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대체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나는 오래 오래 전..
주말이었다.
난 그때 주말이면 방송해주던 무슨 오락 프로를 보고 있었다.
그건, 말하자면
연예인들을 불러다놓고
퀴즈를 맞추는 그런 프로였던 것 같다.
어느 주말, 그날도 난 그 프로를 보고 있었다.
당시엔 연예인들을 상대로 퀴즈나 뭐 그런 걸 맞추는 프로가 유행이었다.
그날은 두 세명의 연예인들이 나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익히 알려진 사람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생뚱맞은 낯선 사람이 한 명 끼어 있었다.
그를 소개하는 걸 얼핏 스쳐가며 들었는데,
무슨 대회에서 상위권인가로 뽑힌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는 그 자리나, 같이 나온 게스트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첫 느낌은 굉장히 건방지고, 그러나 그냥 소년같아서
당췌 저런 사람이 무슨 역을 맡을 수 있을까..였다.
그에게 어떤 역이 어울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난 웬지 그에게 신경이 조금 쓰였다.
안쓰럽기까지 했다.
기껏 무슨무슨 대회에서 일등으로 뽑혀서
탤런트가 되었는데
이건 도무지가 선머슴같이 생겨선
뭘 해도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는 냉소적이면서도 거만하고 동시에
개구장이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뻔뻔스럽게 앉아서
어려운 퀴즈를 척척 맞추는 것이었다.
난 마치 천년지애에서 이선균이란 배우를
물론 이선균인지도 모르고 봤지만
그가 설마 지금은 유명배우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채
(난 이선균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조연이나 하다가 사라지기엔 정말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듯이,
그 낯선 분위기의 선머슴같은 신인 배우가 웬지 안쓰러웠던 것이다.
헉..
그런데
어느날
차태현을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중,
난 갑자기 깨달았다.
그때 내가 본 퀴즈프로의 그 낯설고 건방지면서도 특이한 느낌을 주던
그 신인이..
내가 당췌 저런 사람에겐 어떤 역이 어울릴까 의아해했던 그 사람이
바로 차태현이었던 것이다.
후에
우연히 그가 바로 그렇게 수퍼탈렌트인지 뭔지를 뽑는 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소릴 듣고,
그의 개구장이같으면서 건방지고
그러면서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깨달은 것이다.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대개는
성공한다.
그때
내가 저런 사람이 무슨 역을 맡을 수 있을까 싶었던
그 신인은
유명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난 그 신인 배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그가 바로 차태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차태현을 볼 때마다
어디서 저런 사람이 나타났을까 싶으면서도
저렇게 생겨서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역을 잘 찾아서
제법 잘해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바로 그 신인배우였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준다.
그는 그가 맘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에
배우가 되었고,
그가 등장해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이
바로 그렇듯
어린 나이에 한 두 작품으로 스타가 되서
종횡무진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려 할 때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배우라는 고정관념과는 동떨어진 느낌의
그가 맘껏 자기 개성을 펼치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운좋은 사람이다.
재능도 있었겠지만,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멍석이 막 깔릴 무렵에
그는 등장했던 것이다.
난 일찌기 차태현에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어떻든
유명 스타인 그가 막 그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었던 첫 프로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차태현이 동일 인물이라는
줄긋기는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서야
이뤄진 것이니
재미 있는 일이다.