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宮'을 통해본 역사와 권력
난 일찌기 드라마 '궁' 안에서
황후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조선 시대의 복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런 옷차림을 고수하는 건
다름아닌,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들인것도 의미심장하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혜정전마저
궁 안에선 반드시 가채머리에, 조선 시대의 정복을 입고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도 비빈들이 노상 그런 정복 차림으로만 있었냐하면
그건 아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듯이,
왕이나 세자가 늘 곤룡포에,익선관까지 완벽하게 차리고
있지 않았으며,
비빈들도 주구장창 번쩍거리는 당의를 입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도 일상 생활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일상에 불편한 당의나 정복 차림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나,
윗전에 문안을 올릴 때나 갖췄을 뿐
평소엔
그냥 편한 차림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건 한중록을 통해 알았다.
사도세자는 평소에 여염집 남정네보다 못한 옷차림새로 있었다고 한다.
그건 그가 의대병이라는 좀 특별한 병을 앓고 있었기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 그런 탓도 있지만
하여튼
멀쩡했을 때도 그렇게 복식을 제대로 갖추고 일상을 살진 않았다.
따라서,
드라마 궁처럼
21세기에 궁의 여인들이 굳이 철저하게 갖춰진 복식으로 일상을 보내는 건
좀 의아했다.
그러나 가만 보면
그런 옷차림을 한 사람들일수록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복식을 고수하는 건
권력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례로
황태자비는 비록 학생일지라도
궁안에서 자유로운 옷차림이다.
만일 궁의 법도대로라면,
황태자비도 궁 안에선 엄격하게 복식을 갖추고 있어야함에도 말이다.
상궁들도 그러하다.
대개가 유니폼같은 옷차림이지만 그래도
어떻든 현대적인 공무원같은 느낌을 준다면,
권력에 집착하는 늙은 상궁은 예전의 옷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난 왜
궁이 굳이 옛 격식을 고집하는, 혹은 고집당하는 윗전과,
그와 정 반대되는 곳에는
21세기의 전형적인 젊은이들이 있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비록 만화가 배경이라하나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 있지 않은가?
궁은
그렇듯 전통을 고수한다는 미명 하에
황제자리에 집착하는 두 여인과,
황족의 신분이지만
겉으로야 이 시대의 분방한 젊은이들면서도
결국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하여
가장 좋은 시절을
남다른 고뇌를 낙인처럼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을 살아간다.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고,
욕망에도 사로잡히고,
궁극적으론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젊음의 특권인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궁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이데올로기가 주는
굴레에 갇혀서
그들의 작은 꿈과 사랑은
늘 좌초한다.
난
일찌기 연평도 사건을 보면서,
아니 그와 유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혹은 지구의 종말을 논하거나
그보다 훨씬 전인
이른바 역사라는 이름의 권력 투쟁사를 볼 때마다
바로 그렇게
궁 안의 어른들로 상징되는 권력과 그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자들이,
어린 학생들로 표현되는
평범한 시민들을 핍박하며
그들의 파워 게임에서 맥없이 짓밟혀나가곤 했던
수많은 전쟁과 그것에 희생당한 이름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역사는 한 마디로
구역질나는 권력의 투쟁사에 지나지 않으며,
그 권력 다툼에 의해서 희생된 수많은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신민의 삶은 늘 무시된다.
마치
궁에서
황실이라는,
그러나 권력이 없는 꼭두각시같은 황제 자리에 연연하여
젊은이들의 진지하고 작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 나름의 삶이
이용당하거나. 희생당하듯 말이다.
그래서
내겐
드라마 궁이
역사라는 이름의 권력 투쟁사와,
그 투쟁으로 희생된 이름없는 꽃들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역사란 얼마나 그럴듯한 이름인가~!
마치 궁이 겉보기엔 유려하고 아름다운 전통의 수호자처럼 보이듯
그러나 내면적으론 극히 빈약하고 쫓기는 듯
불행한 인간들이 강박관념처럼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듯이
역사라는 멋진 이름 속에서
추악한 다툼을 벌여온 극소수의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딛고 서 있는가~!!
궁이 만화출신이라,
그저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발상으로
굳이 청소년을 주요 인물들도 썼을수도 있지만,
아니 그럴 확률이 훨씬 높지만,
그러나
굳이 그런 의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결국
작은 세계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역시 궁이라는
전통과 법도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그로 인한 갖가지 거짓이 판치는
어른들의 삶
즉 지도층의 삶과,
그 지도층의 겉만 번지르르하지만 극도로 단순하고 치졸하기까지한
내면으로 인해
가장 좋은 시절을 억압당하며 살아야하는
혹은 힘없이 이용당해야하는
궁의 4명의 청소년들의 아픔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아픈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그날 그날 먹고 살기에 바쁜 연평도 시민들이
자기네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몇몇 나라의 파워게임과,
권력 싸움에
난데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지금도 어디선가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날 너무나 아프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