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불사의 인간의 비애
인간들의 로망은 불로장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인간들의 최대의 축복은
바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생각해보라.
영원히 산다고..
얼마나 지겹겠는가~!!
또한 늙지 않는다면?
젊음의 소중함도 우린 모르게 될 것이다.
인생 80년을 두고 볼 때,
우리가 젊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시기는
얼마나 짧은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십 대는 젊다기보단,
어린 시절이다.
그러니 젊음이라는 단어가 내게 적용되고,
젊음이 주는 특권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실제론
십년도 채 안 된다.
혹자는 20대 후반만 되어도 자긴 늙었다고, 노처녀라고 펄펄 뛰기도 한다.
그러니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젊음의 시기는
특히 여자에겐
더 짧다.
실제로 여자로서 젊다고 할 수 있는 시절을
굳이 말하자면
30대 중반 정도까지이니
인생 전반으로 볼 떄
젊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짧다.
그리고
그 시절의 몇 배쯤 되는 시기를 우린
나이 들은 채로 보내야한다.
우리 엄마를 보면,
젊은 시절 정말 미인이었다.
배우 저리가라 할 정도로 미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엄마를 보면
그런 시절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이고,
애초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었으며
오히려
50대도 아닌,
60대 부터가 기억에 생생한 것 같다.
그리고 남은 여생이 얼마가 되건,
늙은 모습으로,
늙은 이후의 삶으로
훨씬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젊음이 가치가 있다.
우리가 늙지 않는다면
젊음이란 말조차 없을 것이다.
하긴,
강아지를 보니
나이 들어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이
좋기도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강아지는 고작 15년이 수명이다.
그러니
모습이라도 변치 않게 배려한걸까?
시몬느 보봐르의 작품 중에
'사람은 모두 죽는다'
라는 것이 있다.
읽은 것 같기도 하고...제목만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내용을 아는 걸 보면
읽은 건가?
아..
너무 오래 전 일이다.
하여튼,
내가 기억나는 건,
죽지 않는 인간의 미칠듯한 권태로움이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죽지 않을 뿐 아니라
늙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모든 인간들의 로망일 수 있는데
왜? 그게 끔찍한 걸까?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을
인간들은 얼마나 열망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일때나
가치가 있다.
나 혼자만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저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늙어간다.
하지만 난 그대로이다.
주변 모두가 변한다.
난 그대로이다.
요즘엔
잠시만 외출을 안해도
거리가 달라져 있다.
못보던 빌딩이 사방에 즐비하다.
엊그제까지 있던 건물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어느덧 살벌한 빌딩의 숲이
날 위압한다.
그렇게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나 혼자 변하지 않는다.
그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임에 틀림 없다.
늙지 않는 것, 죽지 않는 것
모든 게 끝없이 되풀이 되는 것은
이 세계의 법칙에서 떨어져 나와서
당연한 자연의 궤도를 돌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에게서 소외된 내겐
저주요, 형벌이며
무엇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독이다.
게다가..
그것이 흡혈귀일 땐....
그래서 끝없이 피를 원하는 몸뚱이까지 가지고 있을 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피를 거부하고 싶고, 흡혈귀라는 사실을 부정하도 싶어도
그게 애초에 차단되어 있을 때,
아니
차라리 흡혈귀이면 흡혈귀로 살아야하는데
정신은 정상적인 인간의 그것이며,
더더우기 지성적이기까지 한다면?
프리즈라는 드라마가 있다.
그건,
벌써 몇 년 전 드라마인데,
참으로 아깝게도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바람에
그냥 묻히고 말았다.
4부작인지,
5부작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정도의 길이로는 공중파에서 방송되기란 쉽지 않았을 순 있겠다.
게다가 몇 년전이면
케이블이 지금보단 덜 보급되었을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그냥 묻혔지만,
내겐 잊을 수 없는 드라마이다.
우선,
색채감이 기막히다.
난 늘 색채감을 중요시하는데,
흡혈귀들이 중심 인물이 되는
컬트적인 드라마라면
당연히 지녀야할 기막힌 영상미가 다행히도 있었다.
연출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첫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건 관두고 영상미와 색채감은
정말 환상적으로,
그 작품에 어울리게 잘 만들었다.
거기에
캐릭터도 훌륭하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조선 시대에,
마을에 흘러 들어온 어떤 여인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을 당할 지경이 되자,
그녀를 몰래 구해준다.
그러나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서
그는 죽을 지경이 되고만다.
그 정체모를 여인은
그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다.
