였고, 이제 곧 황후가 될 몸이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자기가 왜 쫓겨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선 시대의 후궁 다툼이나, 파워 게임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오로지 그녀가 궁에서 밀려난 이유는 자기 자신의 존재뿐이다.

 

이름만 황제일뿐,

입헌군주제하에서의 황제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아무런 권력도 없는데도

그렇게 이를 갈아부치며

다시금 그 영광을 되찾을 궁리를 자그만치 14년이나 하고 있는데,

 

하물며

조선 시대인들 오죽하랴.

 

그래서 그렇게 걸핏하면 서로 죽여대는 피의 기록들이 여기저기 난무하나보다.

 

아무튼, 한때 정상에 있었다는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따지면 피의 역사로 얼룩진 조선 시대가 아닌,

평화로운 21세기의 황실에서

선황은 너무나 안이하게 대처한 셈이다.

 

비밀을 아는 건 오로지 선황과 혜정궁일뿐,

 

왜 갑자기 멀쩡하게 황태손이 있음에도

서열 2위의 왕자가 황통을 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해놓고는 황태손과 황태자비를 내쳤으니

장차 분란의 씨앗만 남겨놓고 붕어하신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아내에게조차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니,

 

일국의 황태자비를 갑자기 궁에서 내칠 때 어떤 명분을 내세웠을까?

 

이유를 안다면 추종 세력들도 함부로 설치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런 명문이 없다면

그들에겐 억울함만 남는다.

 

그 추종 세력도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

힘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군이 돌아오자 당장 평화롭게만 보이는

21세기의 황실은 저 깊숙히에서 뭔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율과 신군의 해후 장면이 인상적이다.

율은 신군에게 던지는 환호와 선망의 물결이 이는 대중 틈에 끼어 있다.

 

신군의 혼인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황태자의 혼인을 생중계하느라 분주한 언론과 카메라의 홍수 속에

그 혼인을 지켜보는 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율군의 눈빛엔 한때 카메라 초점 안에 있었던 자의

원망이 꿈틀댄다.

 

지금은 초점 밖에서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자를

지켜봐야하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아는 자의

원망과 한이 그의 눈빛엔 뚜렷하다.

 

 

 

율은,

궁에서 쫓겨나서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에야 잠시 잊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

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가 직면한 현실들,

 

즉 카메라 이쪽에 선 자의 설움을 제일 먼저 맛보게 되고,

그것이 잠재되어 있었을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카메라 초점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카메라 밖에 있다가

등을 떠밀려 안쪽으로 들어간 신군과는

애초에 의식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신군의 혼례 장면을 지켜보며,

신군에게 던지는 율군의 시선은 그래서

조금은 전율스럽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는 얼음 왕자 신군과는 달리

화사한 오렌지빛이기 때문이다.

그의 색채감이 그의 눈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둘째로,

 

카메라 초점 안에 서 있는 신군은 정작

조금도 그것이 기쁘지 않기 때문이다.

척 보기만 해도 그가 얼마나 지겨운가 알 수가 있다.

율군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눈빛은 깊어진다.

자기가 있어야할 그 자리에 선 자는

그것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카메라 초점에 대한 율군의 선망과,

그 안에 갇힌 신군의 지루함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땅에 떨어져 파묻혀 있던 비극의 씨앗이

빼꼼히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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