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마왕 8부-승하의 계획은 순항中 본문
참으로 묘한 일이지만,
차 사무장의 말대로, 치밀한 시나리오를 써서
그것을 무대 위에 올린 연출가 오승하의 지시에 따라
극의 등장 인물들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충실하게 움직인다.
소라 엄마는 예상대로 소라를 자신에게 맡기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소라 엄마가 곧 붙잡힐 것이 뻔하므로,
이제 승하는 그녀의 변론을 맡아 무사히 석방시켜야한다.
뭐 증거는 충분하니 그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겠는가~!
인형을 안은 소라를 해인의 집으로 데려가,
그 집에 일단 소라를 맡겨두는 한편,
해인이 이미 잔상에서 봤을 소라와 인형을 보여줌으로써
해인으로 하여금 오수에게 연락케하고,
그리하여 그 문제의 배후 인물=소라에게 인형을 준 인물
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고,
자연스레 오수와 영철을 연결시킨다.
또한 소라로 하여금 영철을 확인시키려는 작업까지
승하 계획대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신묘한 계획들인데,
그 연결고리는 미묘하게 서로 얼키고 설켜 있건만
어찌 그리 물 흐르듯 유연하게 한 지점을 향해 움직여준단 말인가~!
그 외에도 다른 인물들도
승하의 예상대로 착실하게 움직여주고 있다.
순기는 냄새를 맡고 다시금 협박의 꼬투리를 잡았으며,
석진과 오수 형수는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차 사무장도 드디어 정태성이란 존재를 떠올리고,
그의 죽음을 확인해주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정태성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사건 관계자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그 시점에서 승하에겐 꼭 필요한 일이며,
동시에
오수가 영철을 용의자로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
그 영철을 소라로 하여금 인형을 준 인물이라고 증언케하는 것,
그러나,
영철이 실은 전혀 배후 인물이 아니며,
정태성도 죽었으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
등등이 그때까지의 승하의 계획인 것이다.
-돌발사고-
해인은 승하로 하여금 한 순간 휘청이게 만드는 발언을 한다.
바로 그 터널이다.
내가 앞서 말했듯
승하는 자신은 오수를 터널으로 끌어들였지만,
자신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해인의 입을 통해서
자신도 터널 안에 오수와 함께 있음을 깨닫는다.
게다가
해인은 정확하게 핵심을 짚고 있다.
승하 자신이 해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
승하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저 깊은 곳에서
울고 있는 어린 소년의 외침까지
들려준다.
처음으로
승하는 움찔한다. 해인은 유일하게 승하를 앞서 나가는 인물이다.
승하가 조종하는대로 움직여주는 외에
승하가 예상치 못하는 것까지 끄집어내고 있다.
그녀는 처음으로 승하의 맹점을 찔렀다.
그래서 승하는 마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재정비하게 위해선
다시 오르골과 은반지가 필요하다.
그가 흔들릴 때마다 그를 잡아줄 밧줄이 바로 오르골과 은반지이다.
거기서 그는 무한한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아직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그것들은 승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오수-
오수는 일단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만큼
이제 거기에 필요한 갈등을 해야한다.
해인을 찾아 고해성사도 하고,
혼자 방황하다가 형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도 해보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으며 술에 취해도 보는 등
직면한 사실을 더이상 회피하기 힘들어진 만큼
반드시 거쳐야할 통과의례이다.
그리고
그는 일어선다.
자기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만큼
자기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잡아서
심판을 받게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제 오수는 명랑하고 껄렁하지만 낙척적인 형사가 아니다.
바싹 마른 입술에, 쫓기는 듯한 눈빛,
갈등과 고통으로 인해 초췌해진 모습으로 변모했다.
정체 모를 그림자와 덧없이 싸워야하기에
그는 더욱 괴롭다.
잡힐 듯 말듯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배후 인물의 차가운 조소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렇다.
바로 승하이다.
나긋한 목소리 안에 비웃음과 날카로운 칼을 숨긴 채로
무엇하나 피하지 않고 또박또박 응수하며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오수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이유는,
적이 누군지 알 길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있으며,
매일같이 만나고 있으며
그래서 승하가 뿜어내는 증오를 정면으로 맞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정신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다.
정신끼리 주고받는 교감은 육신이라는 장애물로 인해서
제대로 감지되어 의식 속에서 구체화되지 못하지만,
대신에
무의식이라는 어두운 세계에선
서로 알아본다.
그는 자신의 숨통을 죄어오는 상대를
매일같이 마주해야 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묻는다.
대체 왜 당신이 이 사건에 자꾸만 연루되는거지?
당신은 누구지?
왜 당신은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끊임없이 마주쳐야하는 거지?
왜 난 당신이 두렵지?
본능적인 증오와 혐오를 느끼면서도
그것들은 아직은 그의 의식 표면까지 떠오르진 않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와지는 뭔가를 그는 느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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