그리하여,
그 흡혈 여인의 피로 인해
목숨을 구한 그 남자는 당연히 흡혈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는 21세기까지 생존해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엔 여전히 그녀가 있다.
그녀는 그를 흡혈귀로 만들었기에
당연히 그를 책임져야한다.
그래서 그에게 피를 공급해준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냉정하다.
야릇한 적개감을 품고 진절머리나는
자신의 생을 보듯,
그녀를 본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흡혈귀다운 마인드를 그와는 달리
품고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불사의 삶과,
변치 않는 젊음과 미모를 한껏 누리며
일회적이고, 여흥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마 그런 점이
더더욱 그가 그녀에게 냉정한 이유일 것이다.
왜냐면,
그는 아직도 인간의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흡혈귀인데,
영혼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의 삶은 이중으로 지옥이다.
죽지 않는 것,
늙지 않는 것,
그리고 피를 요구하는 몽뚱이
끝없는 되풀이
이 모든 게 그에겐 지옥이다.
시몬느 보봐르의 소설에 나온 그 남자처럼
그도 삶이란 것에 지치고 또 지쳤다.
기껏 길어야 백년도 못사는 우리도
권태로울 때가 있는데,
영겁의 세월을 떠돈다면,
어떨까?
사람이 산다는 건
사실
별 거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별 것 아니다.
그 정신 구조는 필히
되풀이를 싫어하고,
늘 새로운 걸 원한다.
그런데
그 별 거 아닌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수백년을 살아서 더이상
새로운 게 없어지고
그럼에도
죽을 권리도 방법도 없는
불행한 흡혈귀의 삶을
그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눈부시게 변하는 시대에 그때 그때 잘 적응하여
이젠
강남의 잘 나가는 와인바의 사장 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평생 할 순 없다.
왜냐고?
모든 건 변하는데,
그는 변하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은 늙어가고,
시대도 변하고,
상황도 바뀌는데
그는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는 끝없이 떠나고
그러나
돌아오는 자리는 늘 그곳이다.
가지고 있지만,
세련되고 부유한 와인바의 사장으로
멋진 외제차와, 잘 꾸며진 주택 등등,
외형적으론 최첨단의 삶을 유지하지만,
그 모든 건 허상이다.
그건 거짓이다.
모든 게 거짓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거짓이다.
그는 인간이 아니고,
그의 생활은 거짓이고,
그의 삶의 기반은 없다.
와인바도 눈가림이고,
인간인체 하기 위해 꾸민 무대장치이다.
그는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결혼하길 원했을 때
그는 그녀를 버린다.
버릴 수밖에 없다.
아니 도망쳐야한다.
자기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평생을 그를 그리다가 딸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그 딸이 어느날
그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십대이다.
불행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빗나간 불량 청소년처럼 보인다.
그것도 학교까지 때려치우고
서울로 무작정 날아온 가출 청소년..
그녀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는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그러나 그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평생 사랑한 남자가 있었음을..
그리고
그 아이는 마치 그 아이의 엄마가 그러했듯이
흡혈 남자를 사랑한다.
모든 것이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엄마도 딸 나이만했을 때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그녀는 나이 들고 병 들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엄마를 그대로 닮은 딸이
이제 다시 그의 인생에 나타나서
모든 걸 되풀이한다.
다른 건,
그녀는 그녀의 엄마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녀의 엄마는 그를 도망치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딸은
그로 하여금
더이상 도망치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
그녀의 엄마에겐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숨겼지만,
그녀의 딸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즉,
이제 그는 진심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정말 사랑하면..
허위는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실체를 드러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아니
사랑할 수가 없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씌운 허상을 벗고
벌거벗은 실체를 응시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근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더이상의 허위를 용납하지 않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말살하게 만든다.
그는 흡혈귀면서도
인간이었고,
그래서 같은 흡혈귀의 세상에 적응하기를 마지막까지 거부하였다.
그는 인간으로서 존재하길 원했고,
그럴 수 없다면 죽음을 원했다
그래서,
그의 사랑도 인간의 그것이다.
사랑하는 여자들을 자기로부터 보호하는 것,
그러나
그 소녀를 사랑하면서
더이상 그는
자신의 허위를 견딜 수가 없어지고,
그녀를 버리는 대신에
그녀가 자신을 버리게 하고,
비로소 그는 자유로와진다.
그는 이제
흡혈귀도 아니고,
인간은 물론 아니다.
그냥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존재를 말살시킨다.
웃으면서..
그의 존재가 말살될 때
뒤늦게 따라온 그 소녀가
절규하며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슴 시린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