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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마왕

마왕1부- 도입부

모놀로그 2011. 1. 26. 08:21

난 마왕을 본방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몰아서 보았다.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본방으로 보는 사람들보단
작품을 이해하기는 훨씬 용이하다.
한꺼번에 보기 때문에
전체가 연결되면서
작품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본방으로 볼 떄는 기다렸다가 보기에
그 기다림과 막상 기다렸던 그 갈증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놓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복습을 통해서
미처 보지 못한,
혹은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을 채운다.

난 마왕을 모두 본 후에
마왕 시청 후의 글을 관련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대충 읽어보았다.

거기엔
생생하게 본방 당시의 열기와 작품에 대한 갖가지 몰이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현장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들은 작가의 의도를 과도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오해하기도 하고,
혹은 작가는 생각지도 않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시 본방이 방영되는 동안의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돌이켜보면
마왕의 도입부는
굉장히 많은 말을 한다.
좀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다보니
미처 다 주워담지 못한 사람들은 포기할 정도로...

우선 해인이란 존재가
초능력자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더우기 그 능력이 태훈의 죽음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그녀가 앞으로 맺을 태훈 가족과의
인연을 보여준다.
그 인연은 태훈의 동생인 태성, 즉
승하라는 인물과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데,

굳이 태훈의 죽음으로
그녀의 초능력이 드러난 것은

앞으로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
그녀의 초능력이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을
곳곳에서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초능력이 아니고는
그 사건의 진상은 알 수가 없으며,

이 세상의 많은 억울한 사연들은
그런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곤
해결될 수 없다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태훈과 태성이 존재할 테니까.

어린 시절 그 사건을 목격한 이후로

자신의 초능력에 관해서 알게 된 해인은

이후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거쳤을테지만

막상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일깨워준

태훈 사건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런 그녀가 십 년 넘는 세월이 흘러

승하를 처음 만난 후에

(실은 처음 만나는 건 아니지만)
곧바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태훈의 주검을 꿈으로
다시 재현한다.

그녀에겐 초능력이 있기에 지극히 예민할 것이다.
그래서 승하를 만난 것만으로
잠재된 그녀의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그 사건이
꿈틀대는 것이다.

승하가 굳이 악수를 청한 것도
바로 그런 걸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로 하여금
기억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그 사건을 되살리게 하는 것~!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할 사람으로 그녀를 선택하고,
그녀가 직접 그린 타로카드를 훔침으로써
그녀에게 애원하고 있다.
내 원한을 해결하는데 앞장 서 달라고.

그녀는
그녀의 능력으로 오수에게 모든 것의 본질은
바로 그 사건임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
승하의 바램대로
그녀의 내부에선 그 사건이 차츰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둘째로,

처음으로 오수와 승하가 번갈아 등장하는 씬에선
백뮤직으로 거짓의 사람들이 흐른다.

그 음악은

느와르풍의 경쾌하지만 허망한 느낌이 강한
왈츠이다.
두 사람이 앞으로 하염없이 추게될
슬픈 춤과 그 서글픈 왈츠의 끝이 벌써부터
눈에 보이는 듯 한 음악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느와르는 남자들의 멜로이다.

마왕의 종착역이
다름아닌
승하와 오수의 애증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도 살고 싶었던 오수는
이미 옛날 일은 까맣게 잊고

(그는 말로는 자나깨나 태훈이 생각에 괴로와했다고 하지만
내면은 어떻든 간에
외면상으론 그런 괴로움은 잊은 듯 보이며,
만일 그가 정말 태훈이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면
권변에 이어 대식까지 죽었을 때,
혹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편지 한 장만으로 섬뜩했어야 한다.
오수 캐릭터의 오류는 극적인 전개를 위한 너무 큰 희생이다.
그가 너무 일찍 깨달으면 안되니까.
그래서 오수 캐릭터에 공감하는 게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이 아쉽다.)

현실 속에 발을 디디고 경쾌하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형사가 된
그의 온몸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 넘친다.
원기왕성하고 경박하리만큼 명랑하며,
자기 세계에 충실하다.

그는 나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단순무식한 컨셉으로 살고 있다.
그의 세계는
나쁜 놈과 좋은 놈,
짜장면과 짬뽕처럼
아주 단순한
두 개의 이데아만 존재한다.
아주 선택하기 쉬운 유아적 이데아이다.

왜 그는 그렇게 단무지스런 인간으로 변모한 것일까?
그렇게 해서 그는 그 끔찍한 사건을
무의식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었을까?

오수와 번갈아 등장하는 승하는
그와는 정반대로
허공을 걷는 듯한 비현실적인 걸음걸이만으로도
그라는 인물이 이 세상을 진심으로
살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말로 설명되는 오승하라는 인물,
인권변호사이며,좋은 사람이며, 법률 상담까지
무료로 해준다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우리가 보는 오승하는

휘뿌연 빛 속을 
춤추듯  걷는 무표정한 얼굴과
감정을 억누른 나긋한 목소리와 무심한 말투로 인해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다.

동시에 사람을 대할 때와
돌아서는 순간 변모하는 표정에서
그가 이중적인 인물임도 보여준다.


빛속에서 명상을 하는 모습이나,
어쩐지 피상적인듯, 극도로 절제된 듯,
그러면서도 관조적이고 현학적인 듯 하지만
실은 밑바닥엔 깊은 의미를 품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들도
그가 더더욱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