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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앤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긍정의 힘

모놀로그 2010. 12. 31. 11:31

앤티크의 마지막 캡쳐를 하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캡쳐를 하다보면, 영화를 다시 찬찬히 보게 되고,

거기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난 그런 것이 참 좋다.

 

벌써 2년 전 영화이다.

2년은 긴 시간이고, 난 그만큼 성장 혹은 퇴보한다.

 

그래서 2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이번에 다시 본 앤티크가 난 참 좋았다.

 

어쩌면 나도 2년 전보다 더 많이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앤티크에 흐르는 긍정의 힘에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았다.

 

그렇다.

앤티크는 참 좋은 작품이다.

 

우선 난 민규동 감독의 연출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

 

앤티크는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비교적 방대한 스토리일 것 같다.

 

그걸 2시간도 못되는 영화라는 장르에 집어넣으려면

상당한 연출력이 없이는 힘들 것이다.

 

왜냐면 앤티크는 단지 진혁이라는 인물의 트라우마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머지 3남자에게도 그만한 무게의 생이 있고,

그 생엔 필연적으로 트라우마 내지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영화상의 제약에 의해 진혁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뤘지만,

그럼에도 남은 세 남자의 이야기가 묻히지 않았다.

 

그게 바로 민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보여주지 않아도,

단 한 장면만으로 많은 말을 해주는 능력이

연출력이라고 생각하니까.

 

예를 들어,

기범은 어쩌면 앤티크의 네 남자 중에서 가장 비극적 인물이다.

 

아직 어리지만, 고아이고,

천재복서였음에도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으며

복서들이 대개 그렇듯,

아니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듯

기범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단순한 부상도 아니고,

실명의 위험도 있고,

이렇다 할 재주도 없었으며

가족도 없다.

그러나

 

앤티크에서 가장 낙천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

바로 기범이다.

 

그는 무심하게

 

난 고아니까

 

혹은

 

안마나 하고 있겠죠 뭐

 

라는 식으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남의 일처럼 말한다.

 

하지만

기범의 그런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가

진혁에겐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었을까?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진혁은

상처에 민감하다.

 

남의 상처가 그에겐 자신의 그것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기범이 아무리 그에게 기어올라도 받아주며

차츰 그와 가족이 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자신보다 더한 상처를 지닌 기범이

누구보다 씩씩하게 그것들을 감수하는

긍정적인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범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담을 수 없었던 감독은,

대신 임팩트가 강한 한 두 장면만으로

우리에게 기범이라는 인물을 각인시키고,

이해시키며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재능을 보인다.

 

구구절절 이야기 하지 않아도

우린 기범에 대해서 알 수가 있다.

 

다혈질이고, 마음에 아픔도 있지만

그는 언제나 활기차고 명랑하며 신랄하다.

 

거칠고 과격하지만

사랑스럽다.

 

그런 기범이 차츰 앤티크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도

무리가 없다.

 

수영은 또 어떠한가!

 

수영에게까지 시간을 할애하기엔 벅차다.

그럼에도

수영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도 한두 동작과, 몇 마디만으로

그가 어떤 인물이며,

그에겐 어떤 아픔이 있으며

 

그럼에도 그가 그 아픔으로 인해

변질되거나 고통받지 않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순수한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 관련씬은

 

선우가 떠나리라고 믿고

앤티크가 침체되어 있을 때,

 

맥이 풀려 일할 생각도 안하는 기범에게

수영이 담요를 덮어주는 장면이다.

 

그 바람에 그는 기범에게 무수히 얻어터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담요를 덮어주려한다.

 

앤티크의 남자들이

진혁의 가족이 될 수 있었던 힘이나,

 

진혁이 결국은 상처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원천이

 

바로 그 세 남자가 지닌 긍정의 힘이 아닐까 싶다.

 

기범은 좋아하는 케잌을 제대로 배워 파티쉐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나고,

 

수영은 이제야말로 독립해보겠다고 떠난다.

 

앤티크에 남은 두 남자,

 

진혁과 선우..

 

그러나

그들은 이제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선우가 진혁을 포옹해도 그는 더이상 그것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진혁도 선우가 게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 게이클럽 정도는 얼마든지 같이 가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앤티크를 운영하는,

케잌 혐오자가 아니라,

 

행복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케잌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앤티크를 향해 즐겁게 집을 나서는 것이다.

 

이렇듯

상처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크고 작은 상처와 좌절감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는 영화인가

 

세상엔

진혁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괴가 아니라도,

하다못해 성추행이나, 기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세상엔 넘치도록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앤티크를 통해서 작은 빛이라도 발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